주기적인 슬럼프에 빠지는 글쓰기
글이 또 안 써진다. 생각해보면 사실 매일 글감이 떠오르고 술술 글이 써지는 게 오히려 신기한 일인데, 한동안 그렇게 지내다 갑자기 생각의 길이라도 막힌듯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는 날들을 보내자니 또 시작인가 싶다. 매일 글을 쓰기 시작한 뒤로 이런 패턴을 몇 번 겪다보니, 이제는 조금 익숙해졌다. 안 써진다고 골머리를 앓아봤자 결국 시간이 필요한 일이니 또 지나가겠지 여기는 수밖에.
글쓰기 모임의 이번 소재가 ‘집’이라 글이 잘 써지지 않아도 그 어느 때보다 집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사실 꽤 오래 고민해온 글감이라 방향만 잡히면 순식간에 써내려갈 수 있다 조금 자만하고 있었다. 마감 날짜가 슬슬 다가오기에 백지를 펼쳤다. 마침 슬럼프 기간이어서인지 한 단어 한 문장 써내는 게 곤욕이다. 마치 글자를 처음 배우는 아이가 자음과 모음을 간신히 짜맞춰 하나하나 써내듯 그렇게 글을 쓴다. 그럴 때면 내가 쓰는 게 글인지 글자인지 알 수가 없다.
어찌어찌 간신히 써내고 나서 결국 속으로 운다. 집이라는 아픈 소재를 만났으니 울밖에. 아무리 걸리적거리는 돌맹이 하나를 툭툭 차내며 걷는 것처럼 낑낑 대며 썼다해도 내 아픔이 담긴 글이니. 아직 해결되지 않은, 어쩌면 영원히 내 안에서 소화를 끝낼 수 없는 일인지도 모를 일을 적어냈으니 앓을 수밖에. 속으로 울다 퇴고를 하다 이 글을 쓴다. 이 글 역시 힘겹게 써내려 간다. 내 안의 무엇이 이토록 막혀버린 걸까.
패턴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소설이 읽히면 글을 잘 쓰지 못한다. 한동안 소설을 잘 읽지 못했다. 소설을 읽으려면 나는 우선 마음을 비워야 한다. 머리가 어지러우면 소설에 온전히 집중하지 못한다. 그런 연유로 한동안 소설을 멀리하다 읽고 싶은 소설을 만나 용기를 내어 손을 뻗었다. 오랜만에 잘 읽히는 소설, 그리고 나는 여지없이 앓는다. 소설이 쓰고 싶어서.
에세이나 현안글은 잠깐의 집중력으로 쓸 수 있지만, 소설은 긴 호흡으로 가야 한다. 내가 잠시 그 세계에 살다와야 하기에 소설을 쓸 때마다 나는 주변을 정리해야 한다. 복잡한 마음을 정돈하고 머릿속은 온통 써낼 세상으로 가득 채우고 그렇게 자리에 앉아야 쓸 수 있다. 그러기에 내 일상은 늘 촘촘한 의무들로 가득하고, 나는 차일피일 미루고 만다. 지금은 쓸 수 없어. 소설 핑계를 대는 걸까. 그저 지나가는 슬럼프일까. 두서없이 생각의 흐름대로 적어가는 글자들.
바쁜 일상 속에서 틈틈히 쓰는 걸 은근한 자랑으로 여기기도 하지만, 사실 그런 일상이 가끔 버겁다. 만사 다 제쳐두고 글만 써대고 싶은 욕망이 주기적으로 나를 엄습한다. 속절없이 그 욕망에 갇혀버리면 나는 결국 쓰지 못한다. 지금처럼. 몇 달 전의 나처럼. 그때도 결국 꾸역꾸역 써내고 지금 쓸 수 있는 것들에 집중하자는 마음가짐으로 슬럼프를 이겨냈다. 언제까지 이런 패턴을 겪어야 하는 걸까. 글을 본업으로 삼지 못하는 한 계속될 고민인 걸까.
정리가 되지 않는 글을 쓴다. 퇴고도 할 수 없는 문장들을 나열한다. 마음이 어지러우면 글도 어지러운 법. 이런 글도 남겨야지. 부끄럽더라도 이런 나도 보여야지. 누가 볼까 내 글을. 누가 기다릴까 내 글을. '아무도 보지 않아도, 아무도 기다리지 않아도 쓰겠다' 스스로와 아무리 굳게 약속을 해도 가끔 이렇게 쓰지 못하는 날이 찾아오면 또 낭떠러지로 곤두박질친다. 결국 이렇게 납작하고 옹졸한 마음을 드러내고야 만다.
글은 내게 고해성사이니 그래도 써야지. 또 일어나야지. 다시 써야지. 그렇게 내가 되어야지. 나로 살아야지. 꾸역꾸역 글을 써낸다. 내일은 좀 다르기를. 내일은 다른 내가 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