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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순우 Oct 23. 2022

어느 생존자 이야기

  아이들 옆에서 곤히 자다 슬며시 눈을 뜬 새벽, 시계를 보니 5시쯤이었다. 아직 밖은 칠흑같이 어두웠다. 다시 눈을 감았다. 지금 깨어나면 아침에 몸을 일으키기 힘들다. 다시 자야만 한다. 그렇게 눈을 감고 있는데 바닷물이 가득 들어찬 선실이 내 눈앞에 펼쳐졌다. 90도로 기운 배 안, 구명조끼를 입고 둥둥 떠있는 수많은 사람들, 그들을 구하고자 소방호스를 있는 힘껏 끌어당기는 사람들, 무섭게 들어차는 바닷물, 선체를 때리는 파도소리, 배 안을 가득 채운 절망의 목소리들. 다시 눈을 떴다. 내가 경험하지 않았는데, 왜 이리 선명하게 장면이 떠오르는 것일까. 전날 읽은 책 때문일까. 책 제목은 [홀]이다. 부제는 [어느 세월호 생존자 이야기].


[홀, 어느 세월호 생존자 이야기] 김홍모 만화, 창비 출판


   책을  김홍모 작가는 용산참사, 제주 강정마을 투쟁, 제주 4.3  한국사회의 굵직한 사건들을 그려온 만화가다.  책은 작가가 2년에 걸친 작업 끝에 선보인 작품으로 생존자   명의 가족을 취재해 시나리오를 짜고 그림을 그린 책이다. 작년에 나온 책이지만 도서관에 들어온 책은 여전히 초판이었다. 무언가에 이끌리듯 집어온 책을 단숨에 읽어보았다.  책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이 새벽녘 잠에서  나의 뇌로 고스란히 들어와 연속 재생된 것이었다.


  책 속 주인공의 이름은 '김민용', 실제 이름은 한 번쯤 들어봤을 '김동수' 씨다. 제주도민으로 육지에서 일을 마치고 제주로 오던 길에 세월호에 타고 있었다. 배에서 사람들을 구출하다 가장 마지막에 빠져나온 인물이자, 더 많은 사람을 구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시달리면서 여러 차례 자해를 한 생존자이기도 하다. 김 씨는 배 안에서 한 사람이라도 더 구해야겠다는 생각밖에 하지 못했다고 한다. 문제는 그 시점부터 기억이 끊긴 것. 정신과 의사는 그때 본 것들이 너무 괴로운 기억이라 보호본능의 작용으로 기억나지 않는 것일 수 있다고 했다. 오히려 기억이 안 나는 게 좋을 거라며, 기억을 하게 되면 못 견딜 거라고.


[홀, 어느 세월호 생존자 이야기] 김홍모 만화, 창비 출판, p72-72 장면


  나중에 해경이 찍은 영상 속에서  씨는 혼자 세월호 안을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있었다. 가라앉는 배에서 탈출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안으로 다시 들어가고 있었다. 기억이 다시 돌아왔을 때는 덜덜 떨리는 팔로 구명조끼를 끌어올리고 있었다.  안에는 어린아이가 있었다.  씨는  이후로 온전한 삶을 살지 못했다. 죄책감에 사로잡혀 환영을 보고 자살 시도를 반복했다. 가족들 역시 피해자였다.  씨의 트라우마가 고스란히 가족에게도 전달돼 견디기 힘든 순간들을 자주 맞닥뜨려야 했다.  씨처럼 제주에 살고 있는 세월호 생존자는 모두 24, 전국적으로 172명의 생존 피해자가 있다.


  이들은 자신들만 살아 나왔다는 죄책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죄책감을 느껴야 할 사람은 따로 있는데, 엄연한 피해자인 이들이 고통 속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만화로 엮여있어 금세 볼 수 있는 책이었지만, 장면 장면마다 멈춰 설 수밖에 없었다. 그저 막연했던 배 안의 상황들이 그림으로 살아나 내 머릿속에 들어와 박혔다. 세월호가 침몰한 지 8년, 그해 내 뱃속으로 찾아온 아이는 벌써 훌쩍 자라 학교를 다니는데 세월호의 시간은 여전히 깊은 바닷속에 잠겨있다. 잠시 책을 통해 접한 나도 이런데, 그 장면을 직접 보았던 생존자들은 얼마나 깊은 상흔 속을 허우적대고 있을까.


  착잡한 마음이 책을 덮고도 가라앉지 않았다. 배 안에 아직 사람이 갇혀있다는 생존자들의 절규에도 전원 구출이라는 오보를 버젓이 내보낸 언론들과 가라앉고 있는 배를 그저 바라보고만 있었던 사람들. 세월호 희생자들을 추모하려 한 또래 아이들을 징계한 학교와 희생자 가족을 비웃으며 음식을 먹고 처참한 비유를 일삼던 일베들까지. 공허한 메아리만 퍼졌던 끔찍한 시간들이 머릿속에 계속 떠올랐다. 구조를 애타게 기다리던 아이들과 어린아이들부터 구하라며 손짓을 하신 어르신들까지. 김 씨의 기억을 더듬은 장면들이 책을 읽는 내게도 고스란히 아프게 새겨졌다.


  책을 덮으며 감사함을 느낄 때가 있다. 너무 아픈데도 불구하고 증언해주고 마침내 글과 그림으로 종이에 새겨줘서 참 귀하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이 책이 그렇다. 이 책은 펀딩을 통해 제작됐는데 모두 1,070명의 사람들이 참여했다. 생존자들은 세월호 진실 규명에 있어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이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은 피해자들이다. 배와 함께 침몰한 304명의 목숨처럼 172명의 생존자들도 여전히 그날 그 배 안에 갇혀있다. 절대 잊지 않으리라 다짐한다. 죽는 날까지 연대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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