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렇지 않게 일상을 살다가도 문득문득 감정이 북받쳐 오른다. 늘 사월이 오면 마음이 무너져 내렸는데, 아마 시월도 그런 달이 될 테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시월의 이름은 여행이라며 시월이라는 계절의 찬란함을 노래했는데...... 그렇게 우리는 찬란한 봄이 그렇듯, 이 찬란한 가을마저 어이 없이 쓰러져간 영혼들을 떠올리며 가슴을 부여잡겠지. 준비했던 많은 글들을 쓸 수가 없다. 계속 영혼이 이태원에 머문다. 쇼핑을 하러, 여러 나라 음식들을 맛보러 갔던 그 골목들이 자꾸 떠오른다.
세월호가 침몰한 지 이제 고작 8년이 지났다. 채 아픔이 가시기도 전에 벌어진 참사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세월호에 타고 있던 아이들이 자라 이십 대 청년이 되었다. 이번 참사에서 희생된 대다수의 사람들도 이십 대다. 그들은 나라를 신뢰할 수 있을까. 어른들을 믿을 수 있을까. 이대남이니 이대녀니 불러대며 세상을 모른다 손가락질을 하고, 코로나19의 여파로 피 끓는 청춘들이 몇 년째 마음 편히 놀아보지도 못했으며, 취업난으로 일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고, 폭등한 집값으로 결혼과 출산, 내 집 마련은 아예 포기해버린, 투자라도 하려하면 노동은 하지 않고 돈만 안다고 손가락질 해온 어른들을 그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우리는 대체 8년 동안 무엇을 한 걸까. 진상규명도 제대로 하지 못했고, 남은 사람들의 가슴도 제대로 어루만져주지 못한 채 하염없이 세월만 흐르고 있다. 그 위에 벌어진 또 하나의 비극이라니. 이 어이 없는 참극 앞에서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누군가는 헌화를 하고 편지를 쓰고 눈물을 짓는데, 누군가는 다른 지역에까지 몰려가 핼러윈 파티를 하고 애도를 비웃으며 죽어간 자들을 탓한다. 인간성을 상실한 이 땅의 실체가 외신을 타고 전세계에 퍼지고 있다. 인간에게 부끄러움이 언제부터 일부 인간만이 느끼는 감정이 된 걸까.
내 아이가 커가고 있다. 그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은 조금이라도 달라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눈을 크게 뜨고, 목소리를 높이지만 물거품처럼 사라지는 느낌만 명료하다. 힘 없는 내가 할 수 있는 건 무엇일까. 그래, 글이지. 글이었지. 글은 나만의 작은 민주화운동이었지. 그런데 왜 이리 힘이 빠질까. 세월호 때도 한참동안 무기력함에 빠져 있었던 것 같은데, 이번엔 또 얼마나 오랫동안 이런 감정 속을 허우적대게 될까.
섬의 억새가 장관인 계절인데, 찬란한 억새를 마주할 자신이 없다. 이 눈부신 자연을 두고, 선물 같은 귀한 가을날을 두고 떠나버린 수많은 영혼이 자꾸 아른거린다. 세상이 왜 이래. 지인의 아들이 했다는 그 말에 몸과 마음이 무너진다. 미안하고 미안하다. 이렇게 무기력한 내가 어른이라 미안하고, 여전히 세상이 거지 같아 정말 미안하다. 무엇을 해야 할까. 어떻게 해야 할까. 무엇부터 다시 쌓아 올려야 하는 걸까. 눈부신 햇살이 야속하게만 느껴지는 깊은 가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