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자들을 향해 편지를 쓴 적은 있지만, 잘 모르는 다수의 누군가를 생각하며 편지를 쓰는 건 처음인 것 같습니다. 청춘이라고 뭉뚱그렸지만 이 땅의 이십 대를 향해 글을 씁니다. 저는 섬에 처박혀 살지만 마음에 쌓아 둔 부채감을 덜고자 세상을 향해 오감을 열고 살아가며 글을 쓰는 평범한 사십 대입니다.
저는 마흔을 넘기면서 더는 부정할 수 없는 어른이 되었다고 느꼈습니다. 만 스무 살에 성년식을 하지만, 그 나이가 됐다고 자신이 진짜 어른이라 느끼는 사람은 많지 않죠. 계절의 변화가 그러하듯 어른이 되는 것도 어느 날 갑자기가 아니라 서서히 되어가는 것이더군요. 부끄럽게도 사십 대가 되어서야 저는 제 자신뿐만 아니라 세상에 대한 책임감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이 글은 책임을 다 하지 못한 한 어른이 미안함에 끼적이는 글입니다.
이십 대는 사회가 인정한 어른이긴 하나 어느 것 하나 자신의 뜻대로 할 수 없는 불분명한 고난의 시기입니다. 저는 한때 저의 이십 대를 돌아보는 것조차 거부했습니다. 그 시절의 제가 너무 나약하고 줏대가 없어서 보기 싫었던 것이죠. 중년의 나이가 되고서야 다시 저의 이십 대를 똑바로 마주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불현듯 알게 됐습니다. 어떤 비루한 모습이더라도 그 자체로 반짝이는 게 청춘이었다는 것을요.
저야 시간이 좀 흘러 아무리 비루했어도 푸른 청춘이었다 포장할 수 있지만, 지금 청춘인 사람들이 자신의 현재를 낭만으로 받아들이기는 힘들죠. 어른들의 말처럼 대학만 가면 세상이 열릴 것 같았지만 한 살 한 살 먹을수록 정작 발 디딜 수 있는 세상은 더 좁아지고, 꿈을 펼치려 하면 꿈을 갖는 것 자체가 사치가 되는 진짜 세상을 맞닥뜨리게 되니까요. 그런 세상과 지금의 나를 받아들이는 것조차 버거울 텐데, 어른들이 얼토당토않게 벌이는 수많은 참극을 보면서 얼마나 더 상실감이 클까요.
십 대 때 세월호가 또래 친구들을 품고 가라앉는 비극을 목격한 것으로도 모자라, 이십 대가 되어 서울 한복판에서 또래 친구들이 사람에 끼어 죽어간 믿지 못할 장면을 마주하고야 말았습니다. 어른들이 말한 대로 공부만 열심히 했을 뿐인데, 어른들이 말한 대로 가만히 있었을 뿐인데 왜 이런 일이 우리 세대에게만 반복되느냐고 의문이 피어오를지도 모르겠습니다. 마땅한 분노이고 당연한 슬픔입니다.
억울한 일이 두 참사만은 아닐 것입니다. 이대남 이대녀라 이름 붙여 정치권에서 편을 가르고, 너네들이 세상을 아느냐 정치를 아느냐는 비난도 받았죠. 이십 대가 되어 좀 자유를 만끽하려 하니 코로나19가 들이닥쳐 제대로 놀아보지도 못했을 겁니다. 취업을 하려 하니 코로나의 여파로 경기는 얼어붙고 일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상황이죠. 투자라도 해보려 하면 일은 안 하고 돈만 안다며 손가락질하는 어른들. 결혼도 출산도 내 집 마련도 꿈조차 꿀 수 없는 세대, 그게 바로 지금의 청춘입니다.
윗 세대들은 저마다 자기 세대가 더 힘들었다고 항변하며 이 시대 청춘의 아픔을 축소하거나 외면합니다. 어느 세대든 아픔이 있습니다. 상대적일 수밖에 없는 아픔에 절대적인 기준을 들이대 타 세대의 아픔을 무시하는 건 옳은 태도가 아닙니다. 세대마다 아픔의 모습이 다를 뿐, 고통은 똑같습니다. 누구나 자신의 아픔이 가장 큰 법이지요. 이전 세대보다 풍족한 시대에 자랐다 해서 아픔이 없는 게 아닙니다. 그 누구의 삶도 쉽지 않은 게 인생이니까요.
세월호가 가라앉은 지 팔 년이 흘렀는데도 어른들이 뽑아 놓은 정치인들은 여전히 국민의 안전을 제대로 보장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게 대체 나라인가, 어른들은 대체 무얼 하고 있었나, 선진국 반열에 올랐다더니 길거리에서 백여 명이 숨지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지는 게 말이 되나, 수많은 물음표가 따라올 것입니다. 모두 어른들의 잘못입니다. 자기 밥그릇만 챙기고, 정치에 무관심하며, 공부만 잘하면 세상을 다 가질 수 있는 것처럼 거짓말을 해온 어른들의 명백한 잘못입니다. 정말 미안합니다. 이런 나라밖에, 이런 정치인밖에 세우지 못해 정말 미안합니다.
참사가 일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마음을 추스리기가 어렵습니다. 관련 뉴스들을 똑똑히 지켜봐야지 다짐을 하다가도, 열면 열수록 어이없는 상황이 이어져 분노가 자꾸 솟아오릅니다. 아마 저보다 더 아픈 날들을 보내고 있겠죠. 또래 친구들이 죽어갔으니까요. 그저 하루 즐거운 시간을 보내려 했을 뿐인데, 혹은 그곳에 일을 하기 위해 들렀을 뿐인데, 연유도 듣지 않고 거기에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난도질당했으니까요. 대체 우리가 무얼 그리 잘못했나, 이제 좀 이십 대의 일상을 영위하려던 것 뿐인데 이렇게 죽는다는 게 말이 되나, 세상을 향해 억울함과 분노가 치솟을 것입니다.
오랜 시간이 걸리겠지요. 우리의 분노와 답답함이 평정을 찾으려면…… 그게 과연 가능한 일인지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어른이 됐는데도 여전히 세상은 어렵기만 하고, 이해할 수 없는 것들 투성이에요. 제 경우도 제 또래가 겪은 여러 사회적 트라우마가 아직도 내면에 숨어 있을 때가 있거든요. 기억을 소환하면 잠잠했던 수면에 서서히 파장이 일어납니다. 이번 일도 아마 그런 기억으로 남겠지요. 세월호가 섬광 기억으로 각자의 머릿속에 선명하게 남았듯, 이태원 참사도 섬광처럼 우리 뇌를 파고들겠지요. 그리고 매년 울긋불긋 나무들이 물들기 시작하면 또 많이 아프겠지요. 또 많이 앓겠지요.
믿기 힘든 어른이지만, 그럼에도 손을 함께 잡자고 조심스레 말을 건네 봅니다. 더 노력할게요. 어른들이 먼저 나서서 정치권을 감시하고, 더 안전한 나라를 만들기 위해 머리를 맞댈 게요. 어른들이 죄다 양치기 소년으로 보이겠지만, 다시는 믿기 어렵겠지만, 함께 목소리를 내고 조금 더 힘을 내보자고 말하고 싶습니다. 저 역시 미약하지만 더 눈을 크게 뜨고 제가 있는 자리에서 더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한 명의 시민이라도 더 깨어날 수 있도록 작은 힘을 보태겠습니다. 그렇게 함께 진짜 어른이 되어갔으면 좋겠습니다. 다시 한번 진심으로 미안하고 또 미안합니다.
이 글은 조금 수정되어 오마이뉴스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