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이 다시 살아나기를 바란다
진도군민의 아픔
2014년 4월 갑작스럽게 바다로 가라앉은 세월호. 사고가 난 뒤 가장 많이 사람들이 오가고, 언론에도 보도된 장소는 어디일까. 바로 '팽목항'이다. 팽목항은 전라남도 진도군에 위치한 항구다. 유가족들이 머무는 곳이자, 실종자 수색 작업의 중심 거점이었고, 여전히 세월호 희생자 추모를 위해 많은 사람들이 찾는 장소다. 8년의 세월동안 팽목항은 항구이기보다 세월호를 위한 곳으로 더 많은 역할을 해왔다.
그 시간 동안 숨죽여 살아온 사람들은 누구일까. 유가족과 생존자들도 있지만, 진도군민들 또한 숨죽여 지낼 수밖에 없었다. 운림산방, 울돌목, 진도개 테마파크, 금치산 전망대, 세방낙조 전망대 등 진도에서만 즐길 수 있는 명소가 많지만, 세월호 이후 많은 사람들이 즐기기 위해 이 곳을 찾는 걸 꺼렸다. 진도 관광객이 현저히 줄어들어 군민들의 피해가 컸지만, 이들은 300여 명이 목숨을 잃은 비극 앞에 어떤 아쉬운 소리도 낼 수 없었다. 피해가 있어도 있다고 말할 수조차 없었다. 갑자기 떠난 이들의 죽음도 무겁지만, 살아있는 이들의 생계 역시 가볍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코로나 3년의 이태원
이태원을 바라보며 마음이 착잡하다. 이태원은 어떤 곳인가. 코로나로 인해 지난 3년 간 가장 타격을 많이 입은 곳 중 하나다. 절정은 2020년 5월이었다. 이태원클럽을 방문한 사람이 확진되면서, 일대는 한겨울처럼 얼어붙었다. 한창 확진자의 동선이 낱낱이 공개되던 시점이었다. 확진자도 그렇지만, 이태원이라는 공간도 많은 사람들의 표적이 되었다. 지금이야 하루 확진자 수가 수만 명에 이르러도 사람들이 꿈쩍하지 않지만, 그 당시만 해도 분위기는 달랐다. 확진은 곧 낙인이었다. 바이러스를 피하지 못한 죄인이라는 사회적 낙인.
이태원에는 한동안 사람이 다니지 않았다. 임대료와 인건비, 운영비 등은 그대로 나가는데, 운영시간은 축소됐고 오가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많은 가게들이 문을 닫았고, 많은 이들이 이태원을 떠났다. 일부 관련자들은 생활고를 비관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배달이 가능한 업종으로 변경한 이들도 많았다. 그렇다고 장사가 확연히 나아진 건 아니었다. 소상공인 코로나 지원금을 간간히 받았지만, 밑 빠진 독에 붓는 적은 양의 물은 큰 도움이 되지 않았다.
다양성의 상징, 이태원이 잠들다
이태원의 상황이 나아진 지는 그리 오래 되지 않았다. 영업시간 제한이 풀리면서 이태원에는 다시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정점에 이번 핼러윈이 있었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해제된 상태, 영업시간 제한이 완전히 풀린 상태에서 맞이한 첫 핼러윈이었다. 상인들은 누구보다 재기를 희망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곳에서 예기치 못한 비극은 벌어졌고, 다시 한번 열심히 장사를 해보려던 사람들은 추모를 위해 자발적으로 문을 닫았다.
서울시는 강남구청, 용산구청, 영등포구청 등을 통해 '이태원 핼러윈데이 사고 관련 식품접객업소 안전관리 강화 요청' 공문을 내려보냈다. 이 공문에는 '핼러윈 기간까지 자발적 영업 중단 및 특별행사 자제를 권고드린다'는 문구가 포함됐다. 용산구는 자체 애도기간을 정부보다 긴 11월 말까지로 정했다. 해당 기간의 모든 행사와 회의 등 단체활동 프로그램을 중단하기로 했다. 사실상 지역 내 행사와 상권이 셧다운된 것이다.
이태원은 어떤 곳인가. 세계 곳곳의 다양한 음식을 즐길 수 있는 곳, 성소수자들을 위한 클럽이 자리한 곳, 타 지역에서는 건립조차 부정 당하는 이슬람 사원이 있는 곳. 한국 사회에서 보기 드문 다양성이 용인되는 장소가 바로 이태원이다. 일본, 중국, 미국, 이란, 호주, 오스트리아, 노르웨이, 러시아 등 참사 희생자의 국적이 다양한 건 이태원이 우리 사회에서 어떤 위치인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런 이태원이 잠들어 있다.
이태원은 다시 살아나야 한다
정부가 못박은 애도 기간이 끝나면서, 문을 닫았던 일부 상인들은 영업을 재개했다. 참사 희생자들을 생각하면 더 오래 문을 닫아야 하지만, 이들에게는 가게 문을 여는 게 어쩔 수 없는 선택이기도 하다. 수많은 사람들의 생계가 이곳에 묶여 있다. 조심스레 다시 문을 연 사람들에게 손가락질만은 하지 않았으면 한다. 이왕이면 추모를 하러 간 이들이 이곳에서 밥을 먹고, 차를 마시길 바란다.
진도군민들처럼 이들은 자신의 아픔을 크게 드러낼 수 없다. 희생자들보다 더 큰 목소리를 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들 또한 아프다. 드러낼 수 없기에 아픔으로 크게 곪아가도 눈치채기 힘들다. 이들의 손해는 누군가 보상해주지도 않는다. 지자체나 정부에 직접 손을 내밀기도 어려울 것이다.
다시 사람들로 북적이는 이태원을 상상한다. 그렇다 해서 이태원이 추모를 잊은 건 아니라고 믿는다. 추모가 꼭 조용해야 하는 건 아니다. 추모는 떠들썩할 수도 있다. 어쩌면 그것이 진짜 희생자를 생각하는 길이고, 진짜 이태원을 위한 길인지도 모른다. 특유의 다양성이 빛나는, 누구나 언제든 찾을 수 있는, 안전한 이태원으로 다시 돌아오기를 간절히 바란다.
프로젝트 얼룩소에 같은 글을 게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