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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순우 Dec 21. 2022

여섯 살 무신론자

  나는 무신론자다. 신은 없다고 믿는다. 그렇지만 누구보다 종교를 가진 사람들을 존중하고, 종교가 필요했던 역사와 인간의 본성을 이해한다. 내가 이렇다보니 아이들도 무신론자다. 아이들은 자주 신의 유무에 대해 토론을 벌이곤 하는데, 아무래도 부모가 종교를 믿지 않다보니 이 토론의 방향도 결국 없다는 결론으로 흐른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는 둘째가 다니는 어린이집이 교회 소속이라는 것.


"엄마 예배 꼭 해야 돼?"

  수요일마다 교회 목사님이 오셔서 어린이집에서 예배를 진행하신다. 아이는 언제부턴가 예배를 거부하기 시작했다.

"나는 하나님 안 믿는데 왜 예배를 해야 돼? 안 하면 안 돼?"

"너가 OO어린이집을 다니고 싶어서 다니는 거잖아. OO어린이집은 OO교회에서 운영하는 거고. 그러니까 예배도 해야 하지 않을까?"

비록 헌법재판소가 최근 육군훈련소가 종교 행사에 강제로 참석하도록 하는 행위는 종교의 자유를 침해해 위헌이라고 판결했지만, 이 어린 녀석더러 너도 종교의 자유를 외치라고 할 수는 없으니... 나는 그저 조용히 다니기를 속으로 바라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내게 같은 반 친구 이름을 하나씩 대면서, 하나님을 믿는 친구와 믿지 않는 친구를 구분해 말해주었다.

"엄마 OO는 하나님 믿는대. 근데 XX는 나처럼 하나님 안 믿어."

며칠 뒤에는 이렇게 말했다.

"엄마 OO도 이제 하나님 안 믿는대."

"헐 혹시 너가 설득한 거야?"

"응. 내가 진짜 없다고 막 했더니 OO도 안 믿겠대."


  의기양양하던 녀석은 일주일쯤 뒤 다시 풀 죽은 모습으로 이렇게 말했다.

"엄마 OO가 다시 하나님 믿는대. XX는 원래 나처럼 하나님 안 믿었는데 이제 믿기로 했대."

"그럼 어린이집에 하나님 안 믿는 사람이 너 밖에 없는 거야?"

"응."

"괜찮아?"

"이제 싸울 수가 없어. 친구들은 전부 믿고 나만 안 믿으니까. 어떻게 싸움이 되겠어."

옆에서 이야기를 듣던 남편이 한 마디 했다.

"장난감이 있나 없나로 싸워야 할 나이에, 신이 있나 없나로 싸우다니..."


  그 뒤로 아이는 신의 유무에 대해 더이상 친구들과 논쟁을 벌이지 않는 눈치였다. 안타깝게도 쪽수에 밀렸다고나 할까. 투덜투덜 대면서 아이는 여전히 수요일 예배에 참석한다. 교회 소속이다 보니 어린이집 선생님들도 모두 기독교 신자인데, 혹시 우리 아이가 신이 없다고 주장하는 말을 듣고 아이를 미워하지는 않을까 약간 염려가 됐다. 다행히 아직까지 그런 낌새는 보이지 않고, 선생님들은 항상 친절하게 아이를 대해 주신다. 그런데 오늘, 마침 수요일이라 예배를 하고 돌아온 아이가 내게 말했다.


"엄마 예수는 분명 죽었잖아. 근데 선생님이 예수님이 내 옆에 있대."

  밥을 먹으면서 이 얘기를 듣다가, 남편과 나는 빵 터졌다. 예수님이 옆에 있다는 이 심오한 이야기를 아이가 어찌 받아들일까.

"와 진짜? 그래서 넌 뭐라고 했어?"

"예수님이 투명 인간도 아니고. 내 옆에 보이지도 않는데... 그래서 내가 예수님이 혹시 미생물이냐고 물어봤어."

이번에는 첫째까지 빵 터졌다. 우리 가족은 밥을 먹다 말고 정신 없이 함께 웃었다. 근데 웃다보니 좀 걱정이 됐다. 선생님이 기분 나쁘셨으면 어쩌지.

"선생님이 혹시 그 말 듣고 뭐라고 하셨어?"

"아무 말도 안 하시던데?"

아... 선생님이 얼마나 당황하셨을까. 아이는 계속 이 어린이집을 미움받지 않고 다닐 수 있을까.


   다시 정신을 차리고 밥을 먹는데, 아이가 또 묻는다.

"엄마 근데 부담되는 게 뭐야?"

"음... 부담은 마음이 좀 불편한 걸 부담스럽다고 해."

한참 입에 음식을 넣고 오물거리면서 골똘히 생각하더니 다시 물었다.

"아, 잠 잘 때 팬티가 엉덩이 껴서 불편한 거, 그런 게 부담스러운 거야?"

우리 가족은 또 빵 터져서 입 안에 음식물도 제대로 씹지 못하고 정신없이 웃어댔다. 첫째는 먹던 음식을 뱉을 것처럼 크게 웃었고, 그 모습이 또 웃겨 남편과 나는 한참 깔깔댔다.


"그건 몸이 불편한 거고. 부담스러운 건 마음이... 잠깐만 사전 찾아서 알려줄게."

나는 결국 밥을 먹다 말고 사전을 뒤져서 아이에게 읽어주었다.

"부담스럽다는 어떠한 의무나 책임을 져야 할 듯한 느낌이 있다."

잠깐 생각을 하던 아이가 말했다.

"음...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는데?"

우리는 또 한번 크게 박장대소하며 웃었다. 이 작은 영혼은 대체 신이 뭔지, 우주가 뭔지, 자신이 뭔지 알고 있는 걸까. 너무나 진지하게 물어보고, 또 자신의 논리를 펼치는 걸 보면, 언제 이렇게 컸나 싶어 기특하다. 지금 이 모습이 퍽 사랑스러워서 천천히 컸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이 글은 우리 가족이 모두 함께 웃었던 한 때를 기록하고 싶어 남긴다. 너희가 있어서 오늘도 웃는다. 참, 이 녀석이 가장 관심을 보이는 이야기는 신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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