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동쪽에 터 잡은 지 어느덧 십 년째다. 요즘 들어 부쩍 마음이 요란하다. 십이라는 숫자 때문이다. 어쩌다 나는 아무 연고도 없는 이곳에 흘러 들어와 십 년 가까운 시간을 보내게 되었을까. 그 사이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고, 새로 올린 집은 점점 세월의 더께를 더해간다. 요란한 마음은 환경부의 제2공항 조건부 동의 소식으로 더 시끄러워졌다.
제2공항 이야기가 시작된 지도 어느덧 7년이 넘게 흘렀다. 국토부는 2015년 11월 처음으로 제2공항 부지를 확정해 발표한 뒤, 2019년 6월 전략환경영향평가서 초안을 환경부에 제출했다. 7년이란 시간 동안 초안은 본안이 되고 수차례 보완과 재보완의 과정을 거쳤다. 그리고 7년 남짓만에 '조건부 동의'라는 결론을 이끌어냈다. 전 정권 하에서는 어림 없던 동의가 정권이 바뀌고 대뜸 동의로 바뀌었으니, 색안경을 쓰지 않고 바라보기가 어렵다.
그 사이 제주의 민심도 오락가락했다. 우리집에서 차로 고작 이십 분 거리인 예정부지 인근에는 지난 몇 년간 찬성과 반대를 주장하는 수백 개의 깃발이 대치해 나풀거렸다. 선거 때만 되면 의견은 더 양분되어 나타났다. 일례로 지난 지방선거에서 제주도는 민주당의 오영훈 후보가 도시사로 당선되었다. 제주 대부분 지역에서 오영훈 후보의 득표율이 더 높았는데, 예정부지 인근만 국민의힘 후보가 더 높은 득표를 했다. 제2공항 건설 찬반 여론조사 결과를 봐도 예정부지 인근에서는 찬성 의견이 더 많고, 나머지 지역에서는 반대가 근소한 차로 더 많은 상태다.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의견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짐작해볼 수 있는 대목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처음에는 나도 반색을 했다. 당장 제2공항이 건설되면 내게 떨어지는 이득이 더 많았다. 부지 인근이니 당장 집값이 오를 것이고, 주변에 호텔이나 각종 상권 등 많은 관련 시설이 들어설 것이다. 공항이 가까우니 육지를 오가기가 편해진다. 평소 환경에 관심이 많고 진보적인 의견을 내던 이웃들도 공항 문제에 있어서는 찬성 의견을 내는 이들이 많았다. 내 밥그릇이 커지는데 나서서 반대할 사람은 많지 않았다.
여기에는 오랜 염원도 숨어있다. 제주의 동쪽은 서쪽에 비해 낙후되어 있다. 제주에 이주민들이 한창 몰려올 때 우스갯소리로 한 말이 있다. 돈 많은 사람은 서쪽으로 가고, 돈 없는 사람들이 동쪽으로 왔다고. 서쪽은 중문관광단지와 국제영어도시를 비롯해 많은 곳이 개발되었다. 게다가 몇몇 연예인들이 애월읍에 터 잡은 일이 알려지면서 더 유명세를 탔다. 그 영향으로 서쪽은 늘 붐비는데 반해 동쪽은 상대적으로 조용했다. 제주를 자주 오가고 동쪽과 서쪽의 다른 분위기를 잘 아는 사람들 중에는, 동쪽의 한적함이 좋다며 일부러 동쪽에만 머물다 가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대다수는 여전히 서쪽을 더 많이 방문한다. 집값도 더 높고 개발도 더 많이 되고 사람들의 시선도 서쪽으로 더 쏠리니, 상대적인 박탈감이 없었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제주는 이주민이 밀려오면서 지난 십 년 동안 급변해왔다. 일자리가 많지 않은 제주에 터를 잡고 살아가자니, 대다수의 이주민이 선택할 수 있는 건 숙소나 음식점, 카페 등이었다. 여기저기 새로운 건물이 들어서고 작은 동네에도 숙소와 카페 등이 생겼다. 지난 십 년 동안 변하지 않은 동네가 없을 정도다. 그만큼 경쟁도 심해져 먹고 살기가 힘들어졌다. 살인 사건이나 실족사 등 사건이 벌어지면 몇 달은 손님이 끊겼다. 가장 타격이 심했던 건 사드였다. 수많은 사람들이 장사를 접어야 했다. 나 역시 장사를 접어야 하나 심각하게 고민했던 시기였다.
코로나 여파로 해외여행객이 급감하면서, 반사 이익으로 국내여행지인 제주도는 기적적으로 다시 살아났다. 첫 해는 손님이 많지 않았지만, 코로나 2년째가 되자 사람들이 물밀듯이 들어왔다. 비수기 성수기 가리지 않고 웅크리고 있던 사람들이 기지개를 피며 몰려왔다. 문을 닫았던 곳들이 속속 다시 문을 열었다. 기쁨도 잠시, 지난해 가을부터는 다시 관광객이 줄고 있다는 게 피부로 확연히 느껴지기 시작했다. 코로나가 잠잠해지고 해외여행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제주는 다시 코로나 이전의 불경기에 접어들고 있다. 이번 터널은 또 얼마나 길고 어두울까.
그 와중에 환경부의 제2공항 조건부 동의 소식이 들려왔다. 마음이 복잡하다. 7년 전에는 내 밥그릇만 생각했지만, 지금의 나는 그렇지만은 않다. 내 집이, 내 유일한 재산이 이 곳에 없었다면 과연 찬성했을까 반대했을까 생각해본 적이 있다. 나는 분명 제2공항 건설에 반대했을 것이다. 작은 섬에 왜 공항이 두 개여야 하나. 조류 서식지를 보호하기 힘들고 숨골도 막혀 지하수 확보도 쉽지 않은 데 뭐하러 공항을 짓느냐. 대번에 반대의 의견을 냈을 것이다. 생각이 거기에 이르니 내 밥그릇만 고려한 날들이 부끄러웠다. 솔직히 말하자면 지금도 내 자아는 공항 문제와 관련해 두 개로 분열돼 있다.
누군가에게 제2공항 문제는 일생일대의 기회일 것이다. 평생 한 자리만 알고 살아온 누군가에게는 날벼락 같은 일일 테고. 자주 공항을 들락거리는 사람에게는 툭하면 비행기가 지연되고 결항되는 차에 무척 잘 된 일일 것이다. 자주 공항을 가지 않는 이들에게는 굳이 환경을 파괴하면서까지 할 필요는 없는 일일 것이고. 지난 십 년간 장사를 하면서 단 한 번도 마음을 놓지 못했던 내 입장에서는 기회였다가, 아이들이 살아갈 미래와 철마다 찾아오는 새들을 바라보는 내 입장에서는 크나큰 재앙이다.
지난 주 아이들과 산책을 하다 수천 마리도 넘는 새들을 만났다. 제주 동쪽은 섬에서 유일하게 갯벌이 자리한 곳이다. 서쪽에서 동쪽으로 올수록 모래는 점점 검어지고 진득해진다. 용천수와 바닷물이 만나는 곳에는 풍부한 새들의 먹이가 산다. 그 먹이를 따라 여름에는 백로와 황로, 해오라기가 드나들고 겨울이면 멸종위기종인 저어새를 비롯해 왜가리, 흑두루미, 흰꼬리수리, 수많은 오리류가 찾아온다.
지난 산책에서는 귀한 저어새를 만났다. 맨눈으로 관찰하는 저어새라니. 뭉특한 부리로 먹이 잡는 모습이 너무 신기해서 아이들과 한참 지켜보았다. 수백 마리의 새들이 일제히 하늘로 날아오르는 모습, 수백 마리의 갈매기들이 갯벌에 내려앉아 쉬는 모습, 다리가 긴 새들이 유유히 거닐며 물 속으로 부리를 담갔다 빼는 모습 등을 두 눈 가득 담는 시간이었다. 아이들은 돌아오는 길에 이렇게 말했다. 제주는 새박물관이야. 새동물원이라고 해야 할까.
내가 아이들에게 물려줘야 할 건 돈일까 환경일까. 선택지가 두 곳 뿐이라는 게 억울한 심정이다. 분명한 건 공항이 정말 들어서면 내 주머니는 두둑해질지 모르나, 내 죄책감은 아주 오래 지속될 것 같다는 예감이다. 나는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할까. 내가 사랑한 제주를 떠올린다. 내가 바라는 제주와 아이들이 살아갈 제주를 상상한다. 환경부의 조건부 동의로 공은 제주도로 넘어왔다. 제주도는 어떤 결정을 내리게 될까. 나는 어떤 제주에서 살아가게 될까.
*오마이뉴스에도 같은 글이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