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비가 온다. 봄비. 두 글자만으로 설렐 수 있다니. 언어는 때로 마법 같다. 빗소리와 서정적인 음악소리가 어우러지는 틈을 비집고 새소리가 날아든다. 비를 맞으면서도 재잘거리는 새들에게는 무슨 사연이 있을까. 나는 늘 이야기가 궁금하다. 한 사람이 살아온 이야기, 한 사람의 생각에 관한 이야기, 한 시대가 혹은 한 지역이 겪어온 이야기. 글 쓰는 삶을 살고 싶다 생각했을 때부터였을까. 글은 맥락이니, 사람을 볼 때도 맥락이 궁금했다. 이 사람은 어쩌다 이런 사람이 되었을까.
끊임없이 사람에 대해 생각하는 나날이다. 열 살 무렵 귀신이나 유령이 제일 무서웠던 아이는 어느 순간부터 사람이 제일 무섭다. 한밤중 갑자기 골목길에서 튀어나오는 낯선 사람도 공포지만, 알던 사람을 더는 모를 것만 같은 순간에도 두려움은 몰려온다. 새로운 사람을 알게 되면 그 사람을 머릿속에 그려보곤 한다. 웬만하면 백지로 놔두려 하지만, 나도 모르게 나는 한 사람을 내 안에서 창조하고 만다. 그 사람이 내뱉은 단어들, 알게 된 사연들, 갖가지 표정과 제스처들까지 모든 건 한 사람을 빚는 재료로 쓰인다. 조각이 많을수록 더 구체적인 사람이 된다.
그럼에도 어렵기만 한 게 사람이다. 완전한 모습으로 결코 그려낼 수 없는 게 사람이고. 타인에게 나도 그렇게 어려운 존재일까. 만나자마자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단순한 사람이 좋을 때도 있지만, 만날수록 깊이가 더해지는 사람에게 신뢰가 갈 때도 있다. 일관된 사람이 낫지 싶다가도, 날씨 같은 감정을 지닌 사람이 어떻게 일관될 수 있을까 하는 궁극적인 의문에 빠지기도 한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옛 말이 되살아난다. 사람을 알아가는 것만큼 멀고 먼 길이 또 있을까.
그 무엇도 될 수 있는 수많은 얼굴들에 대해 생각한다. 직접 타인을 해칠 수도 있고, 자기 손에는 피 한 방울 묻히지 않아도 수십 수만 명을 학살할 수도 있는 잔인한 얼굴에 대해. 머리부터 발끝까지 모든 게 다른 타인을 온전히 이해하고 끌어안을 수도 있는 인자한 얼굴에 대해. 가보지 않은 저 먼 우주의 비밀을 한 자리에서 밝혀낼 수도 있는 신비로운 얼굴에 대해.
인간은 그러니까 무엇이든 될 수 있다. 다시 말해 나 역시 무엇이든 될 수 있다. 이는 얼마나 희망적이고 동시에 얼마나 절망적인가. 그 머나먼 간극에 아찔해지다가도, 다시 정신을 차리고 내가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을 똑바로 응시한다. 나는 무엇이 되고자 하는가. 나의 얼굴은 무엇인가.
무엇이 되려다 아무것도 되지 않는 것보다 더 두려운 건, 내가 가장 싫어하던 얼굴이 되는 것이다. 내가 괴물 같다 손가락질하던 존재가 되는 것. 혐오하던 얼굴을 내가 지니게 되는 것. 인생의 풍파가 정신을 차리지 못할 정도로 불어닥칠 때에도 그런 얼굴이 되지 않으려면 나는 어떻게 서야 할까. 나는 오래오래 그것에 대해 생각한다. 꽤 단단하게 뿌리내리고 서 있을 때에도 방심할 수가 없는 건 그 때문이다.
두 해 전 아이가 학교에서 작은 화분 하나를 가져왔다. 동글동글한 이파리 끝에 앙증맞은 노란 꽃이 달린 사랑스러운 생명이었다. 이름은 애니시다. 꽃말은 결백, 겸손 그리고 청결. 싱그럽게 빛나던 꽃이 시들고 잎마저 모두 떨어지는 건 한순간이었다. 남편은 화분을 비우고 마른 가지를 구석진 땅에 꽂아두었다. 잊고 지낸 가지에서 잎이 하나둘 돋기 시작한 건 수개월이 지난 어느 날이었다. 볕이 잘 드는 곳에 땅을 파 부랴부랴 옮겨 심었다. 잘 자랄 수 있을까. 내가 믿는 건 늘 내 손이 아니라 땅의 힘이다.
옮겨 심은 가지는 봄과 여름의 햇살을 받으며 튼튼하게 뻗어 나갔다. 꽃이 피진 않았지만, 가지가 뻗고 잎이 돋는 것만으로도 마음은 풍성해졌다. 지난해 유독 거센 태풍이 지나던 날, 애니시다의 가지 하나가 처참하게 부러졌다. 살 수 있을까.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무엇일까. 한 생명을 기르는 건 늘 어렵기만 하다. 부러진 가지를 치우고, 다시 잘 자라기만을 바랐다. 그렇게 또 한 번의 겨울이 지났다.
지난 몇 주 동안 나는 꽃의 예감 속에 살고 있다. 다시 살아난 애니시다의 가지 끝마다 꽃봉오리가 달려있다. 드디어 꽃을 피워내려 하는구나. 작고 작았던 녀석은 두 해를 견뎌낸 끝에 아이의 키만큼 훌쩍 자랐다. 태풍을 이겨낸 가지는 더 튼튼해졌고, 부러졌던 곳에는 새살이 돋았다. 그리고 마침내 꽃을 피워내려고 온 힘을 다하고 있는 것이다.
며칠 전부터 하나둘 노란 꽃들이 피어나는 걸 바라보며, 서툰 손길과 거친 땅에서도 져버리지 않고 피어난 한 생명에 감사하기만 하다. 모든 꽃망울이 터져 나와 노랗게 빛날 순간을 머릿속에 수없이 그려본다. 얼마나 찬란할까. 적절한 순간에 내리는 봄비가 반갑다. 너는 결국 너가 되었구나. 그 무엇도 아닌 너가. 그러고 보면 그저 내가 되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힘겹고 고된 일인지. 오랫동안 땅의 힘으로 네가 자란다고만 생각했는데, 꽃이 피어나는 걸 보면서야 깨닫는다. 너는 너의 힘으로 네가 되었구나. 비로소 너다운 얼굴을 가진 네가.
덧. 며칠 망설이다 겨우 나의 글을 쓴다. 봄비와 꽃의 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