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여섯 살부터 이십 대 초반까지 안경을 썼다. 계속 쓰는 건 영 불편해서 수업시간에만 칠판을 보기 위해 꺼내곤 했다. 안경을 벗지 못할 만큼 눈이 나쁜 편은 아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스물두 살에 처음 렌즈를 맞췄다. 당시는 아나운서 지망생이라 카메라 테스트를 준비했는데, 카메라 위치를 정확히 찾지 못하는 스스로를 발견하고는 결국 렌즈를 끼게 되었다.
뭐가 달라지겠어. 똑같겠지. 이런 나의 생각은 렌즈를 착용함과 동시에 와장창 깨져버렸다. 안경점에서 맞춘 렌즈를 처음 끼고 인근 화장실에 들어간 나는 정말 화들짝 놀랐다. 거울에 비친 내 얼굴에 잡티가 한가득이었던 것이다. 그러고 보니 그동안 안경을 쓰고 내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본 적이 없었다. 평소에 거울을 자주 들여다보는 편이 아니었던 것이다. 선명해진 세상에서 가장 놀라운 게 내 얼굴이라니. 나도 모르는 나를 타인이 보고 있었다는 사실에 얼굴이 달아올랐다. 이런 얼굴로 살고 있었음을 나만 몰랐구나.
그 이후로 나는 더 거울을 보지 않게 되었다. 원래도 거울과 그리 친하지 않았는데 더 멀리 하게 된 것이다. 내 얼굴을 정면으로 마주할 자신이 없었다. 내 흠결을 있는 그대로 안아줄 넉넉한 마음이 내게는 없었다. 그날 이후 이십 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지만, 나는 여전히 거울을 잘 보지 않는다. 어쩌다 거울을 빤히 들여다보는 날이면, 손이 자꾸 올라간다. 마음에 들지 않는 구석을 찾아 짜내고 건드린다. 이제는 재생력이 떨어져 오히려 더 큰 자국이 된다는 걸 망각한 채. 그러니 웬만하면 보지 않으려 한다.
가끔 찍은 사진을 보면 이십 년 전 그날처럼 화들짝 놀란다. 사진 속에는 웬 중년 여성 하나가 떡하니 들어가 있다. 그 속의 나는 내가 막연히 그리던 나의 모습과 괴리가 있다. 그러다 보니 점점 거울을 보거나 사진을 찍는 게 두렵다. 이전에도 그리 좋아하지 않았는데, 여전히 그렇다. 나는 나의 얼굴을 잘 모른다. 부끄럽게도 내가 어떻게 늙어가고 있는지를 잘 알지 못한다. 이전의 내가 나의 생김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했다면, 지금의 나는 나의 늙어감을 인정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섬으로 이주하고 어린아이들을 키우면서는 얼굴에 로션도 바르지 않는 날이 많았다. 화장을 하지 않는 게 하는 것보다 자연스러운 시골인 데다, 아이들 뒤치다꺼리한다고 굳이 얼굴에 무언가를 찍어 바를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건 주변 이웃들도 마찬가지였는데, 어느 순간 보니 처음 만났을 때만 해도 없었던 기미나 주근깨가 잔뜩 늘어난 사람들이 많았다. 화장도 화장이지만, 섬의 햇살은 육지와는 아무래도 다른 모양이었다.
한두 해 전부터 바르지 않던 로션을 바르고, 꺼내지 않던 선크림을 주섬주섬 꺼내 바르기 시작했다. 선크림이라도 바르라는 주변의 조언을 듣기로 한 것이다. 비싼 화장품을 쓸 생각도 없고, 시술을 받을 의지도 없으니, 선크림이라도 발라 노화를 조금이라도 늦추고 싶었다. '자연스럽게 늙어가야지'라고 입버릇처럼 말해왔지만, 정작 속마음은 아직 준비되지 않았던 것이다. 나의 노화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가.
이따금 완전히 늙어버린, 머리가 하얗게 세고 주름이 자글자글한 나의 노년을 떠올려본다. 그때 나는 나를 안아줄 수 있을까. 할머니가 된 내 모습을 인정하고, 그런 나를 사랑할 수 있을까. 지금까지 잘하지 못했고, 여전히 어렵기만 한 있는 그대로의 나를 끌어안는 일이, 나이가 들었다 해서 갑자기 될까. 오히려 늙어감이 속상해 더 거부하게 되는 건 아닐까. 할머니가 된 나를 안아주려면 나는 어떻게 나이 들어가야 할까.
어릴 땐 젊음이 모든 걸 가려준다. 검은 속내도, 감추고 싶은 뾰족함도. 중력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탱탱한 피부는 청년들의 강력한 무기다. 아무리 찡그려도 금세 다시 팽팽해지니 모든 걸 쉽게 감출 수 있는 것. 하지만 그런 날은 잠시뿐이다. 영원히 감출 수 있는 건 없다. 어느 순간부터 얼굴은 모든 걸 드러내기 시작한다. 꽁꽁 숨겨놨던 검은 속내도, 감춰왔던 뾰족함도, 남몰래 찡그리던 순간들도, 마흔이 넘어가면 더는 감출 수 없는 지문이 되어 얼굴에 조금씩 표출된다.
중년까지는 그래도 화장이나 시술로 어느 정도 감출 수 있지만, 노년에 들어서면 그 어떤 노력도 물거품이 되고 만다. 얼굴에는 세월만이 남는다. 내가 어떤 마음으로 어떤 시간들을 살아왔는지, 그 시간 동안 어떻게 웃고 울었는지, 얼굴은 숨김없이 드러낸다. 어떤 잡티도, 어떤 주름도 모두 지문처럼 얼굴에 새겨져 더는 가릴 수 없고 지울 수 없다. 나의 늙어감이 무서운 건 이 때문이다. 나의 얼굴이 나의 지문이 되는 순간이 다가온다는 사실이 너무나 두렵다.
잘 늙어가고 싶다. 살아낸 세월만큼, 지나온 역경만큼 넉넉하고 온화해진 얼굴을 갖고 싶다. 거울이나 사진을 들여다보며 왜 이런 얼굴로 늙어버렸냐고, 왜 이리 옹졸한 얼굴이 되었느냐고 스스로를 다그치고 싶지 않다. 이만하면 잘 살아왔다고, 잘 늙어가고 있다고, 두려움 없이 미움 없이 미련 없이 나를 바라보고 싶다. 그렇게 당당하게 내 얼굴을 마주하고 싶다.
매일 숯덩이 같은 속내를 걷어낸다. 쓸데없는 욕심이나 시기하는 마음을 버리고 또 버린다. 이렇게 하루하루 노력하다 보면, 한결 정화된 내가 될 거라 믿는다. 그런 나의 노력들이 내 얼굴에 하나씩 새겨져, 그 자체로 내 삶을 대변하게 될 거라고. 그런 날이 오면 더는 거울 앞에서도, 오랜만에 찍은 사진을 들여다보면서도, 놀라지 않을 거라고.
할머니가 된 내 얼굴을 똑바로 응시하며 인사하고 싶다. 이만하면 잘 살아왔다고. 이만하면 잘 늙었다고. 이만하면 되었다고.
*이 글은 [얼룩소 에세이 쓰기 모임]에서 작성한 글입니다. 글감은 '얼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