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제주도는 아름답다 못해 눈이 부시다. 이주한 계절이 가을이었으니 어느덧 이곳에서 맞는 열한 번째 가을이다. 열 번의 가을을 지났지만, 이전에는 온전히 제주의 가을을 느끼지 못했다. 처음에는 단풍이 없는 가을이 낯선 동시에 허전했고, 시간이 좀 지난 뒤에는 가을이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극도의 비수기에 짓눌려 계절을 만끽할 마음의 여유를 내지 못했다.
이제야, 열 번의 가을을 보내고 열한 번째 가을을 맞이하고서야, 나는 이곳의 가을을 오롯하게 바라본다.
살짝 선선한 아침과 저녁, 여름날처럼 뜨겁지 않고 적당히 온화한 한낮. 태풍이 발생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으로부터 마침내 벗어난 시기. 변화무쌍한 섬 날씨의 특성이 사라진 안정적인 하늘까지. 축복같은 계절을 지나고 있음에 매일이 선물 같다.
사실 원고 마감이 임박해 마음의 여유가 많진 않다. 아이들이 귀가하기 전까지 글을 붙들고 종일 끙끙 댄다. 과부하에 걸릴까봐 어느 정도 쓰고 나면 노트북을 덮는다. 마감을 지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내 몸과 마음을 건강히 유지하는 게 더 중요하기에. 흐트러지면 다시 일상을 복귀하는 데 또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이기에.
하루 계획한 쓰기를 마치면 초점 없는 눈으로 창밖을 바라본다. 그리곤 내가 지금 여기에서 숨쉬고 있는 가을이라는 찬란한 계절을 떠올린다. 춥지도 덥지도 않은 알맞는 온도, 물기가 빠져 한결 가벼워진 공기, 귓가를 살랑이는 솜사탕 같은 바람, 오름마다 가득한 새하얀 억새, 소금을 뿌려놓은 듯 흐드러지게 핀 메밀꽃, 밭마다 파릇파릇 돋아난 싱싱한 당근과 무의 이파리.
온전히 즐기지 않았지만 지난 십 년간 내 머릿속에 켜켜이 박힌 이곳의 가을이, 눈을 감아도 머릿속에 찬란하게 펼쳐진다. 요즘 들어 잦아진 두통이 조금이나마 씻겨가는 시간이다.
무게에 짓눌린 때문인지 흥미롭던 책들의 책장이 잘 넘어가지 않는다. 이럴 땐 쉬이 읽히는 에세이를 집어든다. 은희경 작가의 산문 <또 못 버린 물건들>을 읽으며 신중한 주제에 개그 욕심이 있는 작가와 동질감을 느끼고, 비건책방에서 집어온 홍성란 요리연구가의 <초록 식탁>을 읽으며 구불구불한 내장 속까지 맑아지는 식탁을 떠올린다.
첫째는 해가 질 때까지 학교 운동장에서 뛰어노느라 정신이 없고, 둘째는 집고양이들을 쫓아다니느라 분주하다. 시어머니가 직접 따서 보내신 대봉이 하나둘 익어가고 이웃이 나눠준 키위가 조금씩 말랑해진다.
그런 풍경들 속에서도 무게가 차마 덜어지지 않으면 결국 백지를 펴고 두런두런 나의 이야기를 쓴다. 머릿속의 앙금을 털어낸다.
참 아름다운 계절, 가을이다. 이 좋은 날 마감을 코앞에 둔 게 아쉽다가도, 이런 날이라 더 잘 버틸 수 있어 다행이다.
뉘엿뉘엿 땅거미가 진다.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의 <어스름 나라에서>가 떠오르는 시간. 책 속에서는 이 찰나의 시간 동안 마법 같은 세상이 펼쳐진다. 걸을 수 없는 아이도 자유롭게 날 수 있는 시간, 해질녘. 밥을 안칠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