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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순우 Dec 01. 2023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는 시간

수많은 문장들이 머릿속을 채웠다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붙잡아 두려면 적어야 하는데, 좀 쉬고 싶은 생각과 뭐라도 토해내고 싶은 감정이 부딪혀 결국 글이 되지 못한다. 용기를 내어 노트북을 열고 하얀 백지 위에 두서 없이 한 글자 한 글자 새겨 넣는다. 일상이다. 오랜만에 맞이하는 일상. 소중한 그리웠던 순간.


습관이라는 게 무서운 거더군. 첫사랑과 헤어진 날은 하필 고3을 코앞에 둔 겨울이었고 롤러코스터의 '습관'과 김건모의 '아름다운 이별'을 무한 반복해 들었다. 습관이 될 만큼 오래 사랑하지도 못했으면서 처음 마주한 이별의 감정이 낯설어 오래 아주 오래 방황했다. 일상 글쓰기는 내게 습관이었다. 습관으로 간절히 만들고 싶었던 글쓰기. 혼잣말을 하듯 종이 위에 그날 그날의 생각들을 적어가는 것. 흘려 보내던 것들을 활자로 붙잡아 각인하는 것. 외로움도 쓸쓸함도 잊을 수 있었던 건 그 습관 덕분이었다.


하나의 글은 하나의 주제를 향해 달려 가는 것. 하나의 책 역시 하나의 주제를 향해 달려 간다. 하나의 글은 분량이 고작 해야 수천 자. 하나의 책은 아무리 짧아도 십만 자에 이른다. 쓰면 쓸수록 자신이 없었다. 같은 말을 반복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내가 한 말을 내가 잊어버렸다. 붙잡고만 있는다고 글이 써지는 것도 아니고, 거리를 둔다고 반짝하는 아이디어가 떠오르는 것도 아니었다. 아무나 써도 된다고, 명문을 쓰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고 있으면서, 순간순간 스스로의 자격을 의심하고 평이한 문장에 낙담했다.


지나고 나면 결국 나와의 싸움이었다는 걸 자각한다. 십 년 동안의 장사가 그랬고 책을 쓰는 것도 마찬가지였다. 삶의 곁가지를 다 잘라내고 꼭 남겨야 하는 것들로만 일상을 채운 채 한 달을 살았다. 그럼에도 자꾸 도망가는 스스로를 바라보며 무엇이 그렇게 두려운지를 묻고 또 물어야 했다. 간신히 스스로를 달래 빈칸을 채우고 약속을 지켰다. 처음이라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아직 잘 모른다. 편집자를 믿는다. 십만 자를 쓰는 내내 왜 편집자가 필요한지를 절절히 느꼈다. 이제 나는 나를 놓아버리고 답변을 기다린다. 중심은 잡되 귀는 활짝 열어둔다.


제목을 정해야 하고 이름을 실명으로 할지 필명으로 할지도 이제는 정말 결정해야 한다. 그밖에도 집 안팎으로 산재한 크고 작은 일들이 잔뜩이다. 아이들의 방학도 머지 않았다. 마냥 게을러지고 싶기도 하지만, 바쁘게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싶기도 하다. 때마침 시작된 12월이 몸을 자꾸 움츠러들게 한다. 여행이 간절하다. 모든 걸 잊고 조용히 꾸준히 걷는 여행을 떠나고 싶다. 아직은 그럴 때가 아니란 걸 알지만. 이럴 땐 꿈 속 여행이라도 소망하게 된다.


다시 일상을 되찾아야 하는 시간이다. 잘라냈던 곁가지들을 다시 이어붙인다. 개중에는 아예 잘려나간 것들도 있고 감쪽같이 이어진 가지도 있다. 하루하루만 보고 살아야지. 오늘의 글만 보고 가던 이전의 나처럼 하루하루에만 집중해 다시 살아가야지. 그러다 보면 또 다른 새로운 일이 벌어질 수도 있겠지. 머리를 쥐뜯으며 또 다시 책을 쓰는 일도 찾아오겠지. 끝을 냈지만 끝은 아니다. 시간은 점으로 머물지 않고 선으로 이어진다. 내가 살아가고 있는 이 삶은 그러니까 하나의 선. 최종적으로 무엇을 그리게 될지는 아무도 알 수 없는 끝없이 이어지는 선. 그 위에 서있다 우두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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