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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순우 Feb 19. 2022

어두운 밤에서 밝은 밤으로

최은영 작가의 ‘밝은 밤’을 읽고

단편보다는 장편을 사랑한다. 애써 마음을 내준 이야기 속 주인공들의 삶을 더 오래 따라가고 싶은 마음 때문이리라. 장편 중에서도 내가 편애하는 건, 휘몰아치는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기꺼이 살아내야 했던 주인공들의 이야기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흘러가야 했던 시기를 그럼에도 의지대로 살아내고자 했던 사람들의 이야기에 나는 오래 공감하고 오래 아파한다.


그런 이야기를 만나면 여지없이 푹 빠져들곤 하는데 오랜만에 그런 책을 만났다. 최은영 작가의 ‘밝은 밤’. 두 가지 시점이 존재하고, 백 년 가까이 되는 시간 속의 여러 굴곡진 삶들이 펼쳐진다. 운명처럼 대를 이어 반복하는 삶과 깊은 공감이 결여된 관계 속에서의 공허와 그럼에도 함께 나눈 시간들을 잊지 못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읽으면서 중간중간 감정이 북받쳤다. 헤어짐과 만남을 반복할 수밖에 없는 모진 운명이 안타까워서. 그럼에도 서로에게 마음을 내어주는 그 살가운 정이 감사해서. 현재 시점을 살아가는 지연과 부모의 관계가 사실 나와 부모의 관계와도 흡사해서, 나는 읽는 내내 몸이 조금 아팠다.


이 글을 읽으면서 몇 년 전 아끼며 읽었던 김은성 작가의 ‘내 어머니 이야기’가 떠올랐다. ‘내 어머니 이야기’를 마치고 왜 눈물이 났을까를 곰곰 생각해본 적이 있다.


“뒤돌아보니 그 모진 세월과 그럼에도 살아내야 했던  어머니와 그럼에도 남은 것 없는 인생과 그렇다 해도 아무것도 아니라 할 수 없는 일생과 세월을 증명하듯 남겨진 늙고 불편한 몸뚱이가 아른거려서.”


이 말이 다시 한번 떠오르던, 밝은 밤. 소설 속 지연은 할머니를 다시 만나면서 해가 점점 길어지는 걸 느낀다. 계절은 겨울에서 봄을 지나 여름을 향한다. 그 시간 속에 할머니로부터 조금씩 공감받고 의지해가는 지연. 할머니와 다시 만난 그녀의 밝은 밤이 퍽 따뜻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간이기도 한, 밝은 밤.


소설에는 생략된 할머니와 희자의 만남을 상상한다. 그들이 나눌 이야기를 떠올려본다. 그들이 함께 했던 과거를 그들은 어떤 언어로 떠올릴까. 그 이야기를 함께 나누면서 그들은 어떤 기분일까. 행복일까, 아쉬움일까, 아련함일까. 잔뜩 주름이 잡힌 서로의 손을 맞잡고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그래도 잘 살고 있어 감사하다고, 밥 굶지 말고 잘 챙겨 먹으라고, 그거면 됐다고, 그렇게 깊은 마음 나누길 간절히 바라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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