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다쳤다. 내가 없는 곳에서. 늦은 저녁이었고 한 보호자 동아리 모임에 따라오는 친구들과 놀겠다며 나간 자리에서였다. 나는 그 동아리 회원이 아니기도 하고 집과 학교가 워낙 가까워, 다른 보호자들만 믿고 남편과 나는 집에 머물고 있었다. 그러다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아이가 손가락을 다쳤다는.
침착한 상대의 목소리 때문이었을까, 크게 다쳤다는 생각은 하지 않고 남편과 달려갔다. 아이는 다른 보호자들과 함께 있었다. 울지도 않고 왼손 약지에 둘둘 물티슈를 감은 채로. 아이를 보호하고 있던 다른 보호자들에게 물으니 상처가 꽤 크다고 한다. 거즈나 붕대가 없어 상처 부위를 물티슈로 감쌌다고 했다.
상처를 봐야 상황 판단을 할 수 있을 것 같아 조심스레 물티슈를 걷어냈다. 짐작보다 훨씬 깊고 커보이는 상처. 피가 자꾸 새어나왔다. 만으로 7살, 마른 체구의 아이 손은 아직 봄날의 고사리처럼 연약하다. 그 작은 손에 2cm가량의 상처가 나니 손가락이 반으로 갈라진 듯 보였다. 서둘러 병원에 가야한다.
안 좋은 생각들이 머리를 스치고 가지만 침착하려 애를 썼다. 나는 엄마니까. 내가 놀라면 아이는 더 당황할 테니까. 남편은 서둘러 차를 가지러 가고 나는 아이 상처를 다시 물티슈로 감아 지혈을 한 뒤 첫째를 챙겨 함께 나왔다. 곁에 있던 다른 사람들이 잘 보이지 않았다. 제대로 인사도 하지 못하고 급히 차에 올라탔다.
내가 사는 곳은 제주에서도 시내에서 가장 먼 곳. 남편은 급하게 차를 몰아 우선 근처 읍내로 먼저 향했다. 문을 연 약국이 있으면 거즈와 붕대, 지혈을 위한 가루로 된 마데카솔을 구입할 생각이었다. 시간은 밤 9시쯤. 읍내에는 다섯 개 정도의 약국이 있지만 모두 문을 닫은 상태였다.
물티슈로 지혈을 하고 있다는 게 자꾸 마음에 걸렸다. 상처부위가 너무 크다. 남편은 급한대로 근처 편의점에 들러 거즈와 붕대 그리고 칼을 사왔다. 물티슈를 떼자마자 다시 솟구치는 피. 얼른 상처에 두툼하게 거즈를 대고 붕대를 감았다. 그제야 조금 마음이 놓였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아이 손끝을 콕콕 찌르며 물었다. 감각이 느껴져? 무슨 영문인지 모르는 아이는 엄마의 행동이 이상하다는 듯 쳐다본다. 한 번도 마취를 해본 적이 없는 아이는 마취를 하고 봉합해야 한다는 내 말에 잔뜩 걱정을 늘어놓는다.
아파? 얼마나 아파?
얼마 전에 맞은 독감주사 만큼. 따끔해. 그 뒤론 괜찮아. 마취하면 느낌이 안 나니까.
혹시 신경이나 힘줄이 다쳤을까 봐 염려가 되지만 아이에게는 말하지 않았다. 나의 두려움이 아이에게 전이돼 더 큰 두려움을 안고 응급실에 들어가게 될까 봐. 애써 태연한 척하며 머릿 속으로는 아이의 상처를 떠올리며 시뮬레이션을 돌린다. 상처가 얼마나 깊었더라, 혹시 수술까지 해야 하는 상황이 되면 어떻게 하지.
아이에게는 마취할 때만 아프고 봉합은 느낌도 나지 않는다는 말만 반복한다. 그러고 보니 밤 10시에 함께 육아 글을 쓰는 사람들과 줌회의가 있는 걸 잠시 잊고 있었다. 급히 단톡방에 상황을 알리고 회의를 취소했다. 극심한 에너지를 써야 하는 한 주였기에 회의 날짜도 간신히 잡았는데… 또 취소라니. 멤버들에게 미안하다.
지인이 추천한 병원을 가려다 아이들에게 익숙한 제주대학병원으로 향했다. 큰 아이가 18개월쯤 입 안이 크게 찢어져 봉합을 한 적이 있었다. 지인이 추천한 병원은 그때 아이를 거부했다. 마취를 해야 꿰맬 수 있는데 아이가 너무 어려 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 기억 때문에 제주대학병원으로 가는 남편을 말리지 않았다.
밤 열시쯤 도착한 병원. 오랜만에 간 응급실에는 환자분류실이란 곳이 생겼다. 응급실 환자가 맞는지를 가늠하는 곳이란다. 접수를 하고 차례가 되어 분류실로 들어가 상황을 설명하니 간호사가 처치할 수 있는 의사가 없다고 말한다. 파업 중이라 중증환자
위주로만 받을 수 있다며 긴 설명을 이어갔다. 결론만 말해달라고 요구했다. 받아줄 수 있느냐 없느냐. 고개를 가로로 젓는 간호사를 뒤로 하고 바로 아이를 데리고 다른 병원으로 향했다.
지인이 추천한 그 병원. 이곳에도 환자분류실이 있다. 상황을 설명하고 멀리에서 달려왔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레지던트는 자세히 확인을 했을 때 신경이나 힘줄이 끊어져 있으면 오늘 봉합하지 않는다는 말부터 꺼냈다. 그럴 경우 수술을 해야 한단다. 손은 무척 예민하고 발달한 기관. 수많은 중요한 신경이 지나고 있어 관련 수술이 꽤 난해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게 어렴풋이 생각났다.
수술이 필요한 경우 응급처치만 받고 집으로 돌아갔다가 다음날 다시 진료를 받고 수술 날짜를 잡아야 한단다. 혹시나 하며 마음으로 삼키고만 있던 이야기가 흘러나오자 아이는 바짝 긴장을 했다. 수술이라는 말에 눈에 눈물이 그렁해진다. 괜찮을 거야. 괜찮아. 아이를 안심시키고 응급실 안으로 들어갔다.
다행히 붐비지 않는 응급실. 의사는 생각보다 빨리 아이의 상처를 봐주었다. 찢어진 상처 안쪽으로 주사바늘을 찌르고 마취약을 집어넣으니 아이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괜찮아 괜찮아. 이것만 하고나면 아프지 않아. 아이 손과 얼굴을 부여잡고 최대한 편안한 얼굴로 아이의 눈을 바라봤다.
한참 상처 부위를 뒤져보던 의사가 봉합을 준비한다. 다행히 신경과 힘줄은 괜찮아 보여 바로 봉합을 한단다. 바로 이어서 시작된 봉합. 아이는 다쳤을 때와 마찬가지로 울지도 않고 모든 과정을 버텨냈다. 움찔하거나 겁을 내긴 했지만 울지 않는 아이. 울면 안 된다, 우는 건 나쁘다고 가르친 적이 한 번도 없건만 아이는 잘 울지 않는 어린이로 자라고 있다.
봉합을 마치고 의사가 말한다. 모두 여섯 바늘을 꿰맸노라고. 이틀 뒤에 소독을 해야 하지만 일요일이니 토요일인 다음 날 소독을 하러 다시 병원을 방문하라고 한다. 실밥을 뽑는 건 이 주 뒤. 물에 닿지 않아야 하고. 조심해야 한다고 당부한다. 고개를 돌리고 있던 아이가 이제 자신의 손을 봐도 되냐며 호기심의 눈초리를 보낸다. 징그럽게 느껴질 수도 있을텐데 너무 보고싶어 하니 그냥 놔두었다. 실이 박힌 자신의 손가락을 바라보며 한 마디 한다. 파란 실이네.
의사가 가고 남은 레지던트가 소독을 하고 거즈를 대고 붕대로 아이 손가락을 돌돌 말아주었다. 아이의 가녀린 손가락이 다섯 배쯤 두꺼워졌다. 진통제와 항생제를 처방받고 다음날 진료를 접수하고 병원을 빠져 나왔다. 생각보다 빠른 처치에 남편과 첫째가 안도하는 모습을 보니 나도 마음을 조금 내려놓을 수 있었다.
열한 시가 조금 넘은 시간 병원을 출발해 집으로 돌아오니 열두 시. 아이들은 쓰러지듯 잠에 들었다. 남편과 나도 그제야 한숨을 돌렸다. 아이들의 말과 지혈을 도와준 보호자의 말을 들으니, 아이는 주스가 담긴 유리병을 가방에 넣으려다 손에서 미끄러져 바닥에 떨어뜨렸다고 한다. 아이가 겁 없이 바닥에 깨진 유리에 손을 대면서 손가락이 크게 베인 것.
하필 포도주스라 처음에는 아이가 다친 걸 아무도 알지 못했다고 한다. 아이는 다치고도 도움을 청하지 않고 크게 울지도 않았다. 뒤늦게 알게 된 다른 보호자들이 아이를 씻기고 지혈을 한 모양이었다. 바닥에 쏟아진 포도주스를 닦고 깨진 유리조각을 치우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야 다른 보호자들이 너무 큰 수고를 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습관처럼 유리가 깨지면 위험하다는 말을 뱉어왔지만 아이들이 자라는 동안 집에서 유리나 그릇이 깨진 적이 없었다. 십 년을 카페 장사를 하며 그 많은 유리잔을 사용했는데도 깨진 건 손가락에 꼽는다. 말뿐인 경고가 아이들에게 깊이 인식될 리 없다. 그러니 아이는 내가 없는 곳에서 자신의 실수에 당황한 나머지 덜컥 깨진 유리에 손을 갖다댔으리라.
이따금 한 번쯤은 그릇이 깨지는 경험을 아이가 해야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는데, 차마 일부러 깰 수는 없으니 말이라도 한 번씩 조심해야 한다 일렀는데, 경험 만큼 큰 공부가 없다. 아이가 다친 건 너무나 속상하지만 그나마 다행인 건 살만 봉합하면 돼서, 다친 날이 금요일이라 다음날 남편이 출근 걱정을 하지 않아도 돼서, 큰 행사를 앞두고 있지만 대부분의 일이 마무리된 시점이라.
아이 학교의 책축제가 일주일 남았다. 보호자들이 기획 및 준비하는 가장 큰 행사이고 보호자 책 동아리 회장을 맡고 있어 내가 총괄을 담당해야 한다. 종일 학교일을 해야 했다. 너무나 중요하게 마무리해야 하는 일이 있기도 했고 미루기 싫어하는 성격 탓에 다음주에 할 일까지 미리 앞당겨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일을 마친 상태였다.
어제는 일을 마치고 나서 이제 정말 일을 다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인쇄물이 오면 붙이고 게시하는 일이 남았을 뿐. 한동안 일이 정말 끝나기는 할까 싶을 만큼 해치우는 족족 또다른 일이 쌓이곤 했는데. 그런 시점에 아이가 다쳤다는 게 그나마 다행한 일로 여겨졌다. 아이가 다친 건 너무나 속상한 일이지만 곰곰 생각해 보면 감사할 일이 숨어 있다.
주말 아침은 남편과 내가 아이들보다 늦게 일어나는 유일한 날인데 이른 아침부터 서둘러 병원을 다녀왔더니 피곤이 몰려온다. 소독을 하고 다시 붕대를 감은 아이의 손가락은 어제보다는 좀 작아졌다. 움직임이 좀 편해졌다며 만족해 하는 아이.
아이는 축제 때 하는 공연을 떠올리며 손가락을 움직여야 하는 동작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한다. 친구들과 함께 손잡는 대목도 염려한다. 우쿨렐레 공연을 떠올리면서는 G7코드를 잡을 수 없을 거라며 걱정한다. 붕대 감은 손으로 공연을 해내면 더 큰 박수를 받을 거라 말해주었다. 혹시 해내기 힘들다면 다음 기회를 기약하면 되고.
아이도 나도 한 뼘 자랐다. 상처가 남을 수도 있지만 아이의 살은 더 단단하게 붙을 것이다. 말괄량이 아들 둘을 키우며 손끝 하나 다치지 않고 키워낼 거라 기대한 적은 없다. 우리는 더 조심하면서도 더 신나게 뛰어놀 것이다. 아이는 더는 깨진 유리를 함부로 손대지 않을 것이다. 비싼 값을 치르고 교훈 하나를 얻었으니 그걸로 되었다. 여전히 아이는 내 곁에서 환히 웃고 재잘재잘 수다를 떤다. 그걸로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