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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순우 Mar 27. 2022

글 쓰는 도망자의 삶

나는 도망자다. 도망가는 게 특기인 사람. 처음부터 그런 건 아니었다. 처음에는 짧게 도망을 쳤다. 사흘, 일주일, 보름. 잠깐씩이라도 도망을 가야만 숨을 쉴 수 있었다. 나를 아무도 모르는 낯선 땅에서 낯선 얼굴들을 마주하고 낯선 향을 맡으며 낯선 침대에 몸을 눕혀야 단잠을 잘 수 있었다. 내 집이 아닌 곳이 더 편했다. 어디든 상관 없었다. 집만 아니라면 나는 숨을  온전히 쉴 수 있었다.


아빠가 술을 끊자마자 나는 완전히 도망갈 계획을 세웠다. 이때를 놓치면 안 된다. 지금이다. 통장 잔고를 확인하고 떠날 날을 지정했다. 회사를 언제까지 다닐지 결정하고, 여행의 시작점을 정했다. 이제 나는 누군가의 딸이 아닌 단지 나로 살고 싶었다. 자신이 세상 가장 불행하다고 말하는 부모와 더는 살고 싶지 않았다. 매일매일 지겹도록 쏟아지는 하소연 속에서 이제는 그만 놓여나고 싶었다.


세계여행을 간다고 했을 때, 어떤 사람은 비웃었고 어떤 사람은 부러워했다. 비웃는 사람을 만나면 비웃었던 걸 후회하도록 꼭 여행을 하고 오겠다 다짐을 했다. 부러워하는 사람에게는 너도 갈 수 있다고 책임감 없는 희망을 불어넣었다. 도망이 끝난 뒤 내게 남은 건 사진도 아니고 기록도 아니다. 기억이다. 방랑의 기억. 바람처럼 떠돌았던 기억. 짐을 싸고 풀고 또 쌌던 기억. 지도를 펼치고 다음 행선지를 고민하던 기억. 종일 걷고 또 걸었던 기억.


여행을 다녀온 뒤에는 이민을 생각하기도 했다. 불편하지만 그럼에도 편견이 적은 곳에서 살고 싶었다. 내게 한국은 꼭 해야만 하는 게 너무나 많은 편견의 나라였다. 내가 도망 다니던 세계는 그렇지 않은데 한국에만 돌아오면 꼭 해야 하는 게 너무나 많았다. 적령기에 결혼을 해야 하고 아이를 낳아야 하고 돈을 모아야 하고 집을 사야 하고…… 자유롭게 살고 싶었다. 발길 닿는대로 여행을 하듯 인생도 그렇게 그때그때 상황에 맞게 하나씩 풀어가며 살고 싶었다. 오지 않은 미래를 그리며 현재를 죽이고 싶지 않았다.


내가 결국 선택한 건 이민이 아니라 섬이었다. 한국이지만 내가 살아온 한국과는 조금 다른 한국. 한국을 결코 벗어나지 못한 건 실은 애증 때문이었다. 누구보다 한국 사회에 불만이 많지만 그럼에도 이 사회를 사랑한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도망자는 섬에 짐을 풀었다. 섬은 육지와는 조금 달랐다. 섬에 모여든 사람들은 편견을 가지고 말하는 사람이 적었다. 결혼을 하지 않아도, 동거를 해도, 아이를 낳지 않아도, 같은 옷만 입어도, 화장을 하지 않아도, 뭐라고 훈수를 두는 사람이 없었다.


아침에 창을 열면 새소리만 들린다. 이따금 멀리서 뱃고동 소리가 들리고 철새들이  지어 하늘을 누빈다. 밤에는 달과 별이 밝고 차는 거의 다니지 않는다. 계절별로 다른 꽃향기가 차오른다. 어떻게 이런 자연에 살면서 그렇게 치열한 글을 쓰느냐는 한 지인의 말을 듣고 한참 생각에 잠겼다. 자연을 가까이 하니 오히려 아무 생각이 들지 않던데, 어떻게 힘든 글을 자꾸 쓰느냐고.


부채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아이들이 살아갈 미래를 위해 글을 쓴다. 내가 언젠가 돌아갈지 모를 그 편견 덩어리 세상을 향해 글을 쓴다. 나는 편견이 비교적 적은 세상에 살고 있지만, 몸이 게을러 앞장 서서 세상을 바꾸는데 힘을 보태지는 못하지만, 고작 할 줄 아는 글쓰기 하나를 붙들고 세상과 맞선다고 변명한다. 이렇게라도 도망자로 살아가는 내 삶을 정당화한다. 이렇게라도 내 삶에 의미를 부여한다. 나만의 작은 민주화운동이라고 그럴싸한 이름까지 붙이면서.


얼마 전 내가 쓴 글을 읽고, 생각이 조금 달라졌다는 답글을 읽으며 가슴이 따뜻해졌다. 이런 순간을 만나면 보상보다 더 큰 보람을 느낀다. 홀로 키보드와 싸움하며 단어를 고르고 골랐던 시간들이 비로소 하나의 의미가 된다. 이런 의미들을 쌓아가고 싶다. 가끔 삐걱대기도 하지만, 내 나름의 방식으로 내가 세상을 향해 할 수 있는 말들을 해보려 한다. 내세울 것 하나 없는 촌부도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걸 증명하고 싶다.


내가 아무리 고군분투해도 현장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을 따라가지 못한다는 것을 잘 안다. 그러기에 나는 너무 게으르고 겁이 많다. 나를 아는 나는 어떻게든 글로 편견을 조금씩 지워가고 싶다. 세상을 버리지도, 그렇다고 앞장 서서 맞서지도 못하는 비겁한 나는, 이런 방식으로라도 세상과 맞서 싸우고 싶다. 편견의 세상으로부터 조금 떨어져 도망자의 삶을 사는 나는 이렇게라도 빚을 갚으려 한다. 비겁해지지 않으려 애를 쓴다. 결국 그 세상은 언젠가 내 아이가 맞서야 할 세상이므로. 그렇게 나는 오늘도 글을 쓴다. 세상에는 꼭 해야 하는 것도, 꼭 하지 말아야 하는 것도 결코 없다는 말을 하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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