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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순우 Jul 22. 2018

내게 딸은 필요없다

“그래도 딸은 하나 있어야지.”

아들이 둘이 되면서 쉽게 듣는 말이다.


아직은 여섯 살 여덟 살, 엄마 품이 제일인 아이들. 그들에겐 성이 없다. 타고난 성이 없다는 말이 아니라 그 아이들로부터 내가 느끼는 젠더가 없다는 뜻. 남자 여자가 아니라 그저 자식인 녀석들. 그저 사랑스럽고 예쁘기만 한 녀석들. 내게는 딸을 갖고 싶다는 바람이 전혀 없다. 딸은 왜 꼭 있어야 하는 걸까.


내가 어릴 적만 해도 아들이 꼭 있어야 한다는 말을 어른들은 쉽게 내뱉었다. 옆집 누가 아들을 낳기 위해 애를 다섯이나 낳았다는 말은 부지기수로 듣는 사연이었다. 딸만 있는 집은 어딘가 불쌍하게 바라보고, 아들이 있는 집은 든든하다 생각하는 분위기가 강했다. 딸은 남의 식구, 아들은 자기 식구라는 유교적 사상이 잔존하는 사회였다. 대를 잇는 게 아직은 중요한 어느 시절이었다.


이제 막 사십대가 된 내가 새삼스럽게 느낄만큼 세상은 참 빨리도 변했다. 더이상 아들이 꼭 있어야 한다는 말을 하는 사람은 드물어졌다. 생각을 겉으로 내뱉는 사람들만이 사라졌을지 모르지만 적어도 내 주변엔 연세가 높은 몇몇 어르신들을 제외하고는 그런 말을 하는 이들이 거의 없다. 대신 딸은 하나 있으면 좋다는 말을 한다. 딸의 가치는 언제 이렇게 상승한 것일까. 그런 말을 하는 이들의 딸에 대한 이미지는 무엇일까. 늘 부모의 몸과 마음을 살피고 집안일을 돌보며 엄마 혹은 아빠의 욕을 맞장구 쳐주는 그런 이미지인 걸까.


딸과 아들이 하나씩 있는 한 지인은 내게 말했다. 딸은 내가 무슨 말만 하면 나를 가르치려 해서 미운데, 아들은 늘 내 편이 돼줘서 좋다고. 그러고보면 모든 딸이 딸 같은 것도, 모든 아들이 아들같기만 한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딸이라는 존재에 의미와 기대치를 미리 부여하곤 그렇기에 필요하다고 말해버린다. 태어나지도 않은 한 존재를 자신의 필요에 의해 존재 가치를 매기는 행위는 정당한가. 이는 태어날 때부터 부담을 지는 딸과 시작부터 인정받지 못하는 아들을 동시에 차별하는 게 아닐까.


내게 딸은 필요없다. 둘 중 하나가 딸이 아니라 하여 아쉽거나 후회스러웠던 적은 한 번도 없다. 자식은 그저 내 자식이라 예쁠뿐 딸이든 아들이든 중요치 않다. 성별에 관계없이 아이들은 내게 소중하고 둘이 의지하고 서로의 편이 되어주며 자란다면 더할나위 없을 것 같다. 어쩌면 딸이 꼭 필요하다는 말의 숨은 뜻은 배우자만 의지해서는 살아가기 힘들다는 건지도 모르겠다. 배우자와 나눌 수 없는 감정이나 이해를 결국 딸을 통해 할 수 있다는 기대감말이다.


내게 남편과의 관계는  삶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남편과의 대화는 끊이지 않아야 한다. 누구보다 당신의 지금을 가장  알고 싶고 누구보다 지금의 나를 가장  알고 있는 당신이기를 바란다. 그런 부부 사이가 바탕이 된다면, 우리가 굳이 딸을 찾게 될까. 배우자가 없더라도 감정이나 이해를  자식에게 구하려 해서는  된다. 너만은 나를 이해해야 한다는 부모의 기대로 지쳐가는 자식들이  세상에는 정말 많다. 자식이라 해서 부모의 모든  받아들일 수는 없는 .


한 칼럼리스트는 딸에 대한 시선과 기대감에 대해 젠더폭력이라 명명했다. 딸을 부모의 감정해우소로, 집안밑천으로 바라보는 구시대적 사고방식이 만든 유물이라는 것. 나는 늘 엄마의 감정해우소였고, 여전히 그 삶을 살고 있다. 그 일상이 싫어 늦게 귀가한 적도 많았고, 도망치듯 여행을 떠난 적도 있다. 레퍼토리가 끊이지 않는 아빠에 대한 욕은 내게 얼마나 큰 상처였던가. 홀로 서지 못하는 부모, 둘 사이의 관계 속에서 행복을 찾지 못하는 부모를 둔 딸은 희생양이 되기 일쑤다.


장성한 아들 둘을 둔 손님 가족과 말을 섞게 됐다. 선배같은 그 분은 한 아들은 집안일을 잘 도와주고, 한 아들은 자신의 마음을 잘 이해해준다고 말했다. 아들만 있어 불편하다거나 아쉽다는 말은 전혀 하지 않았다. 오히려 형제라 서로에게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엄마의 몸과 마음을 얼마나 편히 해주는 존재인지를 강조해 말했다. 다른 누군가가 그래도 딸이 있어야 한다고 말하면, 아들들이 싫어한다고 귀띔했다. 자식이 있음에도 다른 자식이 있어야 한다 개의치 않고 말하는 사람들, 가벼운 말은 쉽게 사람을 벤다.


결혼은 꼭 해야지. 자식은 그래도 하나 있어야지. 둘은 돼야지. 딸은 꼭 있어야지. 쉽게 내뱉는 타인의 삶에 대한 간섭들. 인권에 대해 소수자에 대해 참 많은 인식들이 변하고 있음에도 더디기만 한 타인에 대한 시선과 언어. 나는 누군가의 딸이지만 내 삶에 딸은 없다. 내 삶을 위해 희생양이 되길 강요하는 존재라면 더욱 필요하지 않다. 딸은 꼭 필요한 게 아니다. 꼭 필요한 건 타인의 삶에 대한 존중, 그리고 내 삶에 대한 끊임없는 성찰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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