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생각은 하나의 진실로 남지만, 그것이 나의 태도로 남는 것은 아니다
나의 '처음 생각'은 언제나 날것이다.
날카롭고, 직관적이며, 가끔은 잔인할 만큼 솔직하다는 걸 안다.
하지만 나는 그 생각에 곧바로 자리를 내어주지 않는다.
반박하고, 되묻고, 그 뿌리를 파헤친다.
어디서 왔는지, 왜 그렇게 떠올랐는지,
수없이 들여다보기를 반복한다.
그러다 보면 더는 파헤칠 것도, 되물을 것도 없는 지점에 도달한다.
그곳이 나의 세미 종착지이자, 한 시절 간 내가 삶을 대하는 태도가 된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노르웨이의 숲》 1장을 읽고,
이런 문장을 떠올렸다.
“어떤 이들은 자신을 사랑하기 위해 타인을 필요로 하고, 그것에 사랑이라 이름 붙인다.”
이 생각이 너무나 선명하게 와닿았고,
동시에 조금 서늘하게 느껴졌다.
그건 정말 사랑일까?
아니면 외로움의 정당화일까?
자기애의 변장일까?
하지만 끝내, 나는 알고 있다.
그렇게라도 자신을 견뎌내야만 했던 사람들이 있다는 걸.
누군가를 이용하기만 하려는 마음이 아니라,
어디에도 기댈 수 없던 마음이 만들어낸
처절하고 애틋한 방식일 수도 있다는 걸.
그래서 나는 이 문장을 종착지로 삼는다.
“그것이 내가 믿는 사랑의 본질에서 벗어나 있다고 해도, 결코 사랑의 한 형태가 아니라고 단정할 수는 없지 않을까.
누군가에게는 그런 방식으로라도 자기 자신을 견뎌내며, 살기 위해 애쓰는 시간이 필요할 수 있으니까.
그리고 그것은 진짜 사랑으로 나아가기 위한,
아직은 미완일 뿐인 '시작'이기도 할 테니까.”
나는 나의 날 것의 감각과 생각을 결코 외면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 생각이 너무도 쉽게,
나의 태도가 되도록 내버려 두지도 않는다.
나의 태도는 늘 치열한 사유의 끝에,
진실보다 더 큰, 이해의 자리에 놓이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