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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d] 쥬니어에게 추천하는 낯선 곳과 낯선 사람

이드의 HR 커피챗 시리즈

by iid 이드

[Edited by iid the HRer]

※ 내가 쓰는 글들은 개인적인 경험과 고민을 바탕으로 한 지극히 개인적인 의견이니, 편하게 봐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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쥬니어가 꼭 해봐야 할 두 가지 : 여행과 연애


사회 초년생 시절은 일종의 사회생활 연습 게임이다. 튜토리얼은 짧고, 정식 스테이지는 생각보다 갑작스럽게 시작된다. 하지만 대부분은 회사라는 ‘메인 퀘스트’에만 정신이 팔려, 경험치를 쌓을 수 있는 수많은 사이드 퀘스트를 놓친다. 이 시기에야말로 실수를 해도 크게 손해 보지 않고, 새로운 시도를 해도 회복이 빠른데, 정작 눈앞의 업무에만 몰두하다 보면 이런 기회를 흘려보내기 쉽다.


그중에서도 특히 놓치면 아쉬운 것이 있다. 바로 여행과 연애다. 단순히 재미나 취미처럼 보일 수 있지만, 이 두 경험은 다른 활동으로 대체하기 힘든 독특한 학습 효과를 준다. 여행은 낯선 환경 속에서 살아남는 법을, 연애는 전혀 다른 사람과 호흡을 맞추는 법을 자연스럽게 익히게 한다.


두 가지 모두 겉으로 보면 사적인 활동이지만, 실상은 짧고 강한 인생 훈련 코스다. 내가 생각하는 여행과 연애의 진짜 가치는, 직장 생활에서 필수적인 두 가지 역량—환경 적응력과 관계 조율력—을 아무도 모르게, 그러나 확실하게 길러준다는 데 있다. 이런 역량은 책이나 교육으로 단기간에 만들기 어렵다. 몸으로 부딪히고, 마음으로 겪어내야 비로소 손에 쥘 수 있는 힘이다.




① 여행 – 내 상식이 깨지는 ‘의도된 충격’


여행을 하면, 가장 먼저 깨닫는 건 내 상식이 세상의 상식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평소엔 당연했던 것들이 여기선 전혀 통하지 않는다. 밥 먹는 시간, 버스 타는 방법, 길 건너는 규칙, 심지어 화장실 물 내리는 방식까지 다르다.

예를 들어, 일본에서 버스를 탈 때 뒷문으로 타고 앞문으로 내리는 구조를 처음 겪었을 때, 습관대로 앞문에서 타려고 하다 기사님이 손을 가로막는 순간, ‘아, 내가 모르는 질서가 이곳의 상식이구나’를 바로 느낀다.


그곳의 문화와 규칙이 바뀌길 바라봐야 소용없다. 결국 내가 맞춰야 한다. 이건 마치 회사에서 갑작스러운 조직 개편이나 새로운 시스템 도입을 맞이했을 때와 비슷하다. “이건 아닌데”를 반복하면, 그날 하루는 불평과 불편으로 끝난다. 하지만 마음을 열고 적응하면, 의외의 재미와 새로운 방법을 발견하게 된다.

한 번은 외국에서 ‘시간 약속’이란 개념이 거의 없는 지역에 갔는데, 투어 버스가 40분 늦게 왔다. 한국 기준으로라면 불만 폭발이었겠지만, 그때 현지 사람들은 ‘괜찮아, 오늘 하루는 길어’라며 웃고 있었다. 그 여유를 받아들이니 오히려 하루가 더 느긋해졌다.


여행은 짧지만 강한 ‘상식 붕괴 실험’이다. 익숙한 기준에서 벗어나, 전혀 다른 기준 속에서 살아본다. 그리고 그 경험은 직장에서 변화와 마주했을 때 빠르게 대응할 수 있는 유연성을 길러준다. 여행이 주는 가장 큰 선물은 풍경이 아니라, 내 기준을 잠시 내려놓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② 연애 – 맞지 않는 사람과도 함께 가는 ‘자발적 훈련’


직장에서는 다양한 사람과 함께한다. 대표, 상사, 동료, 후배… 그중 상당수는 나와 맞지 않는다. 그렇다고 골라서 함께할 수는 없다. 연애는 이 상황의 ‘체험판’이다. 좋아하는 마음이 있으니, 불편해도 맞춘다. 상대의 말투, 습관, 시간, 심지어 취향까지. 이건 가족이나 친구에게는 하지 않는 노력이다.

예를 들어, 아침형인 내가 저녁형인 사람을 만나면, 주말 약속 시간이 항상 늦어진다. 예전 같으면 “왜 이렇게 늦게까지 자?”라며 잔소리했겠지만, 연애를 하다 보니 ‘저 사람의 생활 리듬 안에서 나도 즐길 수 있는 방법’을 찾게 된다.


연애는 ‘다름’과 마주하는 법을 가르쳐준다. 그리고 그 다름을 무조건 바꾸려 하지 않고, 서로의 틀 안에서 살아남는 방법을 찾게 한다. 직장에서 이런 경험 없이 처음 맞춰보려 하면, 감정과 업무가 뒤섞여 더 힘들어진다. 반면 연애에서 이미 ‘마음이 불편한 상태에서도 관계를 유지하는 법’을 연습해본 사람은 훨씬 단단하다.

한 번은 프로젝트 파트너가 내 방식과 완전히 반대였다. 기한 촉박한 일을 앞두고도 그는 ‘차분히’ 준비했다. 그때 연애에서 배운 ‘속도 다른 사람과 보조 맞추는 법’이 없었다면, 아마 그 관계는 초반부터 깨졌을 것이다.


다만 한 가지 차이는 있다. 연애에서는 애정이 동기지만, 직장에서는 월급과 성과가 동기라는 점이다. 그래서 오히려 연애보다 더 건조하고, 더 계산적이지만, 기본적인 ‘맞춤 근육’은 연애에서 길러진다.



여행과 연애가 주는 세 가지 힘


여행은 환경의 다름에 적응하는 법을, 연애는 사람의 다름에 맞추는 법을 가르친다. 둘 다 내 의지로 바꿀 수 없는 상황 속에서 결국 내가 변화하는 법을 배우게 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사회생활 첫 3년, 모든 것이 낯설고 버거운 시기에 이 경험은 보이지 않는 방패가 된다.


✅짧고 강한 학습 효과 : 몇 년의 직장 생활보다 일주일 해외 여행이 더 큰 ‘상식 전환’을 준다. 현지에서 당연했던 규칙이 통하지 않을 때, 나는 적응하는 법을 배운다. 그리고 몇 달의 연애가 수많은 회의보다 더 깊은 ‘관계 조율 훈련’을 시켜준다. 마음이 불편해도 함께 가야 하는 상황, 그 속에서 관계를 유지하는 기술이 생긴다. 짧지만 강렬하게, 평생 가는 학습이다.


✅안전한 실패의 장 : 여행이 망해도 직장 평판은 무사하고, 연애가 끝나도 업무 평가는 그대로다. 업무 현장에서는 실수 한 번이 치명적일 수 있지만, 이곳에서는 실패가 곧 경험이 된다. 리스크 없이 부딪히고, 배우고, 다음을 준비할 수 있는 유일한 무대다.


✅평생 쓰는 기술 : 여행에서 얻은 적응력, 연애에서 얻은 관계력은 직장뿐 아니라 인생 전반에 걸쳐 쓰인다. 팀이 바뀌거나 환경이 변해도 무너지지 않고, 다른 사람과의 차이를 조율할 수 있는 힘은 한 번 익히면 사라지지 않는다. 이건 경력보다 오래 가는 자산이다.





취미가 아닌, 인생 수업


여행은 단순히 멋진 풍경을 보기 위해 떠나는 게 아니다. 사진 속 장면보다 더 중요한 건, 그곳의 공기와 냄새, 그리고 나를 당황하게 하는 순간들이다. 버스를 잘못 타서 전혀 다른 곳에 내려도, 비 오는 날 길을 잃어도, 결국 스스로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 과정에서 조금씩 내 기준과 방식을 깨뜨리게 된다. 여행은 내가 만든 틀을 스스로 부수게 만드는 가장 평화로운 훈련이다.


연애도 마찬가지다. 그저 달달함을 얻기 위해 시작하는 것 같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 이상의 것을 배우게 된다. 서로의 차이를 견디고, 속도가 맞지 않아 답답해도 함께 걷는 법을 익힌다. 때로는 내가 양보해야 하고, 때로는 끝까지 고집을 지켜야 하는 상황도 온다. 이런 균형 잡기 훈련이야말로, 직장에서 다양한 사람과 일할 때 필요한 기술이다.


쥬니어 시절, 이 두 가지를 경험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차이는 사회라는 거친 바다에 나가면 금세 드러난다. 환경이 바뀌거나, 관계가 흔들리거나, 예상치 못한 파도가 덮쳐도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그들은 이미 여행에서, 연애에서 ‘낯선 상황에 나를 맞추는 법’을 몸으로 익혔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이 두 가지를 통해 길러진 차이를 ‘버티는 힘’과 ‘풀어내는 힘’이라고 부른다. 버티는 힘은 흔들리지 않고 자리를 지키게 하고, 풀어내는 힘은 얽힌 문제를 관계 속에서 풀 수 있게 한다. 이 두 힘은 경험 없이 책으로 배울 수 없는, 인생 초반에만 집중적으로 얻을 수 있는 귀한 자산이다.


그리고 여기서 한 가지 더. 여행과 연애는 단순히 ‘나를 성장시키는 훈련’이 아니라, 내가 아닌 세상의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만드는 관문이기도 하다. 내 기준으로만 세상을 재단하면 늘 불만이 쌓이고, 관계는 쉽게 끊어진다. 하지만 한 번이라도 다른 땅에서, 다른 사람과, 다른 리듬으로 살아본 사람은 안다. 세상은 ‘맞추기만 하는 곳’이 아니라, 다양한 기준이 공존하는 곳이라는 걸. 그리고 그걸 안 순간, 사회생활은 버티는 게임이 아니라 살아내는 모험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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