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드의 HR 개똥철학 시리즈
[Edited by iid the HRer]
※ 내가 쓰는 글들은 아주 개인적인 경험에 근거한 지극히 개인적 소견이니 편하게 봐주면 좋겠다.
6개월간의 회고에서 가장 많이 조회되기도 했고 외부 네이버 검색에서도 대표 글로 표시되었던 브런치가 'HRBP'에 대한 글이었다. 나는 사실 이 글이 저렇게 인기가 많을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HRBP 직무에 대한 내용은 굉장히 HR전문 영역에 국한된 것이 아닐까 생각했었다. 새삼 그 인기 결과를 보면서 생각보다 많은 이들이 HRBP에 대해서 관심도 많고 그 역할에 대해서도 혼란이 많았구나라고 느낄 수 있었다.
위 브런치에서 아래의 문제의식을 제기했던 적이 있었다. 당시는 그저 나의 개인적 우려정도로 쓰였던 문제의식이긴 했지만 그 이후 만났던 대표님들, 그리고 HR후배들에게서 실제 이 문제의식이 이미 현상으로 나타나고 있음을 듣고 그 내용을 정리해 본다.
모든 HR이 HRBP처럼 좀 더 프런트로 나가면서 전향적으로 바뀌는 것은 장기적으로는 좋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진짜 역할과 그리고 그 역할을 수행하기 위한 준비가 제대로 되지 않은 상태에서 타이틀만을 HRBP로 사용하게 된다면 도리어 그 직무 타이틀이 또 다른 장애물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예전에 어떤 투자사 경영진으로부터 "HRBP는 꼭 필요한가요? HRBP체제로 꼭 바뀌어야 하나요? HRBP에게는 어떤 권한을 주어야 제대로 작동될까요?" 란 질문을 받은 적이 있었다. 그 질문에 대한 답을 하면서 HRBP가 유행처럼 하면 좋은 것으로 인식되게 되면 그에 적합한 인재를 더더욱 채용하기 어려울뿐더러 조직 내에서는 더 많은 혼란과 비효율이 발생할 수 있다고 답을 드렸다. HRBP 또한 하면 좋은 것이 아닌 전략적 선택의 영역이다.
문제의식의 내용은 HRBP가 직무가 아닌 마치 뭔가 멋진 직급처럼 사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내가 그래도 좀 시니어인데
뭔가 그냥 제도기획담당자, 평가/보상 담당자, 이런 거보단 HRBP가 멋있어 보이는데
우리 회사도 뭔가 좀 글로벌 IT회사 같이 되고 싶은데
이런 이유들로 HRBP직무가 쓰이고 있었다.
HRBP 타이틀이 또 다른 배지처럼 되는 현상 자체를 뭐라고 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항상 이드가 말하듯이 항상 모든 것들에는 그 본질과 배경부터 고민을 해봐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이것이 또 다른 오해와 편견을 만들게 되고 결국 본래의 의미마저 퇴색될 수 있기 때문이다.
HR에서는 예전부터 HR이 회사의 전략적 파트너가 되어야 한다고 해왔다. 그런데 Strategic Partner가 Business Partner와 동일어인가에 대해서는 고민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나는 개인적으로는 HR이 HRBP이거나 혹은 Function Specialist이거나 상관없이 둘 다 전략적 파트너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HR이 시니어가 되고 회사의 중요한 역할을 기여하기 위해서는 회사와 비즈니스에 대한 이해는 필수적이기 때문에 그것을 어떤 형태로 회사 성장에 기여하느냐가 다를 뿐이라 생각한다. 회사의 비즈니스에 대한 이해와 Business Partner 역할은 엄연히 다르다.
BP역할이 된다는 의미는 세상을 보는 범주가 달라지는 것과 동일하다. 내가 HBRP리드 혹은 HR Head를 할 때 HRBP들에게는 해당 조직의 비즈니스 성과를 동일하게 연동시켰다. 이 말의 의미는 굉장히 다르다. 일반적으로 HR의 성과라면 조직의 안정화, 인재밀도, 퇴사율 저하, 회사 소속감 강화 이런 index들이 존재한다. 하지만 BP가 된다고 한다면 그때부터 영업 매출, 개발달성률, 마케팅 성과 등이 자신의 지표가 된다는 말이다. 이런 지표를 담당 조직과 함께 공유하며 책임을 지기 위해서는 사실 생각의 메커니즘 자체가 변경되어야 한다. 물론 Biz Side가 아닌 HR Side라는 어느 정도 안전바는 존재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HR Side는 절대 일반적인 HR에서 말하는 사람을 존중하고 신뢰하고 믿고 성장하고 이런 형이상학적 가치적인 영역이 아니다. 해당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인적 자원의 관점이라는 말에 좀 더 드라이하게 맞을 것 같다. Biz side의 리더가 전략이나 시장적인 접근을 한다면 이제 HR side에서는 그것을 달성한 인력 그리고 조직 그리고 제도 차원에서 그것을 지원하며 또 같이 결과를 만들어낸다. 모든 상황이 그렇진 않겠지만 HRer에게는 본인의 근본마저 부정하게 만드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 이는 나쁜 것이나 틀린 것이 아니다. 그냥 다른 것이다. 실제로 글로벌 회사에서의 HRBP는 HR커리어 출신분보다 개발자 출신이나 비즈니스 출신분들도 많다.
야놀자에서도 HRBP 체제에 대해 사실 여러 번의 시도가 있었다. 개인적으로 내가 HRBP 2세대라고 생각하며 그 당시가 야놀자 HRBP의 황금기였다고도 생각한다. 이건 절대 내 자랑이 아니며 당시 구조와 여러 가지 상황을 고려한 내용이다. 내 기억에 따르면 당시 야놀자는 온라인/오프라인/C&B 부문으로 나뉘며 거버넌스들이 구분되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각 담당영역들의 대표체제가 형성되며 각 영역에 HRBP들이 배정되었다. 이 당시 HRBP 중에는 HR Base 인원은 없었다. 거의 대부분 전략/비즈니스 커리어 출신 분들이 HRBP를 담당하고 있었다. 사실 이것 자체가 꽤 많은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야놀자 HRBP는 HRer 출신이 HRBP 할 상황이 아니었다. 그 이유는 HRBP들은 전사 경영/리더십 회의들에 모두 다 초대되며 그곳에서 나오는 내용을 다 f/up 해야 하며 이를 HR side에서 다 해결해야 했기 때문이다. 누구도 그 내용들을 해석해 주거나 설명해주지 않았고 HR적으로 어떻게 솔루션을 만들지도 설명해주지 않았다. 영업조직을 담당한다면 실제 영업 현장에서 같이 매출을 올릴 수 있게 고민해야 하며 M&A 이후 PMI과정에서 성과가 나오지 않는다면 직접 현장에서 사람들을 동기부여하고 관리해야 할 수도 있다.
내가 사실상 1호 HR 출신의 HRBP로서 그래도 안정적으로 적응하며 또 성과를 낼 수 있었던 이유는 내가 HRer라고 하기에는 일반적인 성향이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HRer 치고는 개방적이며 유연하며 또 조직과 비즈니스에 관심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드라이하며 또 때로는 합리적이기 때문이다. 나의 HRBP시절은 따로 또 얘기할 기회가 있을 것 같지만 당시 나를 생각해 본다면 일반적인 HR담당자로서 하기에는 어려운 조언들이나 관점들이었다. 보통 현업에서 말하면 HR에서 그러면 안 된다 하는 이야기를 내가 더 많이 했던 것 같다. 그때 다른 HRBP를 뽑을 때도 난 온실 속의 HR 인원들보다 현장파들을 선호했다. 개인적으로는 그 과정에서 지금 다른 회사의 COO로서 비즈니스 일선에서 더 활약하고 있는 경수님도 그 관점에 해당했던 분이라고 생각한다.
회사는 성장을 위해 HRBP체제를 선택할 수도 있고 HR function 체제를 선택할 수도 있다. 그 직무를 선택하는 것은 그 조직의 구조이자 일하는 방식이다. 즉 다시 말해 HRBP체제를 하겠다면 그것을 위한 사전에 전제될 요소들이 있다.
먼저 HRBP 구조가 되기 위해서는 HRBP에게는 파트너가 필요하다. 적어도 파트너는 각 조직의 Head 혹은 C-Level급은 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해당 조직 내에서라도 인사권을 가지고 완결적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각 조직에 HRBP를 배치해서 좀 더 조직 전면적으로 유연하고 빠르게 대응하기 위함이다. 만약 아직 조직이 적거나 혹은 각 조직별로 권한을 충분히 인정할 만큼의 상황이 아니라면 HRBP 자체가 도리어 비효율성을 만들 수 있다. 어차피 모든 의사결정의 주체는 대표가 된다. 그러면 대표 직속의 HR조직에서 각 기능별 전문가 체제가 훨씬 효율적이며 효과적인 운영을 할 수 있다.
다음으로 HRBP구조가 되기 위해서는 조직 덩어리가 필요하다. 그 덩어리의 기준은 function이 될 수도 있고 Business가 될 수도 있고 혹은 Product가 될 수도 있고 목적(특정 Object)이 될 수도 있다. 개별화되고 독립화되어 각 조직에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노력하고 또 하나로 몰입할 수 있는 적어도 구조 덩어리가 필요하다. 그 덩어리 안에서 HRBP는 활동할 수 있다. 만약 덩어리도 존재하지 않고 그 덩어리가 충분히 독립적이지도 않는데 HRBP들이 있다면 그들은 스스로 활동을 열심히 하려고 해도 본인의 영역들이 충돌하거나 애매한 상황에서 결국 그냥 HR Manager에 그치게 된다. 심지어 HR 출신이 아닌 HRBP이 이런 애매한 상황에 빠진다면 잘못하면 어중간한 TPM이 되거나 어중간한 영업관리 인원이 될 수 있다.
혹시나 회사가 작다면 전사를 담당하는 것은 HR리드면 된다. 앞에도 말했지만 HR리드는 회사와 비즈니스를 이해하는 역량이 필수적이다. 그것을 본인이 회사의 HRBP라고 한다면 그것도 인정할 수 있지만 본인이 사고하고 판단하고 의사결정 내리는 기준이 뭔지는 한 번쯤 다시 고민해 보면 좋을 것 같다. 누군가는 회사 내에서 HRer관점에서도 고민과 의견을 줘야 한다.
여담으로 한창 Recruting Business Partenr 직무도 유행했는데 이 또한 그 직무의 무게감을 충분히 갖추려면 적어도 이 정도 역량은 필수적이지 않을까 싶다.
회사의 로드맵과 비즈니스/R&D 상황을 고려할 때 이 사람이 앞으로 필요할 것 같다.
A라는 인재가 역량적으로 우리 회사에 필요한데 그 역량을 충분히 발휘하기 위해서는 조직 구조가 이렇게 되어야 할 것 같다.
A라는 인재가 역량을 충분히 발휘하기 위해서 현재 동료인 이들 말고 다른 회사에 있는 B, C정도의 우수 인재가 필요할 것 같다.
미안하다.... HRBP도 사실 정말 현실적으로 어려운 직무지만 Recuiting BP는 더 힘들다고 생각한다. 심지어 두 직무는 공존할 수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고 생각한다. 한 조직에 두 직무가 공존한다면 필연적으로 중첩되어 비효율이 발생하는 영역이 있다.
다시 돌아와서 HRBP는 꼭 해야 하는 직무가 아니다. HRBP가 그냥 하면 좋은 것도 절대 아니다. 그것과 별개로 HRer이라면 회사와 비즈니스 그리고 시장에 대한 깊은 이해와 통찰력은 매우 매우 필요하다. 이 역량이 HRBP와 동일한 말이 아니다. HRBP는 역할이자 직무이름이다. 진짜 HRBP를 하겠다고 한다면 그에 맞는 관점과 업무들을 수행해야 한다. 그것이 아니고 HRBP라는 이름만을 달고 있다면 언젠가 진짜 HRBP로서 필요한 순간에서 후회할 순간이 필연적으로 올 것이다.
모든 길에는 꼭 정해진 정답은 없다. 각자의 길과 각자의 선택 그리고 그 순간마다의 나의 가치관이 있을 뿐이다. 개인적으론 맹목적으로 무엇이 좋다고 와~~ 하고 다 같이 따라가는 트렌드가 유독 HR과 마케팅이 많다고 느낀다. 지금 2023년 어려운 시기에서 시장과 회사는 그 본질을 다시 묻고 또 챌린지 하고 있다. 항상 본질이 단단한 사람이 되지 못한다면 시대의 변화, 트렌드의 변화에서 쉽게 도태되거나 풍화침식 당한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