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드의 HR 개똥철학 시리즈
[Edited by iid the HRer]
※ 내가 쓰는 글들은 아주 개인적인 경험에 근거한 지극히 개인적 의견이니 편하게 봐주면 좋겠다.
이번엔 조금 가볍게 시작을 해볼까 한다. 브런치를 통해 알게 된 HR 후배님과 티타임을 하게 되었다. 후배남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혹시 궁금하거나 하고 싶은 말이 있냐고 물어보았다.
"이드님의 글들을 보면 조직문화에 대해 부정적인데 왜 이드님은 중요하지 않다고 하시나요? 저는 개인적으로 다른 HR 선배님들이나 코치분들의 글을 보면서 스타트업 HR에서 조직문화는 너무도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 질문을 받고 나에 대한 비판이라고 생각들 수도 있겠지만 난 개인적으로 재미있게 질문을 들었다.
• 나는 개인적으로 조직문화 자체에 대한 비판/부정보단 그 의미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했는데 내 글들을 보고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구나.
• 주니어인 후배님이 이렇게 말할 정도로 조직문화란 것이 너무도 HR에는 강한 개념으로 자리 잡았구나
※ 아래 글을 시작하기에 앞서 조직문화와 유사하게 한 때 유행했었던 채용브랜딩 또한 비슷한 개념이라고 생각하고 있긴 하다.
이드 또한 조직문화에 대해서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단, 조직문화 그 자체가 마치 별개의 개념이자 영역인양 추종하며 활동하는 것은 부정적이다.
어떤 회사가 있다. 회사라는 개념을 조금 포괄적으로 써보자. 회사는 대표, 구성원, 비즈니스, HR, 재무 등이 종합적으로 망라된 개념이다. 회사와 조직문화 나아가 HR은 구분될 수 없다. 그렇기에 이드는 종종 대표님들에게 초기회사엔 HR조차 필요 없다고 그정도는 대표가 해야 한다고 얘기한다. 대표로서 가장 마지막에 위임하고 또 분화시켜야 할 영역 중 하나가 HR이라고 생각한다.
좀 더 이해를 돕기 위해 두 가지 시나리오를 보자.
• A라는 회사는 아직 초기단계다 보니 매일 야근하고 어떻게든 돈을 벌기 위해 다같이 고생한다. 그러면 A회사의 조직문화란 회사의 성공을 위해 다같이 고생하고 야근도 충분히 수용할 태도/자세일 것이다. 그런 회사에서 워라밸이나 개인들이 하고 싶은 바를 자유롭게 지원한다고 할 수 있을까?
• B라는 회사는 비즈니스 자체가 대표의 영업력 베이스로 커온 B2B회사이다. 어쩔 수 없이 대표에게서 이루어지는 탑다운의 의사결정이 회사 운영을 위해서는 효율적이었다. (추후 회사가 더 확장한다면 고민을 해야겠지만) 현재 B회사의 비즈니스 환경을 고려할 때 수평적이고 자율적인 문화라고 할 수 있을까?
두가지 시나리오에 대해서 너무 현실적인 측면만 강조한 것이 아니냐고, 그리고 조직문화란 단순 현실이 아닌 지향점으로 잡아야 하지 않나라고 물어볼 수 있다. 하지만 조직문화가 왜 필요한가를 고민해 보면 어쨌든 회사가 살아남고 성장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아닐까 싶다. HR 또한 동일하게 별도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현실과 동떨어진 아름다운 말로만 이루어진 조직문화란 그저 텍스트로만 존재되고 결국 사장되기 쉽다. 그 조직의 현실이 반영되지 않은 조직문화, HR은 결국 구성원들에게서 조차 외면받게 된다.
다른 관점에서 대표님 버젼의 시나리오를 써볼까 한다. 스타트업에서 제일 노멀한 버전인 “성숙한 어른들이 각자가 자율적으로 판단하며 관리하지 않아도 잘하는 문화”를 선택해 보겠다. 기업 자체의 생존을 말하는 비즈니스는 1번 내용으로 대체하고 이번엔 흑화의 모습만 포커스 해보겠다.
▶ 대표는 위 버전대로 회사를 운영하고 싶다. 그래서 업무 하는 방식이나 제도 등도 신뢰위주로 관리보다는 자율 형태로 세팅했다.
▶ 그런데 아직 회사가 네임밸류도 약하고 자금적으로도 넉넉하지 않아서 대표가 바라는 우수한 사람을 데려오지 못하고 어느 정도 만족한 사람을 채용했다. (타협하지 않고 우수한 사람을 채용해야 한다는 것은 정말 현실을 무시한 무책임한 낙관론적인 말이다. 경제 정책 수립하며 성장과 분배를 같이 하면 되잖아 정도의 느낌이다)
▶ 대표가 바라는 문화는 굉장히 뛰어난 사람들이 (과거 회사 경험이 있어서) 알아서 상식 수준을 알고 성숙한 문화와 선을 지키며 열심히 일하며 스스로 동기부여하는 문화다. 하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로 구성되다 보니 대표가 기대한 문화(일하는 방식)가 그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대표는 왜 그런지 모르고 마냥 기다리는 과정에서 회사 성과까지 안 나오는 상황이 지속되자 결국 참지 못하게 된다.
▶ 그래서 처음의 취지와는 달리 직접 마이크로 컨트롤도 하고 신뢰/위임보다는 관리영역을 확장하게 된다. 그런데 예전보다 훨씬 성과도 좋아지고 조직도 회사처럼 잘 돌아간다. 대표는 회의감에 빠진다. 분명 내가 바란 건 이게 아닌데 사람들도 자율적 문화가 좋다 했는데 왜 내가 직접 관여하고 관리를 하니 더 잘되지. 내가 너무 이상적이었고 잘못 생각했던 것인가. 어쨌든 회사가 잘되는 것이 중요한데.
▶ 아냐 아냐!! 이건 한 번의 예외적 상황일 거야. 난 이걸 위해 창업한 게 아냐. 다시 믿어볼 거야!!
▶ 회사를 경영하면서 이 반복을 수도 없이 하게 될 것이다. 그러면 대표는 자신의 최초 마음을 유지하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자기 초심과 다르게 하면 할수록 회사는 성장하고 그로 인해 더 좋은 사람들이 들어오게 된다. 결국 이 과정에서 대표가 택할 수 있는 것은 흑화 된 자신을 인정하기보단 이것은 다 뛰어나지 못한 구성원의 탓이며 자기는 여전히 최초의 이상적 문화를 추구한다고 얘기할 수도 있다.
이 시나리오는 사실 좀 더 극단적으로 극화하긴 했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현실을 너무 반영한 것이 아닐까 우려되긴 했다. 문득 2012년 예전 NHN 시절 이해진 의장님의 통근버스 폐지 사건이 떠올랐다. 당시만 해도 근로 분위기를 악화시켜서 회사를 힘들게 한다고 했다.
이 두 가지 이야길 한 뒤 나는 후배님에게 사실 미안한 마음이 강했다. 왜냐하면 이드도 저 때는 순수한 마음과 이상으로 HR을 대했는데 내가 너무 현실에 쩌든 이드 생각을 조기공유해 준 것이 아닌가 싶었다. 그런 멘붕 요소를 감내하며 시니컬하게 수라도를 걷는 이는 이드로만 해도 충분히 족하다고 생각한다.
난 다양한 색깔과 각각의 길을 다 존중한다. 단지 내 길에 대해서 오해를 할 수 있기에 내 생각에 대한 기반을 공유해 주었을 뿐 절대 비판의 마음은 없다. 나 또한 때에 따라선 조직문화에 의존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단지 내 중심축이 어디에 있고 왜 그렇냐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PS. 개인적으로 조직문화에 대한 추종만큼 무서운 것이 시스템/제도에 대한 추종이라고 생각한다. 이 내용은 추후 '대기업/빅테크에서 올 때 고려해야 할 것들'에서 더 자세히 다루기는 할 것 같다. 시스템/제도가 효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조직문화이상으로 너무도 많은 전제조건들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에 대한 고려나 준비 없이 시스템/제도만을 절대시 하며 이야기한다면 탁상공론에 그칠 뿐이다. 그것을 본인이 가지고 있는 출신의 권위로 찍어 누른다면 그때부터는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폭력적 사상중 하나였던) 계몽주의에 가깝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