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주 Jun 20. 2022

간결한 맛의 힘

유럽에서 찾은 새로운 입맛

한 여름밤의 꿈


2018년 여름, 배낭 하나와 캐리어 하나를 가지고 유럽으로 떠났다. 방학 때 다녀오는 한 달짜리 교환학생이었지만 수업을 듣는 한 달만 있다 오기에는 너무 아쉬울 것 같아 다른 나라도 가기로 결심했다.
'여행은 살아보는 거야'라는 에어비앤비 슬로건에 꽂혀있던 시기였기에 여러 나라를 돌아보긴 싫었고, '딱 세 군데만 가자!' 결심하고 프랑스 한 달, 스위스와 포르투를 열흘씩 살아보았다.(ㅎㅎ)


여행을 하는 모든 시간이 행복했지만, 특히 더 즐거웠던 시간은 조식 시간. 밀가루와 버터 맛이 나는 담백한 빵에 1차로는 버터를 발라 먹고 2차로는 잼과 치즈, 햄까지 올려 먹는 재미가 쏠쏠했다. 유럽에 있는 45일 동안 한식은 생각도 안나 ‘나 유럽이랑 잘 맞나 봐’를 입에 달고 살았다. 식사빵의 매력, 그리고 별 것 없어 보이는 간결한 조합의 풍미에 푹 빠졌었다.


홈스테이 하는 집 앞 빵집에 있던 크루아상을 거의 매일 먹고,
호스텔에 있던 브로첸에는 버터와 치즈를 올려 먹고,
베르사유 궁전에서는 햄과 버터뿐인 바게트 샌드위치를 정말 맛있게 먹었다. (그때는 잠봉 뵈르인지 몰랐다)
포르투에서의 아침 식사
스위스에서의 아침 식사

그리고 유독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 그것은 바로 프랑스어 강의 교수님의 점심. 점심시간이 되자 가방에서 빵 한 조각을 꺼내며 '내 점심!'이라고 하는 것이었다. 밥, 국, 3가지 반찬 칸이 있는 푸짐한 식판과 함께 자라온 나에게는 ‘저게 점심이라고?’ 하는 의문과 함께 아무런 포장도 없이 정말 빵을 그대로 가방에서 꺼내는 모습에 대한 충격이 컸다. ‘부스러기는 어쩌고..?’ ‘이래서 거리에 쥐가 많나..?’라는 생각이 스쳐 지나가면서도 유럽 사람들은 빵을 진짜 식사로 먹는구나를 직접 느낀 경험이기도 했다.


아무튼, 유럽에서의 45일 정도의 시간을 보내고 한국에 와서 간결한 재료들이 주는 조합을 찾게 되고, 간식으로만 생각했던 빵을 한 끼 식사로 먹는 걸 즐기게 되었다. 스윽 스윽 버터를 바르는 거친 소리까지 너무 좋아졌으니 말 다했지 않나.


간결하지만 좋은 재료들에서 오는 맛의 힘은 꽤나 중독적이었다. 그래서인지 이런 맛을 찾아다니고 직접 만들어 먹었다.


서촌 '더 마틴'에서는 바닐라 아이스크림에 올리브 오일이 뿌려진 크루아상을 먹었고,
한동안 뺑 오 쇼콜라에 빠져 모드니에를 방앗간 삼았고,
리코타 치즈를 직접 만들어 과일과 함께 먹고,
요즘 유행인 소금 빵까지 직접 만들어봤다.
서촌 더 마틴 하몽 크루아상
모드니에 뺑 오 쇼콜라


직접 만든 소금빵


부라타 치즈와 올리브유
리코타 치즈, 꿀과 토마토



여행을 통해 좋은 재료의 힘을 배웠고, 이전과는 달라진 나의 입맛을 발견했다.

2018년 여름, 나는 꿈을 꿨다.

이전 03화 나를 대접하기 위해 내 취향 알아내기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