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라우마

침착하게 안아주기

by iima

나는 어릴 때 닭목비트는 걸 보고 충격받아서 닭을 안 먹어.

나는 어릴 때 물에 빠져서 물놀이를 싫어해.

나는 어릴 때 자전거 타다가 또랑에 빠져서 자전거를 못 타.


이런 걸 트라우마라고 하나?

이런 거 하나씩은 가지고 있는 것 같다.


그런데 그 순간 때문에 무언가를 즐기지 못하는 제약을 가지고 사는 건 조금 억울하다. 그 순간의 생사의 기로에서 생으로 남은 것만 해도 감사해야 하긴 하지만, 그래도 무엇이든 안 좋은 기억, 혹은 아픈 기억으로 남아서 떠오를 때마다 피하고 싶은 건 참 안타까운 일이다.


어제는 아이랑 노천탕에서 물장구를 치면서 놀았다. 정확히 말하면 물가에 엎드려서 손으로 물을 저으면서 놀았다. 그러다가 잡초를 좀 뽑다가 아이가 먼저 다시 물가로 갔는데, 직감이 왔다. 얼른 바다한테 가야겠다. 탕쪽으로 돌아보니 꼬로로로록 바다가 누운 자세로 물에 잠기고 있었다.


내가 호들갑을 떨면 아이가 더 놀랄 것 같아서 "어머 바다야!"만 외치고 물속에서 꺼내 들어 안았다. 물을 먹어서 콜록콜록거리고 코랑 눈이 빨개졌지만 별문제 없어 보였다. 안고 등을 쓰다듬어주고 괜찮아? 하고 물어봐주고... 그러니 좀 놀랬는지. 뿌애 뿌애앵 뿌애. 세 번 정도 물 듯 말 듯하다가 이내 폭 안겼다.


지금 이대로 안고 이 자리를 벗어나면 이 순간이 트라우마로 남아서 다시는 노천탕에서 놀지 않으려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애써 즐겁게 웃으며 "우리 이왕 다 젖은 거 물 안에 들어가서 놀까?"라고 하니 처음에는 다리를 물에 넣지 않으려 버팅기더니, 몇 번 말하니 끄덕이며 물에 들어갔다. 그러고는 한참을 물가에서 보다 더 신나게 놀았다. 물에 들어갈 생각은 없었는데... 기저귀는 초 특급으로 물을 흡수해서 1.5 페트병처럼 뚱뚱해졌다. 그걸 보고 또 한참을 웃고 놀았다.



바다가 자라는 걸 보고 있으면 '트라우마로 삼을 수 있겠다.' 싶은 순간이 제법 많다. 자라는 중에 얼마나 많은 것들을 경험해 나가야 홀로 온전히 세상을 살아갈 수 있을까. 그 많은 것들을 경험하는 중에 얼마나 많은 시행착오를 겪어야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자연스러운 능력이 될까 싶다.


큰 탈 없이 커가기를 바라지만, 혹시나 큰 탈을 겪더라도 그 순간을 두려움으로 남기지 않고, 한 번의 경험이라 여기고 즐겁게 이겨내고 다시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그런 바다이기를, 그리고 그런 나 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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