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는 치열하게 하루를 살아낸다

『모순(양귀자)』를 읽고

by 휘휘

어렸을 때 읽은 소설 중 가장 선명하게 기억에 남는 작품이 무엇인지 묻는다면 주저하지 않고 『누리야 누리야(양귀자)』를 말할 것이다. 어린 아이가 혼자 많은 고난을 겪으며 살아가는 모습이 초등학생이었던 나에게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아침마다 차려진 밥을 먹으며 엄마가 머리를 땋아주던, 굳이 표현하자면 온실 속 화초같았던 나에게 내 또래가 부모와 헤어져 곡예단에 들어가고 매를 맞는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이 판타지에 가까웠던 것이다. 그 당시 소설을 다 읽고 난 후 책을 덮으며 '절대 집을 나가지 말아야지.'라고 공포에 떨었던 것이 생각난다. 그 때의 인상은 정말이지 강렬했다. 대학생이 된 후 한가한 시간에 다시 한 번 그 책을 읽었다. 단순히 무서웠던 초등학생 시절과는 또 다르게 누리가 짠하고, 안쓰럽고, 참 대담하기까지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혼자 남겨진 누리, 도망치는 누리의 단편적인 상황을 보고 감정을 이입했던 예전과 달리, 누리의 모든 삶이 이어지며 하나의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이렇게 살아가지?' 내가 누리라면 그 무수한 좌절감을 겪으며, 느끼는 감정에 대한 정확한 표현도 모른채 하루하루를 힘들어하며 견뎌낼 수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 계속해서 들었다. 책이 아니었다면 절대 상상하지 못할 타인의 삶이었다.


『모순(양귀자)』을 읽는 동안, 저 때와 비슷한 감정이 계속해서 나를 덮쳤다. 이 책을 읽게 된 동기는 단순했다. 새 판이 나올 때마다 표지의 색 조합이 새롭게 바뀐다는 것이 흥미로워서 읽게 됐다. '모순'이라는 제목만 들으면 책이 조금은 무겁고 어두워보인다. 괜히 막막한 느낌이다. 삶은 끝없이 모순으로 가득 차있다는 것은 머리가 큰 사람이라면 누구나 느끼고 있는 사실이다. 별로 달갑지 않은 사실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책은 예상치 못한 에너지로 가득하다. 몰아치는 인생의 폭풍우 속에서 스물 다섯의 여성이 내뿜는 에너지는 생각보다 더 강했다.


이 책은 '안진진'이라는 주인공의 가정사부터 시작한다. 술에 취해 폭력을 일삼고 돈을 탕진하고 들어오는 아버지, 조폭 문화에 심취한 남동생, 양말과 속옷 장사를 하며 굳세게 살아가는 어머니와 함께 살아가는 안진진. 그녀의 삶은 늘 치열하다. 아버지가 돌연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남동생과 엄마와 셋이서 살아간다. 안진진이 자아를 찾아가는 도중 만나는 흥미로운 '조연'들이 등장한다. 엄마와 똑같은 얼굴을 하고 정반대의 삶을 살아가는 이모는 안진진의 몇 없는 친한 친구 중 한 명이다. 그녀는 안진진에게 낭만이라는 것을 가르쳐준다. 안진진의 낭만이 향한 곳은 다름 아닌 두 남자로, 나영규와 김장우다. 두 남자를 만나며 안진진은 스스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찾아간다.




책을 읽으며 기억에 남는 문장을 적어뒀다. 그 중 몇개를 소개하고자 한다.


세상의 일들이란 모순으로 짜여있으며 그 모습을 이해할 때 조금 더 삶의 본질 가까이로 다가갈 수 있는 것이다.
행복의 이면에 불행이 있고, 불행의 이면에 행복이 있다. 마찬가지다. 풍요의 뒷면을 들추면 반드시 빈곤이 있고, 빈곤의 뒷면에는 우리가 찾지 못한 풍요가 숨어있다.
인생은 살아가면서 탐구하는 것이다. 실수는 되풀이된다. 그것이 인생이다······.
뜨거운 줄 알면서도 뜨거운 불 앞으로 다가가는 이 모순, 이 모순 때문에 내 삶은 발전할 것이다.
이제 겨우 내 인생의 물줄기가 어디로 흘러가야 하는지 예측할 수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또 미루어지는가······.
인생의 부피를 늘려주는 것은 행복이 아니고 오히려 그토록 피하려 애쓰는 불행-.
인간을 보고 배운다는 것은 언제라도 흥미가 있는 일이었다.
거기 가을을 건너가고 있는 높고 푸른 하늘이 무심하게 세상을 굽어보고 있었다.


사회 통념상, 굳이 따져보자면 안진진의 삶은 행복하기 힘든 조건이다. 가난에 아버지는 술만 마시면 난동을 부리고 동생은 교도소에 가고. 여러 악조건이 즐비한 상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진진의 삶은 풍요로워 보인다. 소설 어디에도 안진진이 삶에 지쳐 포기하는 모습은 나오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이 처해있는 삶을 직시하고 솔직하게 받아들인다. 술에 취해 난동을 부리고 집을 떠났다가 치매에 걸려 돌아온 아버지를 받아들였을 때, 어둠의 조직을 선망하며 따라하는 동생을 감싸주는 것을 보며 안진진은 스물다섯이 아니라 서른다섯임이 틀림없다며 의심을 품곤 했다. 이 책이 1998년도 소설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지금의 스물다섯에 비해 당시의 스물다섯이 조금 더 성숙했을 것임은 짐작 못 하는 바가 아니지만, 그래도 나를 안진진에 대입해보면 얘기가 달라지는 것이었다. 나라면 그런 가족들을 받아들일 수 있었을까? 그런 상황 속에서 안진진만큼 치열하게 삶에 집중할 수 있었을까? 여러 의문들이 날 혼란스럽게 했다. 책을 덮고 안진진, 그리고 작가님의 말을 다시금 되새겨보았다. 내가 정리한 생각은 이것이다.


인생은 모순으로 가득하니 억울해하지 말고 주어진 상황에서 노력해야 한다. 행복은 어디서나 찾을 수 있지만 누구든지 찾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세상에 이름을 알리지 않았다고 해서 치열하지 않게 사는 건 아니다. 누구든지 각자의 삶을 치열하게 살아가려고 애쓰고 있다.


소설이 내게 주는 가장 큰 행복은 타인의 삶을 느껴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인생은 길지만, 동시에 너무 짧다는 생각을 한다. 현실에서는 제약이 너무나도 많은 게 인생이다. 그러나 책을 통해서라면 나는 누리도 될 수 있고, 안진진도 될 수 있다. 나의 세계를 한뼘 더 넓힐 수 있었음에 작가님께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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