겹겹이, 계절을 지날 때

by 윤세영


추위를 못 견뎌 옷을 많이 껴입는다. 무얼 주렁주렁 들고 다니는 게 점점 더 힘들어 집을 나설 때 짐을 최대한 가벼이 하려 노력하지만, 한여름에도 겉옷은 꼭 챙긴다. 카페와 같은 실내는 대개 지독히도 시린 냉기가 그득해서 반팔인 채로 오래 앉았다간 감기에 걸리기 십상이니까.


겨울엔 정말 정성껏 겹겹이, 옷을 입는다. 내의에 폴라티에 셔츠에, 카디건 혹은 조끼까지 입고서 그 위에 코트를 걸친다. 반팔에 패딩만 걸치고 집밖을 나서는 젊음 같은 건 내 생에는 없었다. 패딩보다 품이 넓은 코트를 좋아하는 건 옷을 껴 입기에 용이하기 때문이다.


기온이 좀 포근해져 요사이엔 집 밖을 나설 때 옷을 조금 덜게 된다. 그러고 보니 어느새 3월이다. 새해 첫날을 축하한 게 정말로 어제 일 같은데, 시간은 정말 빠르게도 내달린다. 이럴 때, 겨우내 정성껏 겹겹이 옷을 껴입다가 서서히 덜어내기 시작할 때. 계절을 지나고 있음을 문득 깨닫는다.


옷을 겹겹이 껴입고 하나씩 덜어가며 계절을 지나고 있구나. 포근해진 날씨에 오늘도 옷을 입으며, 무얼 덜어낼지 고심하는 사이, 겹겹이, 겹겹. 가만 되뇌어 봤다.

변하지 않고도 변해 가는 나를 가만 바라보자니 문득 겹겹이가 나와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조금 달리 말하면, 나를 표현하기에 좋은 단어랄까.


겹겹이는 부사로 표준국어대사전을 찾아보면 다음과 같은 의미를 지닌다.


겹겹-이

부사

여러 겹으로.


부사 파생 접미사 ‘-이’를 덜어낸 겹겹은 그럼 어떤 단어인가.


겹-겹

명사

I. (주로 ‘겹겹으로’ 꼴로 쓰여)

1. 여러 겹.


다시, 이번엔 하나의 ‘겹’만을 찾아 본다.


겹¹

명사

1. ((주로 ‘겹으로’ 꼴로 쓰여)) 물체의 면과 면 또는 선과 선이 포개진 상태. 또는 그러한 상태로 된 것.

2. ((흔히 ‘겹으로’ 꼴로 쓰여)) 비슷한 사물이나 일이 거듭됨.

3. ((수량을 나타내는 말 뒤에 쓰여)) 면과 면 또는 선과 선이 그 수만큼 거듭됨을 나타내는 말.


‘겹’과 ‘겹겹’이라는 합성어와 ‘겹겹이’라는 파생어까지. 이 세 단어는 의미나 생김새나 큰 차이가 없어 보인다. 국어의 교착어로서의 특징이 잘 드러나는 단어들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 비슷한 세 단어도 문장에서의 쓰임에 있어 그 모습이 엄연히 다르다.


‘겹’이라는 명사는 이미 홑의 상태가 아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겹’을 말할 때 ‘한 겹’ 혹은 ‘두 겹’, ‘세 겹’처럼 앞에 수 관형사를 두는 경우가 많다. ‘여러 겹’임을 강조하고 싶어 그런 거겠지.

‘겹겹’은 이미 ‘여러 겹’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따라서 이 경우엔 앞에 수 관형사가 오지 않는다. 다만 ‘겹’과 마찬가지로 주로 ‘으로’라는 부사격 조사를 곁에 둔다.

‘겹겹이’는 그럼 어떠한가. ‘-이’라는 부사 파생 접미사가 결합하여 그 자체로 부사어로서 문장에 놓인다는 점에서 앞의 단어들과 차이가 있다.


만날 비슷한 글을 쓰고, 늘 한결같은 바람을 품고, 한결같이 실패하고 머쓱한 채 나이 들어가는 나. 마치 이었다가 겹겹이었다가 겹겹이가 된 것뿐인 것은 아닌가, 생각하다가도, 그렇게 간단히 말할 수 없는 일이지, 하고 멈춰 선다.


내 위에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한 겹 한 겹 껴 입는다. 그런다 한들 달라지는 것은 크게 없다. 세 겹 껴입은 나, 네 겹 껴입은 내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계절마다 조금씩 다른 겹겹의 나는 더하고 덜어가며 나로서 나이들고 변화한다.


변하지 않고도 변하는 나를 바라볼 때마다, 어떤 묘한 감정에 빠질 때가 있다. 언젠가는 그에 대해 제대로 말할 수 있을까 기대하면서 살고 있지만, 사실 잘 모르겠다. 다만 오늘은 이렇게 또 한 계절을 막 지나섰다. 지난 겨울까지는 달리 생각해 보지 않았던 무언가에 대해 말하고 쓰면서, 한 겹 또 달라진 채로.






성실하게 잘 해내고 싶으면서도 게으름만 켜켜이 쌓여 못난이로 굳어버리는 것은 아닌지 요사이 괜히 주눅이 들었다. 그래도, 나로서 행복한 순간을 놓기 싫어서 사람들은 악기도 연주하고 글도 쓰고 바쁜 생활 속에서도 시간을 내 여행을 간다. 그런 친구들을, 멋진 이들을 떠올리며 힘을 내서 오늘의 글을 또 써서 올린다. 쓰고 나니 또, 슬몃, 즐거운 마음.




목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