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사과하면 지는 사회?
“일찍 나왔는데 차가 너무 막히네~”
이 말과 함께 머쓱한 미소를 머금은 등장은 정말이지 최악이다. 약속 시간에 15분 이상 지각한 상태에서 말이다. 그저 단지 그 정도 마음뿐이었으리라 판단된다. ‘별로 중요하지 않으니 늦어도 돼’라는 마음이 기저에 깔려 있기 때문에 서두르지 않은 것. 늦어도 본인이 충분히 무리 없이 상황을 쉽게 모면할 수 있을 거라 판단했기에 늦은 것이다. 인생에 몇 번 없을 수능이나 취직하고 싶은 회사의 최종 면접, 결혼을 앞두고 하는 상견례 자리에는 대부분 늦지 않지 않나. 물론 어쩌면 만나는 사람에 따라 다를 수도 있다. 친구 혹은 연인과의 가벼운 만남은 평소에도 자주 보는 사이인지라 이미 서로를 이해해 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기에 조금의 나태는 허용해 줄 거라 믿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무리 가까운 관계일지라도 답답한 교통상황이나 길을 헤맸던 이슈, 급했던 화장실 용무를 얘기하는 것은 등장과 동시에 먼저 뱉을 말은 아니다.
그렇다. 만약 지각을 했다면 인정하고 사과를 하는 게 최우선이다. 물론 정말 피치 못할 사정으로 늦을 수도 있다. 살면서 지각 안 해본 사람이 어디 있나. 앞서 조금 빡빡한 단어들로 지각 시 최악의 상황을 나열했지만 사실 지각해도 괜찮다. 가까운 지인과의 약속에서의 5분, 10분은 크게 문제없다. 중요한 것은 늦은 사람의 태도이다. 늦기 전에 미리 말해 양해를 구하는 친절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 하지만 늦었다면 일단 가장 먼저 뱉어야 할 말은 아무리 생각해 봐도 “미안해” 말고는 없다. 그 후에 본인의 지각 이유를 설명하며 기다린 사람의 기분을 조금이라도 풀어주려 노력해야 한다. “늦어서 미안해. 많이 기다렸지?” 보다 먼저 나올 수 있는 말은 결단코 없다.
시간 약속을 비롯한 모든 약속은 생각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일지도 모른다. 누군가가 약속을 가벼이 여기고 있을 때 다른 누군가는 약속을 지키고자 큰 노력을 했을지도 모른다. 그 약속을 믿고 준비, 계획, 실행하는 일을 절대 가볍게 봐선 안 된다. 최소한 약속을 믿고 사는 사람들이 바보가 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 그렇기에 더 중요한 것은 약속을 피치 못하게 어겼을 때의 태도와 사후 처리이다. 약속을 지키려 부단히 애썼을지도 모를 다른 사람의 노력을 존중하며 본인의 실수에 대한 책임을 지려는 태도를 보여야만 한다. 그 태도의 가장 기본은 인정과 빠른 사과이다. 그 후에 약속을 지키지 못한 이유를 설명하고 어떤 형태로든 책임을 지려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사실 정말 우스운 점은 이토록 장황하게 설명하는 이 과정 또한 너무나도 당연한 사회적 약속이다. 하지만 이마저도 잘 지켜지지 않는 것이 개탄스럽고 암울하게 느껴질 때가 많다. 만약 약속을 못 지켰을 때의 취해야 할 행동에 관하여 고민하고 싶지 않다면 답은 간단하다. 약속을 지켜버리면 그만이다.
우리 사회와 그 속을 꾸리고 있는 각자의 세상은 크고 작은 약속으로 가득 차 있다. ‘길거리에 쓰레기를 버리지 말아야 한다 ‘라는 당연한 생각조차 사실은 사회적 약속이다. ‘난 그런 약속 한 적 없는데?’라며 본인만의 세상을 구축하려 한다면 우리 사회를 떠나면 된다. 아니 떠나 주길 바란다. 본인이 직접 맺지 않은 사회적 약속조차도 어길 시 법으로써 대가를 치러야 한다. 그렇다면 본인이 직접 뱉은 말로 이루어진 약속은 더욱 무거운 마음을 가질 필요가 있다. 무언가를 약속한다면 말을 뱉는 순간부터 약속을 지키기 위해 온 힘을 다해 노력해야만 한다. 약속은 지켜야 하고 지켜져야만 한다. 그러기로 약속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