멍청하면 악역도 못 한다
똑똑한 사람은 착하다. 다시, 똑똑한 사람은 ‘착해 보인다’. 또다시, 똑똑한 사람은 ‘착해 보이게 행동한다’. 진정한 마음의 착함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사실 진짜로 착하다는 것이 무엇인지조차 아직 잘 모르겠다). 중요한 것은 그들이 착한 이미지가 주는 이점을 계산할 줄 안다는 점이다. 이들은 착한 행동을 통해 적을 만들지 않고, 신뢰를 구축하며, 관계를 부드럽게 다룬다. 이는 단순한 처세술을 넘어서는 일종의 생존 전략이라 할 수 있다.
우리가 쉽고 흔하게 접하는 만화나 드라마, 영화에서 똑똑한 사람은 보통 악하게 그려지는 경우가 많다. 순수하고 선한 주인공의 맞은편에 서서 위기의 상황을 부여하는 악한 빌런이 필요하고 맡은 역할을 충실히 성실하게 수행하려면 똑똑해야만 하기에 악하고 나쁜 사람은 똑똑하게 그려진다. 그리하여 똑똑한 사람은 필히 순수하지 못하고 나쁜 속마음을 감추고 있을 것이라는 편견을 만든다. 하지만 현실은 그와 다르다. 오히려 지적 능력이 뛰어난 이들은 더욱 세련된 방식으로 선의를 표현한다. 감정적인 돌출 행동이나 직설적인 표현을 자제하고, 상황에 맞는 적절한 친절을 구사한다.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전략적 선의’가 진정한 선의로 발전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매일 착한 척 연기하다 보면, 어느 순간 그것이 진정한 나의 모습으로 자리 잡게 된다. 마치 가면이 얼굴이 되어버리듯이. 처음에는 의식적으로 했던 배려가 자연스러운 습관으로 변모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똑똑한 이기심이 만들어내는 역설이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시작한 친절이, 결과적으로 진정한 이타심으로 진화한다. 처음에는 계산된 친절이었더라도, 그 습관이 우리를 점차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어 간다.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똑똑함의 완성일지도 모른다. 이기심과 이타심의 경계가 흐려지는 지점, 전략과 진심이 하나로 융합되는 순간. 따라서 가장 똑똑한 이기심은 결국 이타심으로 귀결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처음으로 돌아가 다시, 똑똑한 사람은 착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