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한마디가 어려운가?

왜? 뭐? 빤히 쳐다보면 뭐가 확 달라져?

by 이영

어느 쌀쌀한 날 아침, 출근길 지하철에서 20대로 보이는 남성이 발걸음을 주춤거리다 실수로 내 발을 밟았다. 나는 순간적으로 움찔하며 발을 빼고 작은 신음을 흘렸다. 남자는 놀란 듯 나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그것이 전부였다. 1초, 어쩌면 2초 정도? 그는 나를 바라보다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다시 핸드폰으로 시선을 돌렸다. 나는 그 자리에 그대로 굳어버렸다. 황당했다. 내가 기다렸던 것은 단 한마디, 당연히 들려야 할 말이었다. 하지만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죄송합니다’까지도 바라지 않았다. ‘죄삼다~’ 혹은 ‘죄송ㅎ…’정도. 그것도 아니라면 가벼운 목례라도. 하지만 그는 마치 이 상황을 무시해도 괜찮다는 듯 행동했다.

문득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발을 밟힌 내가 먼저 괜찮은 척해야 하는 걸까. '별일 아니야'라는 태도는 나에게서 나와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런데 그는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있었다. 불편한 건 내 쪽인데, 마치 내가 괜한 예민함을 드러내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별 일 아니라는 태도는 당신이 아니라 내가 취해야할 태도가 아니냐고.


나는 애매한 상황에서 말을 아끼는 편이다. 하지만 몇 가지 말만큼은 예외다.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 '죄송합니다'. 이 말들은 고민할 필요 없이 바로 내뱉어도 되는 말들이고, 오히려 반드시 내뱉어야 하는 말들이다. 짧고 단순하지만 관계를 부드럽게 만들고, 순간의 어색함을 풀어주는 힘을 가졌다. 세상에는 많은 말들이 있지만, 이 세 가지는 절대 손해 볼 일이 없는, 밑져야 본전인 말들이다. 그중에서도 '죄송합니다'는 기적 같은 힘을 가진다. 단 한마디로 상황을 바꾸고, 불편함을 해소하며,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준다.

그런데 요즘, 우리는 점점 사과하는 일을 어려워하고 있다. 먼저 잘못을 인정하는 순간, '슈퍼 을(乙)’이 되어버린다. 스스로 약한 존재가 되는 것 같고, 쉽게 공격당할 수 있을 것 같은 두려움이 앞선다. 잘못을 인정하는 순간, 사람들은 나를 함부로 대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퍼진다. 그렇게 우리는 점점 단절된다. 실수는 묻히고, 불편한 감정은 남아버린다.


어쩌면 우리가 잃어가는 것은 말 자체가 아니라, 그 말이 품고 있는 마음과 태도일지도 모른다. 사과는 약함이 아니라, 관계를 이어가는 최소한의 노력이다. 세상이 각박해질수록, 이 기본적인 말들의 가치는 더욱 빛난다. 변명도, 길고 복잡한 설명도 필요 없이, 단 한마디로 우리는 서로를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그 한마디가, 때로는 생각보다 더 많은 것을 바꿀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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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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