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는 도끼에 발 등 찍혔더니 더 아프다.
몸 컨디션이 많이 나아져서 수영장에 가서 운동할 수 있는 상태가 되었다.
수영장에 들어가기 전 샤워를 하려고 샤워실에 들어가는 순간 누군가 내 옆으로 다가왔다.
비어있는 샤워기도 많은데 굳이 옆에 와서 말을 붙인다.
세경: "일찍 왔네?"
나무: "아... 네...."
세경: "근데 있잖아... 우리 선생님은 왜 너한테만 사적인 이야기를 해?"
이 말을 듣고 '또 시작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어 한숨이 나왔다.
나무: "사적인 이야기?..... 그런 거 없는데요!"
세경: "네 딸 이야기를 수업 시간에 왜 하는 거야? 그거 좀 아니잖아."
하다 하다 내 딸 이야기까지 한다.
우리 아이도 수영 배우면 좋을 거 같아서 얼마 전에 등록시켰다.
근데 우연히 나와 우리 아이를 가르치는 선생님이 같았던 것뿐이었다.
아이 이야기까지 하는 건 너무하다 싶어서 심장이 두근거리지만 이야기했다.
나무: "그건.... 우리 얘 수영반 선생님이 저희 반이랑 같은 분이에요....
수영을 처음 배우기도 하고 아직까진 물을 좀 무서워해요.
물에 얼굴을 못 넣어서 집에서 욕조에 물 담아놓고 연습 좀 시키라고 그 한 마디 했을 뿐이에요."
말을 하면서도 너무 어이가 없어서 이런 말까지 왜 해야 하는지 이해되지 않았다.
심장이 계속 빠르게 뛰고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아무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렇게 말한 세경은 서둘러 수영복을 입고 샤워실을 나섰다.
샤워기에서 떨어지는 물을 맞으며 거울 속에 있는 내 모습을 바라보았다.
왜 이렇게밖에 말하지 못했을까?
말을 너무 심하게 하는 거 아니냐고?
수영할 차례 잠깐 기다리는 사이에 딱 한 마디 한 건데
그거 가지고 이러면 다른 사람들은 뭐라고 설명할 수 있냐고?
남의 인생 신경 쓰지 말고 본인 인생이나 똑바로 살라고.....
이렇게 이야기했으면 속이 풀리려나?...
내 모습이 너무 한심하고, 한심했다.
언제부터인가 말을 잃어버린 느낌이었다.
준비 운동을 끝낸 사람들은 삼삼오오 모여 선생님이 오기를 기다렸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오늘 운동 시작하기 전에 공지사항 하나 알려 드릴게요.
어... 다음 달부터 윗반으로 올라가시는 분을 말씀드릴게요.
(손을 사람에게 향하며) 회원님. 회원님. 회원님. 그리고 회원님.
이렇게 네 분이 다음 달에 올라가시는 거예요. 자! 그럼 오늘 운동 시작해 볼게요."
사람들은 선생님의 신호와 함께 출발하기 시작했다.
운동 전에 들었던 충격적인 말 때문인가
운동 시간 50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겠다.
샤워실에 씻으러 가려는 사람들을 붙잡고 지현은 하소연을 하기 시작했다.
지현: "언니... 저 지금 수영하는 것도 벅찬데 어떻게 윗반에 올라가요?
제가 체력이 받쳐주면 아무 말 안 하겠지만 지금도 겨우 따라가는데 이건 아니죠?"
옥연: "지현이 네가 우리 반에서 그래도 잘하고 그러니깐 올려 보내는 거지.
잘해서 올라가는데 좋은 거잖아."
성숙: "아까 올라가라고 선생님이 찍을 때 내가 있는 쪽은 쳐다보지도 않더라.
뭐야? 진짜.. 내가 그렇게 못하나?"
현숙: "운동하러 왔으면 그냥 운동만 하면 되는 거지 뭘.
무슨 반 되는 게 뭐가 그렇게 중요하다고."
윗반으로 올라가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끼리
반 이동이 큰 화두가 되어 심각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사실 며칠 전에 윗반으로 올라갈 사람들을 체크해 본다며 4가지 영법을 모두 시킨 적이 있었다.
그때 결석한 사람들이 있어서 앞, 뒤 사람에게
평소에 윗반으로 올라갈 생각이 있었던 사람이냐고 선생님이 살짝 물어보기 했다.
선생님: "혹시 앞에 서는 분 윗반으로 올라가고 싶어 했어요?"
나무: "지현언니요?.... 잘 모르겠는데.... 그냥..... 지금 반에 만족하는 거 같던데..."
평소에 지현이 누누이 사람들을 붙잡고 이야기했던 터라
다른 반으로 가고 싶지 않은 걸 모두 알고 있었다.
그 후 선생님이 찍은 네 사람은 윗반으로 올라가게 되었고, 우리 반 바로 옆 레인에서 수업을 받게 되었다. 우리 반은 나이 때가 젊은 사람부터 나이가 많은 분들까지 다양하게 분포되어 있었다. 다른 반에 비해 서로 잘 어울렸고 배려했다. 처음엔 엄마뻘 되는 분들에게 '언니'라고 부르는 게 적응이 되지 않았다.
사실 친정 엄마보다 나이가 많으신 분들도 종종 있었다, 그런데 생각 자체가 워낙 젊으시고 자신과 다른 생각에 대해서도 수용적이었고 개방적이라 '언니'라고 쉽게 부를 수 있게 되었다. 그분들과 이야기를 하다 보면 따뜻한 인품과 푸근함이 느껴져서 만남 자체가 너무 즐거웠다. 사람들과의 새로운 관계를 만들려고 노력하지 않았었고 경계했으며 지쳐 있었다. 무채색이었던 일상의 소소한 일들이 다채로운 색깔로 물들어가는 게 놀라웠다.
그날도 아이들을 학교와 어린이집으로 다 보낸 다음, 어김없이 수영장으로 향했다.
수영장으로 내려가는 길에 반가운 얼굴 강희를 만났다.
강희: "언니! 오랜만이야!"
나무: "응! 어떻게 지냈어? 왜 이렇게 얼굴 보기 힘든 거야?"
강희: "우리 가게 아르바이트생 한 명이 그만두는 바람에 내가 대신하잖아.
그래서 수영을 올 수가 없었어."
나무: "그랬구나. 역시 사장님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구나. 바쁘게 지냈겠다."
강희: "언니! 근데 세경언니랑 지현이 언니 우리 반으로 왔더라?"
나무: "어. 우리 '반에서 잘하는 사람 4명 올라갔거든."
강희: "그렇구나."
탈의실에 도착하자 우린 서로에게 인사하고 운동할 준비를 했다. 수영장으로 들어갔더니 우리 반은 열 명 남짓 얼마 안 되는 인원이 있었다. 마음 맞는 언니들끼리 같이 여행을 간다고 이야기하더니 그 날이 오늘이었던 것이었다. 아직 애들이 어린 엄마들은 같이 못 가서 아쉽다며 부러움을 샀었다.
선생님: "오늘은 많이 안 나오셨네요. 다들 많이 바쁘신가 봐요? 오신 분들이라도 열심히 운동해 봅시다. 자! 오리발 끼세요."
오리발을 끼고 수영하는 날은 다른 날보다 운동량이 훨씬 많았다. 게다가 사람들도 적어서 회전율이 빨라 순서도 금방 다가왔다.
선생님: "오늘 '운동 좀 했다'라는 느낌이 좀 드실 거예요."
사람들: "너무 힘들어요. 진짜 오늘 너무 많이 돌렸어!"
선생님: "수고 많이 하셨어요. 오늘 많이 돌렸다고 내일 안 나오시는 거 아니죠?"
사람들: "하하하하"
선생님: "너무 수고하셨고요, 오늘 남은 하루도 잘 보내시고요. 하나. 둘. 셋."
사람들: "(동그랗게 모여 손을 모으고) 빠샤!!!"
사람들은 지친 몸으로 터벅터벅 샤워실로 향했다.
지현: "나무야!"
나무: "어... 언니...."
지현: "너한테 할 말이 있는데...."
많이 가까워졌다고 생각했던 지현에게 이런 소리를 듣게 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세상에...
이런 생각을 했던 사람이라니....
놀.랍.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