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3-733-7788’ 이는 뒷번호가 ‘칙칙폭폭’을 연상케 하는 옥천역 전화번호였다. 하지만 이 번호가 2010년께 사라졌다. 이 번호는 꽤 유용한 번호였다. 기차 시간을 모르는 어르신들이 ‘칙칙폭폭’을 연상해 단박에 전화를 하면 친절하게 응대하며 역무원과 주민 사이의 관계가 도타워지는 소중한 끈이었다. 광의로 보자면 일상 속에 체화된 사회복지시스템이라 볼 수 있었다.
그런데 이제 그 전화번호는 먹통이 되어 버렸고 지역번호가 실종된 ‘1544-7788’로 모두 바뀌어 버렸다. 전화를 하면 이제 옥천역에서 일하는 사람의 목소리가 아닌 녹음이 된 자동응답전화(ARS)가 이를 대신한다. 즉시 대답을 듣기보다 번호를 몇차례나 눌러야만 찾을 수 있는 ‘퍼즐’처럼 난해하다. 어르신들에게는 마치 ‘영어듣기평가’ 수준 같을 것이다. 몇차례 누르다가 우물정자, 별표를 한참 찾다가 이내 포기하고 만다. 인터넷 연결조차 안 된 독거노인이 숱하게 많으며 스마트폰 없는 노인도 많다. 가장 편리하고 유용했던 전화를 ‘사회적 고려’ 없이 끊어낸 것이다. 효율과 경쟁이 아직도 미덕인 이 시대에 이런 전환은 가속화됐다. 비단 옥천역뿐만 아니라 건강보험공단, 한국전력, 케이티(KT), 국민연금공단 등 건강보험료, 전기요금, 전화요금, 연금과 관련해 문의를 할 수 있는 일상적 관계의 번호를 사실상 수탈당했다.
자동응답전화를 하고 씨름을 하느니 차라리 직접 찾아가 얼굴 맞대고 이야기하는 것이 낫다고 판단한 어르신들은 장날 부러 버스를 타고 나오신다. 수많은 공공기관 자동응답전화의 전환은 보이지 않는 관계의 복지를 앗아가 버렸다.
우리가 체감하지 못한 변화는 이뿐만이 아니다. 2012년부터 시행된 도로명 주소제는 사실 공간을 앗아가 버렸다. 2010년부터 2년 동안 병행해 사용하다가 2012년부터 본격 사용된 새주소 사용으로 어떤 편의가 생겼는지는 모르겠지만, 사람의 기억 속에 마을이란 공간을 하나둘씩 삭제해 가고 있다. 이제 주소를 도로명으로 기억하는 주민들은 자연마을 이름을 잊어버리고 있다. ‘주소가 어디예요?’ ‘어디 살아요?’라고 물으면 새주소로 말씀하시는 분들이 많다. 이는 정책의 성공이라 할 수도 있지만, 마을이라는 공동의 역사적 정체성이 있던 공간을 지워버리고 인위적으로 만든 길로 대충 통합해버린 셈이 됐다.
용운마을과 석화마을 대신 세산4길이란 이름이 붙었다. ‘어디 사셔요?’라고 묻고 대답하는 그 대화에서 많은 이야기의 실마리가 풀렸건만 서로의 안부를 묻는 중요한 화두를 지워버린 셈이 됐다. 중앙로, 문장로, 금장로 등 몇개 마을 이름 앞글자를 따서 만든 조악한 길 이름이 우리 일상을 이미 점유하고 있다. 우리 고유의 자연적 지명으로 불렸던 마을 이름이 일제강점기에 조악한 동서남북 방위형 한자와 숫자로 얼버무려 왜곡된 이후, 이제 서양식 도로형 주소로 바뀌면서 우리 고유의 이름은 흐릿하게 흔적이 지워지고 있다.
농촌 지자체별로 이제 별반 새로울 것도 없이 당위적으로 실행하는 산업단지 정책과 대규모 관광개발 정책도 공간의 파괴에 일조한다. ‘인구 늘리기’라는 명분 아래, 유동인구의 증가로 지역 소득을 올린다는 미명 아래 역사적 삶의 공간을 아무렇지 않게 파괴하는 사건들이 무감하게 진행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제주도의 제2공항 반대 행동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 모든 것을 관통하는 것은 권력과 자본의 ‘체계’가 ‘관계’를 끊임없이 식민지화하고 수탈한다는 데 있다. 지역은 점차 권력과 자본의 정점에 운집한 집단들을 위해 대상화·상품화되고 있다. 인간성을 철저하게 거세하는 방향으로, 권력과 자본에 복종하도록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이제 사는 곳도 경쟁을 해야 하고 농촌체험마을이든 관광지든 경쟁을 해야 살아남는 곳이 되어버렸다. 이것은 시대적 변화로 당연하게 받아들여야 하는 것인가, 아니면 저항하고 투쟁해야 하는 것인가? 묻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