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재정권은 단단한 풀뿌리 공동체가 위협이 되리라는 것을 직감하고 해방 이후 반짝했던 읍면자치제를 아예 없애버렸다. 1995년 지방자치가 부활할 때 한 단계 더 높은 ‘시군자치’로 만든 이유도 다 이런 것들이 바닥에 깔려 있는 게 아닌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자주 얼굴을 볼 수 있는 물리적 거리, 정서적 관계에서 민주주의가 실현될 것이리라 확신한다. 자주 얼굴을 보지 못하고 이야기 한번 건네지 못하는 곳에서 아이러니하게도 미디어의 힘은 강해지며 이미지 정치와 소수 엘리트들의 과두정이 반복될 것이다. 사실 누군가 그랬듯이 선거는 과두정을 민주주의로 포장하는 ‘당의정’ 같은 것이다. 필부필부, 갑을병정의 정치가 되려면 진짜 생활세계에서의 정치, 자치가 이뤄져야 한다. 하지만 이제까지 해온 정부의 꼬락서니를 보면 이런 것을 전혀 체감하지 못하고 있다. 아니 알면서 방해하는지도 모른다. 정부는 ‘시군자치’와 ‘단위마을’, ‘권역단위’ 사업과 정책을 표방하면서 읍면을 분열시키고 해체해왔다. 현재 시군자치에서는 생활세계의 읍면은 정말 하부조직이다. 읍 중심의 군행정은 농촌의 가장 기본단위인 면을 고사시키고 있다. 또한 단위마을 중심의 사업, 권역별 막대한 예산이 투자되는 농촌마을종합개발사업 같은 경우도 면 안에 마을을 하나둘로 쪼개서 분열과 갈등이 있게 만든다. 면에 사는 사람들은 본인들을 ‘옥천 사람’이라고 하지 않고 ‘이원 사람’, ‘청산 사람’, ‘안남 사람’이라고 부른다. 면세가 강할수록, 지역 정서와 자존감이 높을수록 그렇게 부르는 사람이 많다.
그래서 지역자치를 제대로 혁신하려면 한 단계 낮은 읍면자치를 허하라. 읍면장을 직접 직선제로 뽑고, 평범한 사람들이 읍면의회를 구성할 수 있도록 주민참여예산제를 대폭 확대하여 읍면에 주민들이 직접 논의하여 쓸 수 있는 공적기금을 만들어줘야 한다. 그러면서 자치의 구심을 조금씩 아래로 옮기고 교육, 문화, 경제, 정치 등 모든 분야를 스스로 관장하고 책임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지난주 말미에 끝난 동이면 이장학교 마지막 강사로 등판한 제주대 신용인 교수도 이와 같은 취지의 말을 했다. 적극 공감한다. 이제는 ‘국가처럼 보기’에서 벗어나 얼굴을 자주 볼 수 있는 작은 공간(객관적 면적은 결코 작지 않다)에서 평범한 보통사람들의 ‘작은 것들의 정치’가 발현되었으면 한다. 식민정치가 종식되고 ‘지배받지 않는 사람들’이 많아질 때 세상은 평화로워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