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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제 Nov 02. 2021

나도 비서가 있었으면 좋겠다

지난 주말, 제이는 기분이 좋지 않았다. 이틀 내내 웹툰과 소설과 예능과 웹서핑 등등에 빠져 마감을 지키지 못한 것이다. 앞서 제이는 2022년 3월 13일이라는 초고 마감일을 땅땅 못박아놓고 그에 맞춰 철저한 주간 마감 계획을 세워둔 바 있었다. 4주 정도는 엉망진창으로나마 대충 계획을 지켰는데, 이번에는 아예 한 주를 통으로 날려버렸다.


이대로 무너지는 건가? 어린 시절, 숙제 미루고 실컷 놀다가 온가족 다 잠든 일요일 밤 11시를 맞았을 때의 괴로움을 이 나이 먹고도 그대로 느끼고 있는 제이였다. 웹툰과 소설과 예능을 재밌게 보면서도 마음 한구석은 시궁창 밑바닥으로 가라앉고 있었다. 시궁창 속은 케케묵은 의문들로 뒤죽박죽이었다.


‘마감만 아니면 이런 주말도 평범하고 즐거운 일상일 텐데, 내 스스로 나를 불행하게 만들고 있는 건 아닐까?’

‘내가 정말 창작을 포기하고 수용자로서만 평생 살 수 있을까?’

‘창작을 포기할 필요 없이 그냥 장편만 포기하면 되는 거 아닐까?’

‘포기할 땐 포기하더라도 2022년 3월 13일까지는 버텨봐야 하지 않을까?’

‘난 대체 왜 이렇게 생겨먹었을까?’

‘내 삶의 의미는 뭘까?’

기타등등.


주말을 망친 제이는 잠자리에 누워 이런 생각을 했다. 내게도 비서가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정신줄 놓고 빠져 있는 드라마를 스스로 끈다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하지만 비서가 서재 문을 똑똑 두드리고 들어와 “작가님, 지금 이러실 때가 아니잖아요”라며 제로칼로리 수정과 한 잔을 널찍한 원목 책상에 내려놔 준다면? “할 일 다 끝내고 홀가분하게 보면 더 재밌을걸요?”라는 당연한 진실을 다시 한 번 일깨워준다면?

그러면 ‘아차’ 하고 정신을 차릴 수도 있지 않을까?


물론 제이는 비서를 고용할 돈도 없고, 비서가 문 똑똑 두드리고 들어올 서재도 없으며, AI비서 기술이 충분히 발전할 때까지 기다릴 여유도 없다. 그리하여 고심 끝에 생각해 낸 궁여지책이 있었으니, 주말에 한 시간마다 특정 멘트가 재생되도록 스마트폰 알람을 맞춘 것이다.


10:00 ‘설레는 작업시간, 오전 10시입니다’

11:00 ‘활기찬 작업시간, 오전 11시입니다’

12:00 ‘식사하세요. 소식하면 기분이 좋아집니다’ < 다이어트를 위한 막간 세뇌ㅋㅋㅋㅋㅋ

13:00 ‘신나는 작업시간, 오후 1시입니다’


……아주 하다하다 별짓을 다 한다. 과연 이 알람이 열 번 중에 두어 번이라도 놓친 정신줄을 붙잡을 수 있게 해줄까? 그 효과는 오는 주말에 검증해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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