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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제 Apr 17. 2022

책상 위의 물건들 1_ 핫핑크색 플라스틱 진저브레드맨

매일 발행 14일차


제이가 이 핫핑크색 플라스틱 진저브레드맨을 손에 넣은 것은 대략 17년 전쯤 영풍문고 종로점 소품 진열대에서였다. 오래전 일이라 기억이 잘못되었을지도 모른다. 운명적인 첫만남의 순간은 가물가물해졌지만 그 후로 지금까지 절대 잃어버리면 안 될 필수품으로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 왜 그때 두 개를 사지 않았을까! 땅을 치고 후회해도 이미 늦었다.


비키 킹, 『21일 만에 시나리오 쓰기』, 비즈앤비즈


이 물건의 용도는 책을 펼친 채로 고정해놓는 것이다. 집밖에서 혼밥을 하며 책을 읽을 때 특히 유용하다. 책을 내려놓은 채 양손으로 햄버거를 잡고 먹거나, 한 손은 커피잔을 한 손은 샤프를 쥐고 밑줄을 그을 수도 있다. 유용하면서도 가볍고 단순하다는 점이 특히 마음에 든다. 한손에 착 들어오게 작고, 책갈피처럼 책장 사이에 끼워넣고 다녀도 될 만큼 얇다.


몇 번쯤 잃어버릴 뻔한 위기에 처한 적도 있다. 늘 넣어 다니던 백팩 앞주머니에 저 핫핑크 색깔이 보이지 않으면 가슴이 철렁했다. 그도 그럴 것이, 다시는 저 물건을 파는 곳을 찾지 못했던 것이다. 처음 샀던 대형서점에서도 자취를 감추었고, 포장지를 버린 탓에 상품명조차 알 수가 없었다. 책 고정, 북클립, 책 홀더 등등 생각나는 모든 검색어를 넣어 검색해봤지만 흔한 나무 독서대나 낯선 아이디어 상품 등이 쏟아져 나올 뿐이었다. 사진을 찍어 구글 이미지검색을 해봤더니 결과는 이랬다.


구글 너마저.jpg


그러다가 최근에야 똑같지는 않지만 대충 비스무리한 물건을 찾아내는 데 성공했으니, 그 이름은 바로 '악보홀더'였다. 악보를 펼친 채 양손으로 악기를 연주하려면 역시 필요할 법했다. 제이 스스로 생각해봐도 책 보며 밥 먹는 혼밥러보다는 악기 연주자 쪽이 훨씬 수요자층이 탄탄할 것 같았다.



그래서 그 악보홀더를 바로 주문했느냐? 아직은 아니다. 17년간 정든 진저브레드맨이 아직 책상 위에 있으니, 잃어버리지 않는 한 오래오래 더 쓸 작정이다.




p.s. 혹시나 해서 덧붙이는데 책을 새 책처럼 고이 보관하는 분에게는 권하지 않는다. 책 윗부분이 조금 구겨질 수 있다. 제이는 책을 막 다루는 성격이라 전혀 신경쓰지 않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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