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발행 39일차
『채식주의자』 작가의 말에서 한강 작가는 손이 아파 글을 쓰기 어려웠던 이야기를 한다. 손가락 관절이 아파 타이핑을 못하고 종이에 손으로 쓰다가, 백지 한 장도 채우기 전에 손목이 아파 멈출 정도로 악화되었고, 자포자기 상태로 2년 가까이를 보내다가 볼펜을 거꾸로 잡고 자판을 두드려 글을 쓰는 방법을 고안했다는 것이다. 온갖 잔병을 달고 사는 제이는 그 부분을 읽고 더럭 겁을 집어먹었다. 내가 손이 아파 글을 못 쓸 지경이 된다면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지?
글을 쓰기 위해 최대한 잘 간수해야 할 주요 신체기관 세 곳이 바로 눈과 손과 허리다. 운 좋게도 제이의 눈과 손은 아직 큰 말썽을 부리지 않았지만, 허리는 디스크가 터져 와병생활을 한 적이 있다. 서서 돌아다닐 수 없는 건 그렇다 쳐도 의자에 앉지 못하는 건 정말 환장할 노릇이었다. 결국 누워서도 노트북을 쓸 수 있는 거치대를 사서 누운 채로 글을 썼다. 이렇게 말하면 뭐 대단한 작가 같지만 그냥 쓰잘데기 없는 일기나부랭이였을 뿐이다.
그 일을 계기로 제이는 글을 쓰는 데도 상당한 수준의 건강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럭저럭 호전되어 일상생활에 문제가 없게 되었지만, 나은 뒤에도 절대 책상 위에 다리를 올리거나 책상에 엎어져 자지 않고, 틈날 때마다 걷기운동을 빙자한 거리 배회를 하며 몸을 사린다. 그런 경험이 없었다면 한강 작가의 손목 투병담이 이처럼 절실하게 와닿지 않았을 것이다.
문제는 '눈과 손' 관련해서는 아직 데인 적이 없다는 것이다. 하여간 해로울 짓은 다 한다. 회사에서도 집에서도 종일 하얀 모니터를 쳐다보며 키보드를 치는 것은 물론이요, 자기 전에 불 끄고 보조등만 켠 채 누워서 책 읽고 스마트폰 만지는 버릇, 양손으로 여덟 개 화음을 와장창창 두들기는 피아노 취미까지. 당장 파업에 들어가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혹사시키고 있다.
왕년에는 손 예쁘다는 소리도 가끔 들어본 제이지만, 지금은 손의 모양 같은 것에는 관심이 없다.
예쁘지 않아도 좋다. 제발 튼튼하기만 해다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