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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제 Jun 08. 2022

어린 왕자, 애린 왕자, 에린 왕자, 두린 왕자

매일 발행 66일차

부모님 고향이 충청도지만 내가 일상생활에서 사용해본 사투리는 '뭐여', '기야?' 정도가 전부다. 할 줄 아는 말이 한국어 중에서도 표준어 하나뿐이라니, 너무도 협소한 언어생활을 하는 셈이다. 이번 생에 외국어는 포기했지만 적어도 우리말 사투리 몇 가지는 자연스럽게 쓰고 싶다. 억양까지 유창하게 구사하진 못하더라도, 대사를 글로 썼을 때 어색하지 않을 정도만 돼도 좋으련만.


최근 <우리들의 블루스>를 계기로 제주말에 꽂혀서 이리저리 검색을 해보았다. 제주말을 배우는 팟캐스트(들엄시민 골암시민)도 들어보고, 제주도민이 운영하는 유튜브(뭐랭하맨)도 몇 편 보고, 제주도 출신이라는 아이돌 부승관 영상까지 찾아봤다. 한라일보의 '제주어로 읽는 어린 왕자(두린 왕자)'는 정말 보물 같은 자료였다. 2006년 번역인데 책으로 출판되지 않아 아쉽다. 나오면 바로 살 텐데.



내친 김에 경상도, 전라도 버전 어린 왕자도 샀다. 독일 '틴텐파스'라는 출판사가 세계 여러 언어를 보존·발굴하는 작업을 하는데, 이와 연계해 도서출판 이팝 최현애 대표가 '애린 왕자(경상도)', '에린 왕자(전라도)'를 출간했다. 틴텐파스 어린 왕자 시리즈 중에는 고대 이집트 문자, 중세 앵글로색슨족 언어, 모스부호 버전도 있단다. 완전 신기하다.


어린 왕자 틴텐파스 에디션 목록 일부




어린 왕자 4장 일부분을 4개 버전으로 비교해 적어본다. 각각의 말이 다 매력적이고, 타이핑만 해봐도 기분이 좋다.


내가 소행성 B612에 관해 이런 세세한 이야기를 늘어놓고 그 번호까지 밝히는 것은 모두 어른들 때문이다. 어른들은 숫자를 좋아한다. 여러분들이 새로운 친구를 사귀었다고 어른들에게 말하면, 어른들은 도무지 가장 중요한 것은 물어보지 않는다. <그 애의 목소리는 어떠니? 그 애는 무슨 놀이를 좋아하니? 그 애도 나비를 채집하니?> 절대로 이렇게 묻는 법이 없다. <그 앤 나이가 몇이지? 형제들은 몇이나 되고? 몸무게는 얼마지? 그 애 아버지는 얼마나 버니?> 항상 이렇게 묻는다. 이렇게 묻고 나서야 어른들은 그 친구를 속속들이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어린 왕자], 황현산 옮김, 열린책들


내가 소행성 B612 이바구를 이마이 구구절절 하믄서 번호까지 밝히는 기는 다 으른들 때문이다. 으른들은 숫자 좋아하자나. 여러분은 새 친구 사깄다꼬 으른들자테 말하모, 으른들이 언제 중요한 거 물어보드나. "그 아 목소리는 어떤노? 그 아는 먼 놀이 좋아하노? 그 아도 나비 채집하드나?" 절대로 이래 안 물어보제. 그 아는 나이가 몇이고? 형제는 몇이고? 몸무게는 얼마고? 그 아 아부지는 얼매나 버노? 맨날 이래 안 묻더나. 이래 묻고 나야 으른들은 마 친구를 잘 안다 생각카제.
- [애린 왕자], 최현애 옮김, 이팝


내가 자네들헌티 B612 소행성을 너무 구잡시럽게 설명허고 숫:자까지 말:을 해 준 것은 다 어:른들 때문이여. 어:른들은 숫:자를 좋아혀. 자네들이 어:른들헌티 새 친구랑 새귀었다고 말:을 허믄 그 냥:반들은 중요헌 건 절:대 안 물어볼 거여. 어:른들은 있잖냐, 이런 건 절:대 안 물어봐. "가: 목소리는 어떠냐? 멀: 허고 노는 걸 좋아헌댜? 나:부 모은 걸 좋:아허냐?" 대신에 이런 걸 물:어볼 거여잉. "갸: 멫 살 먹었냐? 갸: 성제가 멫이나 된댜? 무게는 얼:마나 나간디야? 갸: 아부지는 얼:마나 버신다 그려?" 어:른들은 그러믄 인자는 갸:를 좀 알:았다고 생각헐 것이여.
- [에린 왕자], 심재홍 옮김, 이팝


나가 소혹성 B612호에 관허여그네 콜콜허게 고르고, 또 그 번호를 고라주는 이유는 작산 어른덜 따문이다. 어른덜은 숫자를 좋아허주게. 만일 요라분이 새로 사귄 벗에 관허영 어른덜신디 곧더라도, 그 사름덜은 젤로 귀헌 건 물어보지 안 헌다. 그 사름덜은 요라분들한티 '가이 목소리 어떵허냐? 가이가 좋아하는 놀이는 뭐시니? 가이는 나비수집은 헴시냐?' 이추룩 물어보는 경우는 엇다. 그 대신 작산 어른덜은 '가이는 멫살이고? 성제는 멫명이고? 몸무게는 어떵 됨시니? 가이네 아방은 수입이 얼마나 됨시니?' 이추룩 물어본다. 경허여사 작산 어른덜은 그런 걸 알아사 그 벗이 어떵헌 사름인지 알 수 있댄 믿어분다.
- 제주어로 읽는 '어린 왕자(두린 왕자)'(4), 오상현 등 7명 공동기획번역, 한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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