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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제 Aug 16. 2022

글쓰기의 모든 난관을 만나는 사람

나는 초고로 돌아갈 때마다 늘 극심한 공포감에 휩싸인다. 원고가 대부분 좋아 보여도 할 일이 너무 많으면 기가 죽어 어쩔 줄 몰라 한다. ...이런 마음의 동요가 모두 거쳐야 하는 과정의 일부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캐시 랜첸브링크, [내가 글이 된다면], 198쪽


백지 상태에서 초고를 쓰는 것보다, 써놓은 글을 고치는 게 훨씬 쉬울 거라고 생각해 왔다. 창작에 비해 퇴고는 단순노동에 가까우며, 컬러링북 색칠이나 퍼즐 맞추기처럼 음악 들으면서 무념무상으로 집중할 수 있는 일이라고. 초고를 읽다보면 고칠 방법이 자연스럽게 떠오를 거라고.


얼마나 큰 착각이었던가!


고쳐야 하는 글 한 뭉치를 쌓아놓고 또 한 달 동안 땅굴을 팠다. 도저히 손을 볼 엄두가 나질 않았다. 살릴 부분이 거의 없거나, 있더라도 어마어마한 시간을 들여 무지무지 힘들게 고쳐야 하거나, 어찌어찌 고치더라도 여전히 엉망진창일 것 같았다. 그러는 동안 나는 또다시 '골방에 처박혀 혼자 끄적거리는' 사람으로 돌아가 있었다.


지금 당장 해야 할 일은 글을 쓰는 게 아니라 쓴 글을 고치는 일이니까, 브런치에서 잠수를 타는 것쯤은 괜찮지 않을까 생각도 해봤다. 하지만 잠수해 있는 동안 원고수정이라는 당면과제를 제대로 해낸 것도 아니었고, 자신감은 점점 떨어져만 갔다.


슬럼프를 모르는 사람, 책상 앞에 앉기만 하면 글쓰기에 푹 빠져드는 사람, 글쓰기가 너무 재밌고 쓸 얘기가 넘쳐나서 신나게 써내는 사람, 글을 쓰는 데 망설임도 두려움도 없는 사람이 세상에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쓰는 사람이 겪는 모든 난관을 하나도 빠짐없이 맞닥뜨리는 듯하다. 보통 사람은 자갈밭 위를 아무렇지 않게 성큼성큼 걸을 수 있지만, 키가 5밀리미터인 사람은 자갈들을 일일이 타넘어야 하지 않는가? 아아, 나는 왜 더 크고 강하고 용감하고 결단력 있는 사람이 아닐까?


채팅으로 심리상담을 받을 수 있는 앱이 있다고 하여 상담이란 걸 받아봤다. 짧은 시간이라 많은 얘기를 하지는 못했지만 내가 나에 대해서 생각보다 잘 모른다는 걸 알았다. 특히 내 감정에 대해서. 내가 지금 어떤 기분인지, 그때는 어떤 기분이었는지 별로 신경쓰지 않고 살아왔던 것 같다. 감정보다는 눈앞의 '할 일'들만 중요하다고 여겼다. 통제적인 부모가 아이의 마음에 신경쓰지 않고 무조건 공부를 시키는 것처럼 말이다. 상담선생님은 감정일기 쓰기를 추천해주셨는데 좀 식상한 해법 같기는 했지만 나한테는 필요한 일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하루의 글쓰기를 시작할 때마다 '기분은 좀 어때?'라는 질문을 던져보기로 했다.


그리고 앞으로는 '되도록' 매일, 원고지 2매 안팎의 짧은 글을 올려보려고 한다. 너무 오랜 잠수는 나를 더더욱 가라앉게 만드는 것 같으니, 규칙적으로 물밖에 고개를 내밀 필요는 있을 것 같다. 매일 발행 100일 때보다는 좀 더 부담없고 융통성 있게 바깥세상과의 연결고리만 유지해볼 생각이다.


이것조차도 힘들다면? 그건 그때 가서 다시 생각해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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