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국제영화제 1
완벽하게 계획해둔 1박2일 부국제 여행 첫날, 기어코 출근을 하게 되었다. 애초부터 못 갈 확률이 높은 여행이라고, 못 가게 되면 어쩔 수 없다고 쿨하게 준비했지만 진짜로 이렇게 될 줄은 몰랐다. 내가 없으면 안 되는 중요한 일을 맡은 건 아니었다. 꼭 필요하진 않지만 없으면 가끔 아쉬운, 서랍 속 청테이프 정도의 역할이었달까?
어마어마하게 우울한 기분으로, 어렵게 예매한 영화표와 숙소 예약을 취소했다. 원하는 게 없었다면 잃을 일도 없었을 텐데, 실컷 기대해놓고 실망하게 되니 타격이 엄청났다. 당일치기로라도 가긴 갈 작정이었지만 부산까지 가서 허겁지겁 영화 두 편만 보고 돌아온다라...? 역시 김이 빠졌다. 기대했던 영화 세 편은? 내 생애 첫 호캉스는? 해변 아침산책은?
그리하여 멋진 영화를 보고 영화제 분위기와 해운대 바다를 즐겨야 했던 그 시각, 나는 부슬부슬 비 내리는 서울의 한 행사장에서 우비를 입고 하릴없이 앉아 있게 되었다.
중학생 시절, 나는 차에 치이고도 벌떡 일어나 겨울방학 보충수업을 갈 정도로 융통성 없는 범생이였다(다친 데가 전혀 없어서 가능했지만). 그런 내가 딱 한 번 대단한 용기를 낸 적이 있었는데, 유성우를 보고 싶다며 선생님께 야간자습을 빼달라고 말한 것이다. 어디가 아픈 것도 아니고, 집에 일이 있는 것도 아니고, 별을 봐야 해서 야자를 빠진다고? 얜 뭐지? 황당해하던 선생님의 표정이 생각난다. 잠깐의 정적 끝에 ‘그... 그래...... 이번만’ 식으로 허락을 받았다.
나중에야 알게 되었지만 유성우는 ‘평생에 한 번’ 수준으로 희귀한 현상도 아니었고, 유성우가 오더라도 별똥별이 비처럼 우수수 쏟아지는 장면이 맨눈으로 보이는 것도 아니었다. 그때 유성우가 보였는지 안 보였는지, 봤다면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못 봤다면 기분이 어땠는지, 그런 건 생각조차 나지 않는다. 기억에 남은 건 별똥별을 보겠다고 야자를 빼달라던 그때의 나다. 나도 꽤 낭만적인 데가 있었구나, 소심한 애가 웬일로 큰 용기를 다 냈었네, 하고 말이다.
그때처럼 용감하게 “여행을 가야 하니 그날은 빼주세요”라고 말했다면 어땠을까? 물론 자습과 일은 다르다. 20여 년이 흘러 한층 더 소심한 사회인이 된 나는 도저히 그 말이 입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죽으란 법은 없는지, 아침부터 내린 비 덕에 그날의 행사지원 일이 조금 일찍 끝날 가능성이 생겼다. 이제나 끝날까 저제나 끝날까, 오후 내내 조바심치며 퇴근의 그 순간만을 기다렸다. 그리고 마침내 일이 끝나자마자 뒤도 돌아보지 않고 일터를 뛰쳐나가 지하철을 타고, 기차를 타고, 버스를 타고 서울에서 부산까지 해운대 바다를 향해 직진했다. 탈출이 아닌, ‘탈주’라는 느낌이었다. 속박에서 벗어나는 것만이 아니라, 벗어나서 어딘가로 거침없이 달려가는 느낌.
퇴근 4시간 반 만에 나는 밤바다에 발을 담그고 있었다. 눈앞의 새까만 바다와 하늘은 경계선이 보이지 않았고, 등뒤의 백사장은 환한 조명을 받아 새하얬다. 파도가 울렁울렁 어두운 초록빛으로 다가와 발밑에서 부서지고, 발밑의 모래가 파도를 따라 쓸려갔다. 파도 소리에 아이들의 꺄르륵거리는 소리, 야외상영하는 영화 음향이 섞여들었다.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지만 상관없었다. 중요한 건 날씨가 아니라, 내가 지금 여기에 있다는 사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