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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제 Jan 29. 2018

작업실 라이프

작업실이란 성공한 작가들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했다. 2017년 크리스마스까지만 해도.


그런데 무슨 바람이 불었을까. 연휴가 끝나고 출근한 26일, 겨우 숨을 돌린 점심시간에 나는 어느새 ‘공동작업실’, ‘공동사무실’, ‘코워킹스페이스’ 등등을 검색하고 있었다. 그중 한 곳을 메모해 두었다가 퇴근길에 전화를 했고, 찾아갔고, 그날 바로 계약까지 해버렸다. 내 평생의 모든 충동구매 가운데 가장 사치스러운 것이었다.


내 방에서도 글을 쓸 수는 있었다. 방 면적의 1/6쯤을 차지하는 책상 위에서 브런치 연재글도 쓰고, 독립잡지도 만들었다. 그러나 편한 만큼 늘어지는 건 사실이었다. 드라마에 빠져 몇 달간 허우적거리다 한순간에 삭제해버리기도 했고, 연휴 내내 글만 쓰겠다며 며칠치 식량을 쟁여놓고 틀어박혀서는 낮잠으로 하루를 보낸 적도 많았다. 분위기를 바꿔볼까 싶어 카페에 가면 자리가 없기 일쑤였고, 운 좋게 앉더라도 오래 있기는 눈치가 보였다.


‘자기만의 방’으로는 충분치 않은 걸까? 모름지기 작가라면 카페 한가운데나 출퇴근 버스, 공원 벤치에서도 글쓰기에 몰입할 수 있어야 하지 않나? 하물며 원룸에 혼자 사는 작가지망생이 언감생심 작업실을 꿈꾸다니, 아무리 봐도 의지 부족, 열정 부족 아닌가!


그랬다. 의지도 열정도 부족한 게 맞았다. 하지만 그게 죄는 아니잖아? 내 체력이 연약하듯 정신력도 연약하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물리적인 환경에 적당히 의존해보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그렇게까지 거창한 작업실은 아니다. 주택가 빌라의 지하 공간에 나무책상 20여 개가 놓여 있을 뿐이다. 가격도 10만원대 극초반으로, 독서실의 다른 버전이라고 보면 되겠다. 분위기 또한 독서실처럼 적막하지만 키보드 정도는 두드릴 수 있다.


그런데 막상 작업실을 구하고 보니, 기대 이상의 신세계였다. ‘글을 쓰기 위한 공간’을 따로 얻었다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설렜다. 구질구질한 자취생의 일상에서도, 먹고살려고 일하는 일터에서도, 춥고 불안정한 거리에서도 벗어나 오직 글 쓰는 사람으로서 존재할 수 있는 아지트가 생긴 것이다. 삶의 질뿐만이 아니라 삶의 형태나 태도 자체가 달라진 느낌이다.


지난 한 달, 특별한 일이 없으면 매일 작업실에 왔다. 평일에는 퇴근한 뒤 세 시간쯤, 주말에는 대여섯 시간쯤을 이곳에서 보낸다.


최근의 주말 일상은 대체로 이렇다.


주말이니까 자명종을 맞추지 않고 9시 전후로 느지막이 일어난다. 시리얼에 두유를 부어 아침을 먹은 뒤, 주말의 여유를 즐기며 글도 쓰고 빨래도 돌린다.


점심 무렵이 되면 팟캐스트를 들으며 점심을 차려 먹는다. 요즘에는 <이종범의 웹툰스쿨>을 즐겨 듣고 있다. 밥을 다 먹으면 씻고 외출할 채비를 한다. 특별히 사람 만날 일이 없으니 쌩얼로 옷만 단단히 껴입고 나간다.


1~2시, 햇살 좋은 시간에 30분쯤 걸어서 작업실로 간다. 기분이 내키면 가방만 내려놓고 가까운 안양천을 좀 더 산책하거나, 서점에 들러 책 구경을 하기도 한다. 가끔은 영화도 본다.


작업실로 돌아와 글을 쓰기 시작한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장편소설 초고를 완성하는 게 목표다. 쓰다가 때때로 <씨네21>이나 다른 책들을 읽기도 한다. 그날의 작업이 일단락되면 7~8시쯤 퇴근.


작업실을 나오면 옛날통닭♥이나 야채곱창♥을 사 들고 집에 가서 저녁을 먹는다. 밤에는 느긋하게 낮에 쓴 글을 고치거나, 팟캐스트를 더 듣거나 한다. 11시쯤 되면 불 끄고 누워서 스탠드만 켜고 책을 읽다가 잔다.


언젠가 전업작가가 된다면 매일매일 이렇게 살고 싶다.



p.s. 사진은 아무도 없을 때 불 끄고 찍어봄.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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