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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제 Jun 01. 2018

퍼블리셔스 테이블 참가 후기

feat. 우연한 첫문장 공개

북마켓 때는 잡지 제목에 맞게 '쓰는 사람'을 위한 소소한 이벤트를 준비하곤 한다. '돈 대신 글을 모으는 저금통'이라든가, '쓰는 사람을 위한 문장완성검사' 무료배포라든가.


이번에는 어떤 이벤트를 할지 고민하다가 속절없이 시간이 흘러버렸다. 26~27일 행사니까 늦어도 5월 22일 석가탄신일에는 준비를 시작해야 했는데 비가 온다는 핑계로 집에서 뒹굴대며 하루를 날려버린 것. 그나마 '책표지 명함'과 '우연한 첫문장'이라는 아이디어라도 떠올린 게 천만다행이었음.




발등에 불이 떨어진 24일 밤, 가열찬 칼질을 시작했다. 두꺼운 종이에 책 표지를 인쇄해 자르고 뒷면에 이름과 이메일주소 등을 손으로 썼다. 단면 컬러인쇄도 비쌌는데 양면인쇄까지 하면 더 비쌀 것 같았다. 역시 돈 없으면 몸이 고생한다(결과적으로 턱없이 모자라서 둘째 날엔 꺼내놓지도 못했다).




'우연한 첫문장'은 첫 문장만 적혀 있는 작은 두루마리를 랜덤으로 뽑아 뒷부분을 이어 써보는 이벤트다. 첫 문장이 될 만한 12개의 문장을 써서 B5 미색모조지에 인쇄해 잘랐다. 조금이라도 있어보이라고 빨간 리본으로 고리를 만들어 끼웠다. 이거 자르고 말고 붙이고 끼우느라 손가락 나가는 줄. 다있소 재단기의 도움이 없었다면 절대 못 해냈을 것이다. 이때 난장판 된 책상은 아직도 다 못 치웠다.




여기가 바로 비루한 <계간 쓰는사람> 테이블. 예쁘고 힙한 테이블들 사이에서 글자만 가득한 흑백 본문을 뻔뻔하게 펼쳐놓고 있음. 그래도 이번에는 제법 잘 팔린 편이었다. 수백 종이나 되는 책들 중에서 이 책을 골라주신 분들 매우 몹시 감사합니다. 흑흑.


옆자리 <장롱 속 간호> 테이블 분들과 간호사의 현실에 대한 얘기도 하고 서로 책도 사 읽으며 화기애애하게 보냈다. 부모님과 동생들이 멀리서 찾아와 책을 잔뜩 사갔다. 안면이 있는 제작자, 서점지기 분들도 들러주셨다. 역시 매우 몹시 감사합니다.




'우연한 첫문장' 이벤트가 생각보다 반응이 좋았다. 궁금해하면서 바로 풀어보는 분도 있고, 설레어하면서 집에 가서 보겠다고 하는 분도 있었다. 펴보자마자 깜짝 놀라던 분이 기억에 남는다. 옆 친구가 '운명인가?' 하는 걸 보니 뭔가 개인적인 상황에 맞는 문장이었나보다. 뭘 뽑으셨는지 궁금했지만 보진 못했다.


첫날 80여 개쯤 만들어 갔는데 3시반쯤 다 나가버려서 이튿날은 160개를 만들었다. 마켓 와서도 열심히 말고 끼우고 말고 끼우고-_- 그런데 이날도 역시 모자랐다는 게 함정. 한 5시쯤 다 떨어져서 아쉬웠다.




셀러로 참여하지 않았다면 하루종일 구경만 하고 싶었을 정도로 볼 게 많았다. 240개 테이블도 찬찬히 둘러보고 세미나도 듣고 싶었는데 내 테이블 지키느라 구경을 거의 못했다. 끝나기 직전에 빛의 속도로 돌아다니며 겨우 책 몇 권을 샀다.



(왼쪽) 2018년 5월 27일 문화역 / (오른쪽) 2017년 5월 27일 문화역


최근에 알았는데, 정확히 1년 전인 2017년 5월 27일에도 나는 이곳, '문화역 서울 284'에 왔었다. 슬럼프로 방황하며 무작정 버스 종점 여행을 떠났다가 그 말 많던 서울로 슈즈트리를 보러 갔던 것(당시 일기 링크). 그로부터 딱 1년 후에 북마켓 셀러로 다시 오게 될 줄이야! 2019년 5월 27일은 어떻게 보내게 될지 궁금해지네.




― 우연한 첫문장 공개 

두 아이가 이글루를 만들고 있다.

아직도 너는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저 곧 여기 그만둘 거예요.

정신을 차려보니 비행기 안이었다.

저녁 일곱 시에 외계인을 만나기로 했다.

하늘에서 종이 한 장이 팔랑팔랑 떨어져 내려오고 있다.

놀라지 마세요.

이런 곳에 동굴이 있었다니.

다시는 만날 일이 없을 줄 알았다.

가장 좋아하는 옷을 입었다.

너무 파랗지 않니?

꽃을 사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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