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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지현 Jan 02. 2020

서른다섯의 어른이 들어가기에는 조금 미안한

뭐야! 이게  떴어? 타이어 갈았는데, 펑크 났나?”

노란 햇살과 함께하는 드라이브, 일요일의 평화로운 나들이는 자동차 계기판에 뜬 빨간 에러 메시지와 함께 뎅강 조각났다.

우리는 타이어가게로 향했다.


타이어 가게의 첫인상은 거칠고, 건조했다. 작은 그늘 하나 없는 공터에 쏟아지는 초가을 햇볕은 눈을 뜨기 어렵게 만들었다. 회색빛 모래자갈이 가득 깔린 공터는 자동차들이 계속 진입하는 바람에 주차장과 다를 바 없었다. 주차장에서 아이가 장난치거나 뛰어다니는 것에 잔소리를 많이 하는 편이어서, 공간 자체가 주는 스트레스가 심했다. 아마도 유은이와 함께 오지 않았다면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유은이와 함께하면 승용차가 커다란 덤프트럭처럼 느껴지고, 엔진소리가 기차 경적처럼 들리곤 하니까.

다행히 작은 휴게실이 있어서, 작은 사람과 걱정 많은 사람은 쫓기듯 그곳으로 들어갔다. 휴게실은 네모난 검정 소파 네 개, 컴퓨터 두 대, TV와 정수기가 놓여있었다. 앉은 지 꽤 된 것으로 보이는 소파엔 하얗게 먼지가 앉아있었고, 이따금 아저씨들이 들어와 커피를 타서는 휴게실 앞에서 담배를 피웠다. 아무래도 안 되겠다싶어, 유은이를 데리고 타이어가게를 나왔다.


“산책하는 거야?” 라며 좋아하는 유은이는 발걸음도 총총. 나도 총총. 가게를 나와 거리를 조금 걷자, 작은 하천이 나왔다. 물이 깨끗해 보이진 않았지만, 버들, 강아지풀이 보송보송 자라 있고, 오리도 다섯 마리나 있었다.


“유은아, 오리가 몇 마리야?”

“하나, 두울, 세에, 여더얼, 여서엇.”

“아니, 셋 다음은 넷이지.”

“아빠 오리, 엄마 오리, 애기 오리!”


무엇이든 가족 단위로 만들곤 하는 유은이는 오리도 숫자로 세기 보다는 가족 단위로 센다. 제일 큰 오리는 아빠 오리, 그 옆에는 엄마 오리, 작은 오리는 아기 오리. 수풀 속에서 부모로 보이는 오리들이 작은 오리들을 데리고 나오는 것을 바라보며, 우린 함께 서로 다른 생각에 잠긴다. 오리들은 하천 속에 먹을 것이 있는지, 연신 잠수하며 무언가를 낚고 있었다. 유은이에게 오리의 생태에 대한 얘기를 해주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유은이는 오리 가족 서열을 만들어주는 데 여념이 없다.

오리에게 안녕을 고하고 우리는 산책을 이어갔다. 어느새 우리는 탐험대가 되어, 무언가 재미난 거리를 찾아 나섰다. 하천 옆으로 주택들이 이어져 있는 동네로, 골목길에는 소박하게 텃밭들이 가꿔져 있었다. 길옆에 무심히 피어있는 작은 나팔꽃들이 여름의 막바지를 알려주고 있었다.


생명, 무생명 통틀어 무엇이든 그냥 지나치는 법 없는 유은 대장님. 나팔꽃에도 관심을 보이더니, 즉시 명령을 내린다.

“이고, 나팔꼬? 나 줘, 뿌우뿌우~ 불어볼래.”

아주 작은 꽃으로 한 송이를 따주었다. 꽃이 마음에 들었는지, 대장님은 환한 웃음과 함께 나팔꽃을 입으로 가져갔다.

“뿌우뿌우~” 하며 나팔 부는 흉내를 낸다. 그리고 좀 더 작은 꽃송이를 꺾어달라고 했다. 그 꽃도 따서 주었다.


“아기야. 얘는 언니고.”

“하하하. 작은 꽃이 아기야?”

“엄마, 이거 책상에다 노으까? 장식하자.”

“응, 그러자. 꽃이 예뻐?”

“응! 너어어어무 기여워!!”

작고 귀여운 아이가 작은 나팔꽃을 보고 아기라며 귀엽다고 한다. 한껏 몸을 움츠리며 귀여워 죽겠다는 듯 짓는 표정이라니. 이런 건 언제 배웠을까. 귀여움과 귀여움의 만남에 귀여움들은 덩어리가 되어 가슴팍에 파고든다. 안아줘, 안아줘.

유은이는 양손에 작은 꽃을 하나씩 들고 가을 햇볕보다 더 환한 웃음으로 길가를 뛰어갔다. 이제 우리는 꽥꽥 오리 세상에서 작고 귀여운 꽃의 세계로 들어왔다. 타이어 가게의 먼지와 기계 소음이 같은 세상에 존재하긴 하는 것인지 까맣게 잊어버린 채.


유은이와 함께하는 나날은 현실과 만화적 환상이 함께 공존하는 세계이다.  그저 아이의 손이 이끄는 대로, 초대에 응하기만 하면 된다. 그곳은 동물이 말을 하고, 꽃과 손을 잡고 춤을   있는 세계다. 서른다섯의 어른이 들어가기에는 조금 미안한  세계를 아이 덕에 다시 한번 들여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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