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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지현 Jan 02. 2020

생활을 붙들어 주었던 반짝이는 말들의 기록


일요일 오후 네시, 유은이가  품에 아기처럼 안겨 있다. 겉으로는 내가 아이를 안고 있는 형상이지만, 작은 손에 감싸인   팔은 안겨있다는 느낌 또한 갖게 해준다. 우리는 가만히 서로의 눈을 응시했다. 이윽고 유은이의 조그만 입이 벌어졌다.


“엄마, 엄마 눈 속에 유은이가 있네?”


나에게 유은이는 시인이다.

유은이는 아마도 글자 그대로, 내 눈동자에 비친 자기 모습을 보고 말을 했겠지만, 유은이의 입 밖으로 나온 단어들은 나에게 시가 되어 전해온다. 필터를 한차례 거친 사진처럼, 모든 세상은 감성의 세계로 연결된다.

아이의 눈이 상상의 세계를 보는 걸까, 내 귀가 시의 세계를 향해 열려있는 걸까.


1년 전, 회사에 다니던 시절의 나는 정신없는 나날들을 보내고 있었다. 아직 엄마 품이 가장 좋을 나이, 세 살 유은이가 어린이집에 다니기 시작한 때이기도 하다. 아침이면 분초를 다투며 손과 발을 바쁘게 허우적거렸고, 머릿 속의 수만가지 생각들로 괴로웠다. 바쁜 남편을 잘 돌보지 못한다는 죄책감, 어린 아이를 떼어놓고 일을 하러 간다는 착잡함, 내 일이 그 만큼의 가치가 있는 일인지에 대한 번뇌같은 것들. 그리고 번뇌가 부유하던 나의 아침은 어느 날 새로운 국면을 마주한다. 유은이의 말 한마디로 인한, 사소하지만 결정적인 사건 때문이었다.


“하늘도 끝이 있을까?”


어린이집에 데려다 주는 길이었다. 아무리 바빠도 우리 하늘 좀 보자, 하며 자동차의 썬 루프를 열어준 참이었다. 참으로 시적인 유은이의 한 마디는 실은 지난 밤 읽어준 동화책의 한 구절이었다. 알고 있었지만, 유은이를 통해 듣는 말속에는 어떤 특별함이 담겨있었다. 대화를 이어갔다.


“유은이는 하늘이 끝이 있을 것 같아? 없을 것 같아?”

“응, 있어.”

“그래? 그럼 끝은 어디일까?”

“쩌어~기. 어? 나무네? 나무야아 안넝~”


4세 아이와 깊은 대화를 기대한 것이 무리였을까. 바람과 달리 대화는 금세 끝이 나버렸지만, 이날의 유은이의 한마디는 마음속에 남아 작은 스위치가 되어주었다. 그리고 작은 스위치들은 자꾸만 생겨났다. 스위치는 새로운 생각으로 확장되기도 했고, 재미있는 상상을 떠올리게도 해주었다. 그저 떠올리는 것만으로 입 꼬리 올라가는 기분 좋은 잠깐을 만들어주기도 했다.


육아는 힘들다는 인식이 만연하다. 나 또한 아이로 인한 기쁨과 충만함을 느끼기 이전에 해야 할 일들에 치여 허덕인 기억뿐이다. 육아와 살림과 직장일로 꽉 차있는 생활 속에서 상상의 여유 따위는 없었다. 해야 할 일들만 하며 하루를 보내게 된 것을 아이 때문으로 생각하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는 말을 시작했고 그 간의 일들을 보상이라도 하듯이 보석 같은 말들을 뿌려주었다. 이제 말문이 트이기 시작한 유은이가 내게 해주는 말들은 다듬지 않은 원석 같았다. 유은이와 함께하는 것만으로 내 생활은 다시 볕이 든 듯 반짝거리기 시작했다. 아이는 단조로운 일상 속에 숨어버린 나를 끌어내어 상상의 시간을 선물해주었고, 나는 그 속에서 채색되어갔다.

내가 할 수 있는 거라면 그저, 유은이가 무심코 던지는 한 마디 말을 그냥 흘려 듣지 않는 것, 기록하고 기록하는 것, 그 뿐이다. 다시 상상할 수 있는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는 유일한 창구이기 때문이다.

 책은 그런 나의 기록 모음이다. 반짝이는 말들을 붙들고 살았던  생활의 기록,  생활을 붙들어 주었던 반짝이는 말들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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