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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지현 Jan 02. 2020

마음이 작아지려고 그래요.

보통의 저녁처럼, 아이의 밥을 먹이고 있었다. 온종일 떼가 심했던 아이와 저녁나절 씨름을 한 후라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 유은이는 밥을 먹지 않겠다고 떼를 쓰면서 칭얼대고 있었다. 결국 내가 수저로 떠 먹여 주었고, 유은이는 입에 겨우 넣은 밥을 보란 듯이 뱉어버렸다. 내가 가장 싫어하는 상황이었다.

그 순간, 나도 모르는 사이에 소리를 지르고야 말았다. 아이에게 큰 소리 내지 않으려, 그 동안 참고 참았던 화들이 한꺼번에 분출된 것 같았다.


“이게 뭐 하는 거야? 밥 뱉으면 안된댔지!”

갑작스런 소리에 깜짝 놀랐는지, 유은이는 어깨를 움츠리고 두 손을 꼬옥 쥐더니, 기다렸다는 듯 크게 으아앙~~! 울어버렸다.

또 다시 시작이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육아서에서 말하는 훈육법을 떠올렸다.


“밥 먹는 시간인데, 유은이가 밥 안 먹고 떼쓰니까 엄마가 화낸거야.”

이유를 설명한 후 우는 아이를 뒤로 하고, 방으로 들어왔다. 이대로는 아이에게 감정적으로 대하게 될 것 같아, 마주볼 자신이 없었다. 침대 끝에 앉아 숨을 고르고 있는데, 큰 울음소리가 점차 잦아든다 싶더니, 방문 사이로 눈물로 범벅된 벌게진 눈이 걸어왔다. 유은이는 그렁그렁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엄마, 화내지 마세요. 내 마음이 작아지려고 그래요.”

아. 순간 머릿속이 하얘졌다.


동화책 <마음아 작아지지마>에서 나온 말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아이는 이제 막 말이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시기라, 여기저기에서 들은 말을 스폰지처럼 흡수하고, 자기 방식으로 활용하여 발산해낸다. 그리고 예상치 못한 포인트에서 사용할 때는 깜짝깜짝 놀라곤 하는데, 이번엔 강력하게 작용했다.


유은이는 연이어 “엄마가 화내니까 내 마음이 작아졌어요. 슬퍼요. 흑흑... 화내지 마세요.”라며 굳히기에 들어갔다. 어느새 육아서의 이론들은 모두 저편으로 잊어버린 채, 아이를 안아주고 있었다.


아이를 보면, 언제나 자기감정을 전달하는 데에 최선을 다한다는 느낌을 받는다. 세상의 많은 존재들(사람 외에 동물, 식물, 장난감 등 포함)과의 의사소통을 이제 막 시작하게 된 것이니, 생각이 잘 전달되었을 때의 기쁨은 내가 짐작하기 어려울 것이다. 아이는 아는 단어를 최대한으로 조합하여, 자신을 직접적으로 드러낸다. 물론 듣는 사람에 대한 배려는 없다.


'나는 내 감정과 생각에 어느 정도로 솔직하게 표현하고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삶은 살아갈수록 나를 어떠한 역할들로 행동하게끔 한다. 상황과 때에 맞는 말을 하는 것이 익숙해진 지금의 나는, 내 아이보다 의사소통을 잘 하는 어른이라고 할 수 있을까. 가끔은 아이처럼 세상과 마주하고 싶다.


유은이는 이 날 이후로 조금 깨우친 것이 있는지(아이들은 무엇이든 금방 터득한다) ‘마음이 작아지려고 그래요.’를 몇 번 더 써먹었고, 다행히도 난 의연하게 대처할 수 있었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아이의 말솜씨는 계속해서 업데이트 중이다. 때로는 마음을 무너져 내리게도, 환희로 가득 차오르게도 하는 아이의 말들로 인해, 나의 껍질이 조금은 투명해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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