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환자들이 잠이 든 새벽 두 시 저쪽 복도 끝 병실에서 누군가의 탄식 어린 목소리가 들린다. 발소리가 나지 않게 조용조용히 가본다. 일흔이 넘은 남자 환자가 잠들지 못하고 허공에 대고 무언가 중얼거리고 있다. 이 분은 수십 년간 끼니때마다 막걸리로 반주를 하다가 어느 때는 막걸리로만 끼니를 하셨는지 알코올로 인해 간이 많이 안 좋은 상태다. 그러다 보니 정신적인 문제도 생겨서 밤에 잠을 잘 못 자고 혼자 중얼거리기도 하고 누군가를 소리쳐 부르기도 한다.
살금살금 걸어 환자 옆에 가서 선다. 그는 옆에 사람이 온 것도 모르고 허공을 응시한 비장한 표정으로 무어라 읊조린다. 낮게 울리는 중저음이 마치 공연 중인 변사의 목소리 같다.
'울고 싶어라... 울고... 싶구나...'
간이 안 좋아서 몸에 특정 화학물질이 제대로 배설이 안되고 뇌를 건드려서 생긴 증상이라고 생각하기에는 애달픈 목소리다. 눈이 마주치자 '왜 왔어요?' 그러신다. 괜히 측은한 마음이 생겨 이불을 잘 덮어드리고 돌아서서 병실을 나왔다. 파주 어디에서 오래 농사를 지었다는 그가 여름 저녁 일을 마치고 막걸리 한 잔을 걸치는 모습을 상상해본다.
그러고도 한참 동안 복도 끝에서 그의 목소리가 나즉나즉 새어 나왔다. 한참을 듣다 보니 머릿속에 띵, 느낌표가 세워진다. 아, 혹시 그 노래 가사가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든다. 한때 꽤 유명했던 그 노래 말이다. 콧수염에 후줄근한 차림으로 티브이에 나와 눈을 지그시 감고 노래하던 가수의 우우울고오 싶어라 그 노래 말이다.
병원은 새벽부터 바쁘다. 바쁜 새벽에도 그 환자분의 중얼거림은 계속된다. 새벽에 해야 하는 처치를 하다가 그분에게 노래를 불러드렸다.
'ㅇㅇㅇ님, 우울고오 싶어라 이 노래 부르신 건가요? '
'응! 그렇지, 잘 허네!'
갑작스러운 그분의 칭찬이 재미있어서 하하하하 웃음이 터졌다. 간병사들도 내 하는 모습을 쳐다보다가 같이 웃는다. 나는 내친김에 유튜브에서 그 노래 영상을 찾아 귀에 대 드렸다. 그랬더니 노래를 따라 하신다. 손가락으로 까딱까딱 추임새도 넣으신다. 그렇게 노래 한 곡을 들려드리고 병실을 나왔다. 괜히 흐뭇했다. 그런데!
저 복도 끝에서 노래가 들린다. 우울고 싶어라, 우울고... 딱 요만큼만 기억나시나 보다. 계속 들린다. 끊겼다가 또 들린다. 노래가 아닌 읊조림이었을 때는 몰랐는데 음의 높낮이가 들어있는 노래로 변하고 나니 계속 불려져야 하는데 시작하자마자 끊기는 노래가 뭔가 답답하다. 레코드판이 튀어서 같은 구절을 반곡하는 것 같다. 내 목구멍이 간질간질해질 정도다. '울고'에서 자꾸 끊기니까 안타깝기까지 하다. 그래도 '울고'에서 무한반복이다. 반복이다, 무한. 제발 '떠나보면 알거야'로 넘어가 달라고 부탁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진다.
간병사가 나오더니 날 슬깃 째려보고 간다. 그 노래는 왜 틀어준 거냐는 무언의 원망이 느껴진다. 아아아 오늘 밤에 출근했을 때 저분이 계속 저렇게 노래인데 노래가 아닌 노래를 무한 반복하고 계시면 난 망했다. 새벽 두 시에도 저러신다면 엉엉 내가 울고 싶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