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어 어느 병실인지 찾지를 못하겠어요.' 첫 만남은 그랬다. 그날 새벽 다섯 시 아직 붉은 갈색의 염색이 빠지지 않은 파마머리의 그녀가 내게 물었다. 얼굴에 화장을 하고 입술을 붉게 칠하고 머리를 적당히 손질한다면, 원피스를 차려입고 구두를 신고 윤기 나는 가죽의 핸드백을 들었다면, 그런 차림으로 길에서 그녀가 길을 물었다면, 아 멋지게 잘 나이 드신 분이다 생각했을 것이다.
그녀는 허름한 환자복 차림으로, 잠에서 깬 지 얼마 되지 않아 부스스한 머리로 병실 복도를 배회하다가 나를 붙잡고 정중하게 길을 물었다. 내가 병실로 모셔다 드리자 아유 고맙습니다. 여기부터 저 혼자 갈 수 있습니다. 고맙습니다. 웃는 얼굴로 연신 상냥하게 고맙다는 말을 하고 병실로 들어갔다. 그게 사흘 전이었다.
그리고 오늘, 병원이 가장 고요한 새벽 한 시와 두시 사이 어디선가 인기척이 난다. 스테이션에서 벌떡 일어나 이쪽저쪽 복도를 살펴도 아무도 없다. 이 시간에 잠이 자주 깨는 환자의 병실로 가본다. 그 환자는 쿨쿨 깊은 잠에 빠져있다. 나는 스테이션으로 돌아와 다시 업무를 시작했다.
'우리 할머니가 나왔어! 내 수건으로 닦아.'
연변에서 온 우리말이 서툰 젊은 간병사가 인상을 찌푸리며 피곤한 목소리로 말한다. 손가락으로 병실을 가리킨다. 병실 문이 반쯤 열려있고 누군가 쪼그리고 앉아 바닥을 닦고 있다. 후다닥 뛰어갔다. 그녀였다. 웃옷만 입은 그녀가 젖은 바닥을 허둥지둥 닦아내고 있었다.
느낌이 이상해서 화장실 불을 켰다. 그녀가 걸레질을 하는 자세로 엎드려 있는 병실 앞에서부터 화장실까지 액체가 뚝뚝 떨어져 있다. 화장실 바닥은 그 액체로 흥건하다. 변기를 본다. 변기 위와 속은 그득하다. 그 와중에도 그녀는 괜찮다고 신경 쓰지 말라고 자신이 치울 수 있다고 끊임없이 내게 말한다. 그러고는 갈색 액체가 묻은 수건으로 연신 바닥을 훔친다.
아가들이 기저귀를 떼고 변기에 응가를 하다가 실수를 했을 때 당황하는 그 표정이다. 울듯한 그 표정이다. 이럴 때 아가들을 야단치면 으앙 울어버린다. 그녀에게 일어나라고 다그치면 그녀도 야단맞는 기분이 들어 그녀 속의 자존심이 울어버릴 것 같다. 할 수 없이 나도 일회용 비닐장갑을 끼고 같이 닦는다. 같이 닦는 척을 하다가 쓰레기통을 가져오시라고 부탁했다.
그녀가 일어선다. 그 틈에 잽싸게 그녀를 부축해서 세면대로 데려갔다. 물을 틀어드리려 하자 그녀의 손이 말린다. 제가 할게요. 꼼꼼하게 손을 씻는 그녀의 자세가 꼿꼿하다. 환자복 등부분이 축축하다. 옷을 벗겨드리려 하자 그녀의 손이 또 말한다. 제가 할게요. 시선을 앞섶으로 옮겨 정확하게 하나하나 단추를 풀고 벗은 옷을 개켜 스스로 비닐봉지에 넣는다.
그녀는 차근차근 몸을 닦는다. 내 시선이 그녀의 굽은 어깨와 등에 이어 납작해진 엉덩이로, 그리고 근육이 빠진 허벅지와 가느다란 종아리로 내려간다. 늙은 사람의 몸이다. 사람의 몸이다. 몸이다. 그녀는 평생 그러했듯이 꼼꼼하고 세심한 동작으로 자신의 몸을 깨끗하게 닦고 있다. 닦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몸을 닦는 것을 끝낸 그녀가 침대 발치에 가서 무언가를 들고 온다.
성인용 기저귀다. 갈색의 덩어리가 잔뜩 들어있는 게 보인다. 내가 받으려고 하자 그것을 든 그녀의 손이 비키면서 말한다. 제가 할게요. 황급히 쓰레기통을 가져와 그녀 앞에 내밀었다. 혹시라도 기저귀에 있는 것이 쓰레기통에 묻을까 봐 그녀의 손이 조심스럽다. 그리고는 다시 손을 씻는다. 물을 틀고 차근차근 손가락 사이를 씻는다. 비누의 물기를 두어 번 털어내고 비누 받침에 얹는다. 흐르는 물에 손을 헹군다.
그녀의 몸이 천천히 한다. 그녀의 몸이 스스로 한다.
그런데 여기는 병원이다. 대한민국의 병원이다. 침대 시트를 갈아놓고 기다리던 간병사는 지쳐서 앉아서 존다. 네 명의 환자를 24시간 돌보아야 하는 돌봄 노동자는 감당하기 힘든 천천히와 스스로이다. 벌써 한 시간이 지났다. 해야 할 업무가 떠오른다. 나도 마음이 조급해진다.
그럭저럭 그녀가 손 씻기를 마치고 침대로 가서 천천히 스스로 환의를 입고 반듯하게 누워 가슴까지 이불을 덮는다. 이불자락도 구김이 없다. 그리고 눈을 감고 잠이 들었다. 며칠 전에 지인이 많이 늙게 되면 스위스로 갈 거라고 한 말이 떠올랐다. 지금 여기의 그녀도 스위스를 가겠다고 다짐했던 시간이 있지 않았을까? 지금 그녀는 무엇을 하고 있을까? 어디를 가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