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여름밤, 양화진의 ​풍경

ㅡ설렘이라는 감정

by 최희정




지하철 계단 아래에서 천천히 걸어 올라오는 사람이 보인다. 아직 멀리 있으면 낯설다. 지금은 열몇 개의 계단 아래 있으니 그 정도 거리만큼 낯설다. 한 계단 한 계단 가까워진다. 그만큼 익숙해진다. 지상으로 거의 다 올라왔다. 눈이 마주치자 웃는다. 마주 보고 웃는다. 서로의 앞에 서 있다. 이제 낯설지 않다. 친밀하다.


물방울이 수면 위를 두드리듯 친밀함의 입자가 눈동자를 두드린다. 물방울이 물의 표면을 흔드는 것처럼 친밀함의 입자도 동공을 흔든다. 하나의 물방울이 물 위에 만들어내는 파동. 한 사람의 시선이 마주 보는 이의 눈동자에 만들어내는 파동. 친밀함이 퍼진다.


입자들은 시신경을 타고 뇌로 흘러간다. 크리스마스트리 장식의 꼬마전구들에 불이 들어오듯 뇌세포에 반짝 불이 켜진다. 친밀함의 입자는 반짝임을 얻고 입 속으로 간다. 혀끝이 짜릿하다. 꿀꺽. 목덜미를 지나 심장으로 내려간다. 심장이 부푼다. 붉은 핏톨과 친밀함의 입자가 섞여 온몸으로 퍼진다. 작은 빛으로 반짝이던 친밀함은 출렁이는 기쁨으로 순환한다.


그렇게 사랑을 하는 사람들은 시선을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온몸이 환하게 기쁨을 느낄 수 있다. 순수한 기쁨으로 밝게 빛날 수 있다. 사랑을 하는 사람들은 우주의 반딧불이 같다. 공중으로 높이 떠올라 사랑의 빛으로 우주의 숲을 반짝이게 한다. 우주가 인간에게 별빛을 보여준다면 사람들은 우주에게 사랑의 빛을 보여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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