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촌을 못 가

그리움아라는 감정

by 최희정


몇 년 전에 이 노래를 처음 들었을 때 유치하다고 생각했다. 흐느끼는 듯한 남자 가수의 목소리도 마음에 들지 않았고 가사도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옛 애인과 자주 갔던 신촌이라는 장소를 애인과 헤어진 지금은 마음이 아파서 갈 수 없다는 내용의 가사다. 이별은 이별이고 신촌은 신촌이지 거길 왜 못 간다고 울듯이 노래할까 싶었다.

어제 신촌에 갈 일이 있었다. '신촌'이라는 지명에 저 노래가 생각이 났다. 오랜만에 들어볼까 싶어 노래를 찾아 틀었다. 유행가의 가벼움을 즐겨보고 싶었다. 들으면서 유치함에 킥킥거리고 싶었다. 이어폰을 통해 노래가 흘러나오자 내게 신촌이라고 할 수 있는 어떤 장소가 생각나서 먹먹해졌다.

어쩌면 나는 S시를 못 갈 수 있겠다. 그곳뿐 아니라 거기와 이어진 H와 Y를 못 갈 수도 있겠다. 너는 어떨까.


S시의 그곳, 스물두 개의 계단을 올라가고 다시 열일곱 개의 계단을 올라가 언덕을 조금 올라가면 나타나는 골목. 비 오는 날 우산 하나가 겨우 지나가는 좁은 골목 맨 끝 집. 그 집의 녹슨 하늘색 대문. 살짝 열린 문틈으로 보이는 마당. 마당의 수돗가. 수돗가에 놓인 양은 대야. 대야에 반쯤 담겨 있는 물에 어른거리는 햇빛. 방금 머리를 감고 일어서며 흰 수건으로 젖은 머리를 말리는 누군가의 뒷모습. 흥얼거리는 노랫소리.

봄의 기억은 꽃잎으로 덮고, 여름의 기억은 찬비로 녹이고, 가을의 기억은 쌓이는 낙엽 속에 숨겼다. 그리고 그해 겨울이 왔을 때 봄에서 시작해서 겨울로 끝나는 모든 기억을 눈 속에 묻어버렸다. 그 후 되풀이되는 계절을 차곡차곡 위에 쌓아 그 시절은 기억의 깊은 곳에 퇴적되어 가고 있었다. 그렇다고 생각했다.

앞으로 달려 나가는 버스 안에서 위아래로 출렁이며 퍼져 나가는 유행가 한 자락이 만드는 파동. 깊은 바닷속에서 만들어진 파동이 거슬러 올라와 땅을 흔들듯 마음에 파동이 일자 호흡이 흔들린다. 흔들린 땅이 갈라지고 뒤집어지듯이 호흡이 흔들리자 몸이 출렁인다. 일그러진다.

지진을 일으키는 어떤 파동은 그 시작점에서 아래로 뻗어 내려 지구 반대편까지 간다. 노래 한 자락에 발생한 내 마음의 파동도 나의 반대편으로 돌아선 너에게로 갈 수 있을까.


너에게로 가서 그때 그곳, S시를 기억하는지 물어볼 수 있을까. 그 물음에 너는 어떤 대답을 할까. 이미 잊었다고, 잊어서 갈 수 없는 곳이라고 대답하지 않을까.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다정이라는 에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