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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희정 Sep 30. 2022

언젠간 가겠지 푸르른 이 청춘

산울림의 울림

운전 중이었다. 라디오에서 노래가 나온다. 운전을 할 때는 주로 라디오를 듣는다. 예상치 못한 순간에 예상치 못한 노래들을 즐길 수 있다. 차 안에서 혼자 듣는 음악은 귀에서 가슴까지 도달하는 속도가 빠르다. 어떤 노래들은 순식간에 귓속으로 달려들어 뇌를 거치지 않고 곧바로 심장을 두드린다. 이럴 때는 소리의 속도가 빛의 속도보다 빠르다. 노래 한 자락이 빛보다 빠르게 시간을 되돌려준다. 나는 수십 년 전의 어느 순간에 가 있게 된다.


'길을 걸었지 누군가 옆에 있다고 느꼈을 땐'으로 시작하는 산울림의 노래가 라디오에서 나온다. 까만 교복 바지와 상의를 입은 얼굴이 하얀 소년이 떠오른다. 그 아이는 항상 전교 1등을 하는 아이였다. 나와 같은 동아리 친구고 내 친구의 남자 친구이기도 했다. 동아리 안에서 같이 어울리는 일이 잦았다. 


그 아이는 산울림 노래를 잘 불렀다. 회상이라는 저 노래도 꽤 잘 불렀었다. 그는 중학교를 졸업하고 친구들과 떨어져 서울 중심에 있는 전통 있는 고등학교로 진학했다. 거기서 그는 중학교 때보다 공부 실력이 잘 통하지 않아 힘들어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내 친구와 계속 사귀었는지는 기억이 없다. 단지 다른 친구들과 떨어져 멀리 있는 학교로 진학을 했고 중학교 때만큼 성적이 나오지 않아 고생을 한다는 이야기만 기억난다. 그가 하굣길을 걸을 때 중학교 때 같이 어울리던 친구들과 같이 걸을 수 있었다면 좀 더 마음 편하게 공부를 하고 원하는 대학에 가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이 저 노래들 들을 때마다 문득 든다.


'어두운 거리를 나 홀로 걷다가 밤하늘 바라보았소.'라고 시작하는 독백이라는 노래도 많이 불렀다. 내가 중학생이었던 그 당시 산울림은 발표하는 노래마다 아주 인기가 좋았다. 라디오에서 자주 틀어지고 음반이 많이 팔렸다. 


가사도 좋았고 듣기도 좋았다. 그러니 노래 부르기를 좋아하는 아이들은 산울림의 노래를 자주 불렀다.' 어제처럼 별이 하얗게 빛나고 달도 밝은데 오늘은 그 어느 누가 태어나고 어느 누가 잠들었소'라는 가사는 사춘기 여학생의 가슴에도 쉽게 새겨졌다. 


열여섯의 나이의 여자 아이는 삶과 죽음에 대해 거의 아는 것이 없었다. 그런데도 독백이라는 노래를 들으면 내가 어둔 밤거리를 혼자 걷는 것 같은 쓸쓸한 기분이 들곤 했다. 그리고 이유 없이 윤동주의 별 헤는 밤이 생각났다. 밤하늘의 별 하나하나에 이름을 새기는 시인의 외로움이 밤하늘 바라보며 누군가 태어나고 죽는 일을 떠올리는 노래 가사와 맞닿아 있어서 그랬을까.


'언젠간 가겠지 푸르른 이 청춘'으로 시작하는 노래도 대히트 송이었다. 우스운 것은 아직 청춘이라고 부르기도 어색한 십 대 중학생들조차도 저 노래를 좋아했다. 나도 좋아했다. 좋아서 들으면서도 언젠간 가겠지 푸르른 이 청춘은 아직 우리 이야기는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시간은 물처럼 흘러 이 시절이 푸른 봄날이구나 깨닫기도 전에 청춘이 흘러가 버렸다. 청춘이 지나고 청춘이었던 시절만큼 시간이 더 지나서 듣는 노래는 이제야 한 소절 한 소절이 절절하다. 


'응답하라 1988'이라는 드라마 속 친구의 장례식장 장면에서 반주 없이 흐르는 이 노래를 들으며 눈시울이 뜨거웠다. 이 노래는 젊은 가수에 의해 다시 불렸다. 그래도 나는 산울림의 김창완 아저씨가 부르는 노래가 좋다. 특히 나이가 들어서 탁하고 걸쭉해진 목소리로 부르는 늙은 청춘이 좋다. 그 울림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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