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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희정 Sep 26. 2022

언제든 피어라

가을에 핀 벚꽃을 보며


작년에 찍은 사진 중에 이맘때 꽃이 핀 나무를 찍은 사진이 있다. 벚나무다. 호수공원 뒤 농작물을 가꾸는 비닐하우스들이 많은 동네의 농로 변에는 벚나무들이 길가에 심어져 있다. 자동차 두 대가 서로 마주 달리기도 좁은 길이고 인도가 따로 정비되어 있지도 않아서 사람들의 왕래가 적은 곳이다. 


그 한적함이 좋아 봄이면 꽃을 보러 이곳을 왔었다. 나이가 제법 있어 보이는 나무들은 꽤 멋지게 꽃을 피웠다. 그 나무들도 처음 심어질 때는 여린 가지 가는 줄기였을 것이다. 매년 땅속 깊이 뿌리가 자라면서 둥치도 굵어지고 가지도 무성해지고 풍성하게 꽃을 피우게 되었을 것이다.


시월을 코앞에 둔 일 년 전 근처에 볼일이 있어 그 길을 지나가던 중이었다. 봄에 꽃구경을 하던 생각을 하며 나무들을 바라보았다. 가을이 완연해 나무들은 잎이 다 지고 앙상한 가지만 뻗어있었다. 


그중에 한 그루가 꽃을 매달고 있었다. 개나리나 철쭉 같은 나무들도 가을에 꽃을 피우기도 한다. 물론 벚꽃도 마찬가지이다. 추워지는 계절을 앞두고 피는 꽃들은 가지 끝에 한 두 송이가 빈약하게 매달려있어 처량해 보인다. 


하지만 그 나무는 이 시기에 봄처럼 가지마다 환하게 꽃을 피우고 있었다. 신기한 마음에 나무 밑에 서서 한참을 바라보았다. 사진도 몇 장 찍었다. 내가 나무를 바라보고 서 있자 지나가던 행인도 나무를 보았다. 그도 신기한지 멈추어 서서 사진을 찍었다.


가을에 꽃을 피운 벚나무를 보고 있자니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철도 모르는 나무라는 생각이 들었다. 봄꽃이면 봄에 피어야지라는 생각이었다. 


지난봄에 나무에게 무슨 일이 있었나 싶은 생각도 들었다. 봄이나 여름에 병충해가 심해 벌레에게 잎을 다 갉아 먹힌 나무들은 늦게라도 새로 잎을 내보내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저 나무도 지난 계절에 벌레들에게 심한 고생을 당하다 지금이라도 다시 꽃을 피우는가 싶었다.


 겨울이 오기 전에 꼭 꽃을 피우는 일부터 다시 시작해보겠다는 나무의 마음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그 마음이 대단하다. 이제 곧 겨울이라고 포기하지 않고 다시 시작하는 나무의 마음이 대단하다.


몇 년 전에 이미 겨울의 기운이 느껴지는 11월 하순 새끼손가락 길이만큼 짧게 자란 채송화에서 꽃이 핀 것을 본 적이 있다. 꽃은 엄지손톱보다 작았다. 그 꽃을 보면서 너무 늦게 피어서 나비가 없어 씨앗이 맺히지 않겠다고 하자, 옆에 있던 딸아이가 그래도 식물은 꽃을 피운다고 그랬다.


딸의 설명에 의하면 환경이 척박할수록 더욱 꽃을 피우고자 하는 식물의 의지가 높아진단다. 꽃이 피어야만 열매를 맺을 확률이 생기니까 꽃부터 피우는 것이 당연하단다. 꽃 없이 열매를 맺는 나무는 없다. 꽃 없는 열매로 유명한 무화과도 알고 보면 속 꽃을 피워 열매를 맺는다.


꽃이 피는 것은 사람으로 따지자면 꿈을 꾸는 마음이고 꿈을 이루고자 하는 마음이다. 사는 일은 내가 원하는 적당한 때에 맞추어 꽃을 피우기가 힘들다. 하지만 꿈을 피워보겠다는 마음을 늦었다고 포기하지 않고 간직한 사람들은 결국 꽃처럼 피어난다. 


가을에 봄처럼 꽃을 매단 나무를 응원하게 된다. 애쓰면서 한 송이 한 송이 피워냈을 그 정성을 응원하게 된다. 그리고 늦게라도 피고 싶은 꽃 같은 꿈을 가진 사람들도 응원하게 된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발바닥이 간지럽다


십일월 오후

새끼손가락보다 짧은 줄기 끝에 

채송화꽃이 달렸다 


꽃은 한여름에 핀 것과 다름없이

당당하게 붉다


이제 피어서 어쩌려고

열매를 맺지 못할 수도 있어

한숨 쉬며 돌아서는 내게

꽃잎 속, 노란 꽃술이 쯧 혀를 찬다


-그건 내일의 일이야 대저 뿌리 없는 것들은 순리를 모르네


식은 햇살 한 가닥 발등에 앉는다

찌르르 발바닥이 간지럽다

꿈틀 뿌리가 돋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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