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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희정 Oct 25. 2022

서리 축제

상강이라는 절기


인도라는 나라에는 '홀리'라는 축제가 있다. 겨울이 끝나고 봄이 시작됐음을 축하하는 힌두교의 봄맞이 축제로 색채의 축제, 사랑을 나누는 축제로도 알려져 있다. 사람들이 거리로 나와 다양한 빛깔의 색 가루나 색 물감을 서로의 얼굴이나 몸에 문지르거나 뿌린다. ​

우리나라에는 양력으로 10월 23일 무렵에 상강이라는 절기가 있다. 이 시기는 가을의 쾌청한 날씨가 계속되는 대신에 밤의 기온이 매우 낮아지는 때이다. 따라서 대기 중의 수증기가 지상의 물체 표면에 얼어붙는 현상인 서리가 나타난다. 사람들은 서리가 내린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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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의 '홀리'축제가 사람들끼리 서로 물감을 묻히면서 즐기는 축제라면 우리나라의 '서리'축제는 해가 스스로 만든 빛 가루를 사람들에게 물감처럼 묻히면서 즐기는 축제이다. 가을날의 해는 아침 일찍 일어나 제 몸에 붙은 빛덩어리들을 떼어내 커다란 가마솥에 넣고 녹이기 시작한다. 마치 조정을 고듯이 슬슬 젓는다. 정오가 지나고 오후가 되면 찰랑거리던 빛물이 제법 진득해진다. 더 힘주어 젓다가 뻑뻑해지면 커다랗고 커다란 우주 쟁반에 펼쳐 말린 후 곱게 가루를 만든다.

해와 사람들이 눈을 마주치기 쉬운 시간이 되면 해는 준비해 두었던 가루를 사람들에게 던진다. 사람들의 머리카락이 빛난다. 뿌린다, 사람들의 이마가 빛난다. 묻힌다. 사람들의 뺨이 빛난다. 가을 해는 빛 가루를 사람들에게만 뿌리는 게 아니다. 나무에게도 던진다. 나뭇잎은 단풍이 들면서 빛난다. 개나 고양이에게도 뿌린다. 짐승들의 털끝이 빛난다. 산비탈의 바위에게도 묻힌다. 바위의 넓은 뺨이 빛난다. ​

가을 중에서도 서리가 내리기 시작하는 상강 무렵의 햇빛은 인도의 축제에 쓰이는 물감 같다. 빛으로 물들지 않는 것이 없다. 빛나지 않는 것이 없다. 우리나라 가을에는 '서리'라는 축제가 있다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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