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리 축제

상강이라는 절기

by 최희정


인도라는 나라에는 '홀리'라는 축제가 있다. 겨울이 끝나고 봄이 시작됐음을 축하하는 힌두교의 봄맞이 축제로 색채의 축제, 사랑을 나누는 축제로도 알려져 있다. 사람들이 거리로 나와 다양한 빛깔의 색 가루나 색 물감을 서로의 얼굴이나 몸에 문지르거나 뿌린다. ​

우리나라에는 양력으로 10월 23일 무렵에 상강이라는 절기가 있다. 이 시기는 가을의 쾌청한 날씨가 계속되는 대신에 밤의 기온이 매우 낮아지는 때이다. 따라서 대기 중의 수증기가 지상의 물체 표면에 얼어붙는 현상인 서리가 나타난다. 사람들은 서리가 내린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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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의 '홀리'축제가 사람들끼리 서로 물감을 묻히면서 즐기는 축제라면 우리나라의 '서리'축제는 해가 스스로 만든 빛 가루를 사람들에게 물감처럼 묻히면서 즐기는 축제이다. 가을날의 해는 아침 일찍 일어나 제 몸에 붙은 빛덩어리들을 떼어내 커다란 가마솥에 넣고 녹이기 시작한다. 마치 조정을 고듯이 슬슬 젓는다. 정오가 지나고 오후가 되면 찰랑거리던 빛물이 제법 진득해진다. 더 힘주어 젓다가 뻑뻑해지면 커다랗고 커다란 우주 쟁반에 펼쳐 말린 후 곱게 가루를 만든다.

해와 사람들이 눈을 마주치기 쉬운 시간이 되면 해는 준비해 두었던 가루를 사람들에게 던진다. 사람들의 머리카락이 빛난다. 뿌린다, 사람들의 이마가 빛난다. 묻힌다. 사람들의 뺨이 빛난다. 가을 해는 빛 가루를 사람들에게만 뿌리는 게 아니다. 나무에게도 던진다. 나뭇잎은 단풍이 들면서 빛난다. 개나 고양이에게도 뿌린다. 짐승들의 털끝이 빛난다. 산비탈의 바위에게도 묻힌다. 바위의 넓은 뺨이 빛난다. ​

가을 중에서도 서리가 내리기 시작하는 상강 무렵의 햇빛은 인도의 축제에 쓰이는 물감 같다. 빛으로 물들지 않는 것이 없다. 빛나지 않는 것이 없다. 우리나라 가을에는 '서리'라는 축제가 있다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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