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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희정 Oct 26. 2022

꽃 피기 전에 뿌리를 키운다

국화에게 배운다

마당에 국화가 피었다. 노란 감국이다. 엄지손톱보다 작은 꽃들이 가느다란 가지에 담뿍담뿍 앉아있다. 베란다 문을 열면 향이 쑥 들어온다. 자주색 봉오리도 꽤 많이 있었다.


 오늘 아침에 보니 꽃이 피었다. ​노랗고 작은 꽃술들이 소복하게 모여 작은 동그라미를 만들고 그 주변을 자주색 꽃잎이 둘러싸고 있다.

작년에는 국화가 피지 않았었다. 작년 가을에 집 주변에 여러 색의 국화가 핀 것을 보았지만 우리 집에는 피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내 집 마당에 국화가 있는지 몰랐다. 왜 작년에는 피지 않았을까? 왜 작년에는 국화 이파리 하나 보지 못했을까?


생각해보니 작년에 마당에 수국을 심었다. 엄마 집에서 가져온 뿌리가 꽤 큰 것들이었다. 그것들을 심느라 삽으로 땅을 파헤쳤었다. 기억을 더듬어 보니 그때가 초봄이었다. 이사 후 첫 봄이라 땅 속에 어떤 것들이 들어있는지 몰랐다. 국화 싹이 아직 나올 때가 아니었다. 그러니 땅속에 국화가 있는지도 모르고 그냥 수국을 심은 것 같다.


국화의 뿌리는 예기치 못한 삽질로 들쑤심을 당했을 것이다. 자리 잡았던 땅을 놓치고 엉키고 망가졌을 것이다. 잘려나간 부분도 있을 것이다. 뿌리는 엎어진 자신을 다독이고 다시 자리 잡는데 힘을 쓰느라 잎을 내지 못한 것 같다. 그러니 당연히 꽃도 피지 못했으리라.


올해는 국화가 피었다. 작년 1년 동안 제자리를 잡느라 애쓴 결과다. 지금 나는 그 결과인 꽃을 보고 있다. 꽃에서 꽃을 피워낸 줄기로 시선을 옮겨본다. 시선을 점점 더 땅 쪽으로 옮겨본다. 줄기가 시작되는 곳, 그 아래에는 뿌리가 있을 것이다. 여전히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분명히 뿌리가 있다.


국화꽃이 다시 피기까지 뿌리는 오래전 처음처럼 실핏줄같이 가느다랗게 몸을 늘여 물과 영양분을 빨아들이면서 점점 자랐을 것이다. 작년 한 해를 통째로 땅 속에서 굵어지고 넓어지고 튼튼해지는 일에 힘을 썼을 것이다.


흙을 꽉 움켜쥐고서 흔들리지 않을 때가 되어서야 싹을 내고 자라 꽃을 피웠을 것이다. 오늘은 국화꽃을 보면서 보이지 않는 뿌리의 가르침을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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