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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희정 Oct 29. 2022

누룽지는 낙엽처럼 바스락

점심 한 점

걷는다.

어디가?  어디가?  

낙엽이 따라오며 묻는다. 낙엽들이 강아지처럼 앞으로 콩콩 뛰다가 다시 뒤돌아  종종 달려온다. 대답을 안 해주자 심심했나 보다. 바람이 가는 길로 휘리릭 따라 가버린다.


더 걷는다.

어디가? 어디가?

꽃들이 목을 쭉 내밀고 묻는다. 쑥부쟁이는 궁금해 죽겠다는 표정이다. 국화는 점잖게 목을 세우고 으흠으흠 딴청이다. 대답을 안 하니까 샐쭉해진다. 햇살 쪽으로 휙 고개를 돌려버린다.


또 걷는다.

어디가? 어디가?

뒤에서는 바람이 겅중거리며, 앞에서는 햇살이 까불거리면서 묻는다. 내가 대답을 안 하자 나무한테 이른다. 머리에 도토리 한 알이 뚝 떨어진다. 도토리에게 대답해준다. 집에 간다, 너도 가자.


집에 왔다. 걸었더니 배고프다. 작은 솥에 누룽지를 넣는다. 누룽지 손으로 부서뜨리자 바스락바스락 소리가 난다. 함께 걷던 낙엽 같다. 물 붓고 끓인다. 노랗던 누룽지 하얗게 피어난다. 고개를 쑥 내밀던 쑥부쟁이 꽃 같다. 구수한 냄새가 퍼진다. 바람에 흔들리던 낙엽 냄새다. 모락모락 김이 피어오른다. 햇살을 마주한 것처럼 뺨이, 콧등이, 이마가 따뜻해진다.


누룽지 한 대접을 퍼놓고 식탁에 앉는다. 반찬은 장아찌 한 가지다. 누룽지는 여러 가지 반찬이 필요 없다. 그래도 반찬 한 가지는 적적하다. 데려온 도토리를 상에 올려 앉힌다.


 맨질맨질한 도토리가 빤히 나를 쳐다본다. 후루룩 누룽지를 한 수저 퍼먹고 장아찌로 입맛을 돋우고 도토리를 한 번 마주 본다. 가을 한낮 마음에 점을 찍는다. 누룽지 점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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