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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희정 Nov 08. 2022

끓어오르는 팥죽 속에 쑥떡이 쑥떡 쑥떡

-아들과의 대화법


다섯 시 반 아들방에서 알람이 울린다. 아들을 깨운다. 눈을 뜨지 않는다. 이십 분 정도 일어나라는 말을 반복한다. 겨우 나와서 씻으러 들어간다. 아들 일하는 곳이 파주로 옮긴 후부터 이런 아침이 반복되고 있다. 아마 내가 없는 날에는 최대한 늦게까지 이불속에서 미적거리다가 겨우 얼굴에 물만 묻히고 버스를 타러 나갈 것이다.




팥죽을 데우면서 이런저런 생각이 든다. 먹이지 말고 십 분 더 누워 있으라고 할까. 그래도 날 추운데 먹고 나가면 좋지. 결국 오늘도 버스 타는 곳까지 데려다 주기로 마음먹는다.




솔직히 잔소리가 터져 나오려고 한다. 어차피 가야 하니까 알람 맞춰 놓은 시간에 일어나서 움직이라는 잔소리가 하고 싶다. 네 스스로 알아서 할 나이도 되지 않았냐는 마음도 욱하니 올라온다. 이젠 안 깨워준다는 빈 협박도 또 하고 싶다. 다르면서 비슷한 상황에서 다 해본 짓들이다.




하지만 달라지는 것은 없다. 오히려 서로 관계가 썰렁해진다. 서먹해지고 서로 눈치를 보면서 지내게 된다. 이 과정들 또 반복하기는 싫다. 그래도 내 마음속 어떤 감정이 팥죽처럼 끓어오른다. 뜨거운 팥죽이 잘못 튀면 다친다. 조심하자. 팥죽에 설탕을 두 숟가락 넣는다. 달콤해졌다. 자 이걸로 마음을 녹이자.




"아들아 엄마 있는 날은 깨워줄 테니까 아침 먹고 가."




최대한 자애롭고 지극한 모성의 톤으로 대화를 시작한다.




"졸리고 힘들어."




짧고 단호한 아들의 대답에 '불끈'과 '욱함'이 용암처럼 치솟아 오르려고 한다. 워워 참자. 참나무 참나무 참나무 관세음보살 모지 사바하...




"그래도 엄마랑 네가 아침에 얼굴 마주하는 날이 일주일에 두세 번 밖에 없는데 네가 그냥 나가면 얼굴조차 제대로 못 본 기분이야."




"알았어요."




운전대를 잡은 채로 곁눈으로 흘깃 보니 눈은 감은 채로 대충 대답한다.




야 임뫄 버전으로 시작하는 잔소리가 단전에서부터 올라오려고 한다. 후하 후하 참자. 라마즈 호흡법은 출산의 고통을 조절이기 위해서 필요한 게 아니라 감정 조절을 위해서 필요한 것 같다. 어찌 되었든 요긴하게 써먹고 있다.   




"한 집에 같이 사는데 일주일 내내 얼굴 한 번 제대로 못 보는 건 너무 속상해. 그건 같이 사는 것 같지 않아."




크아 아아아 용가리로 변하고 싶은 것을 참고 읍소한다. 자애롭고 지극한 모성의 톤에 촉촉 물기를 살짝 뿌린다. 내심 내 연기가 뿌듯하다.




"알었어요. 길면 잔소리야. 그만해. 갔다 올게."




탁! 아들이 내리고 조수석 문이 닫힌다. 나를 보고 손을 흔든다. 나도 웃으며 손을 흔들어 주었다. 내 입에서 터져 나오는 방언은 아들에게는 안 들린다.  






"야~ 너~~ 알람을 했으면 네가 알아서 일어나야지, 응, ~~~~~~~~  그럴 거면 알람은 왜 하는 거야! 응응!! 깨워도 안 일어나고 ~~~~~~~~. "




아들이 다시 손을 흔든다. 나도 여전히 웃으면서 손을 흔들어준다. 내 입에서는 여전히 방언이 쏟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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